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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책과 영화를 모두 보고 난 후의 감상입니다.
편하게 쓰기 위해 반말체로 썼습니다.
<요시노 겐자부로_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_1937년>
책에서는 ‘코페르’라는 별명을 가진 어린 주인공과 삼촌이 주요 인물로 나온다
삼촌은 여러 일상 속에서 코페르에게 사물과 현상,
그러니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게 가르침을 준다.
예를 들어 삼촌은 ’아무도 생각해보지 않은 자신만의 생각’을
코페르에게 숙제로 내주는데, 코페르는 고민하다 눈 앞에 흔히 볼 수 있는
‘통조림’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
’통조림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에서 시작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통조림을 만드는 공장, 공장을 만드는 인부들, 통조림을 옮기는 사람과 열차,
열차를 만드는 사람 등등 이 통조림 하나에도
모든 사람들의 수고스러움이
담겨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생각은 다른 사물에 대한 시각도 달라지게 한다.
흔히 보이는 사물들 이면에는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의 상호작용과
무수한 수고스러움이 있다는 것이다.
코페르는 이것을 ‘그물망 이론’이라고 이름붙이고
철학자가 된 것 마냥 한껏 흥분한다.
삼촌은 코페르의 생각과 비슷한 생각을 한 철학자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정말 기특하다며 칭찬한다. 코페르가 통조림을 통해 스스로 깨달은 것을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세상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고
모든 것이 여러 사람들의 수고를 통해
만들어졌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삼촌이 진짜로 가르쳐 주고
싶은 것은 그것이 아니다.
물론 삼촌은 코페르가 윤리적으로나
사고적으로 더 성숙해지는 것을 바라지만
가장 크게 바라는 것은 바로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사물과 현상을 보게 되면 기존의 통념과 주변사람들의 생각에 맞장구를 치게 될 수 밖에 없다. 코페르가 가난한 친구를 보고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처럼 말이다. 결국 책의 마지막 장에서 코페르는 가르침 받거나 생각을 주고 받던 삼촌과의 편지를 벗어나 자발적으로 자신의 빈 공책에 자신만의 생각들을 써나가기 시작한다.
이것은 곧 ‘창조적’인 행위다.
코페르는 더 이상 삼촌에게도
의지 하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물과 현상을 깊이 생각하며
그 이면을 보게 되면 관점이 달라진다.
너무 흔해 별 감정 없던 통조림에 대해
깊이 생각한 코페르는
많은 사람들의 수고스러움에 ‘감사함’을 느꼈다.
관점이 달라지면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세상은 바뀐 것이 없지만 관점이 달라졌기 때문에
다른 세상이 ‘창조적’으로 새롭게 개인에게 펼쳐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요시노 겐자부로의 소설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는
단순히 윤리적인 것들을 가르치는 책이 아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창조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도록 권장하는 책이다.
이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소설 <라쇼몽> 단편집을 보면
시대 정신과 같은 외부의 생각으로 점철된 인간이 얼마나
이상하고 '나'라는 주체가 얼마나 망가질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존 말코비치 되기>란 영화도 '주체적 인간'이 아닌 사람들의
이상한 점을 풍자적으로 잘 보여준다.
멀리서 봤을 때는 정말 이상하지만, 개인의 차원에서는 그런 생각을 잘 못하게 된다. 시대 정신이나 다수의 생각이나 외부의 생각이 옳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님의 영화 역시 '주체적 인간'에 관한 내용으로 봤다. 그 점에서 원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맞닿아있다.
마히토와 큰 할아버지는 원작의 코페르와 삼촌의 관계가
설정 면에서는 비슷하지만 전혀 다르다.
큰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에 수 많은 책을 읽다가 행방불명 되었는데,
그 이유는 그가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운석’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 돌을 가지고 현실 속의 ‘또 다른 세상’을 창조한다.
이 세계는 어떤 공간 어떤 시간대로든 갈 수 있는 문이 있다.
마치 닥터 스트레인지의 능력처럼 말이다.
큰 할아버지는 수 많은 곳과 수 많은 시간대를 경험했다고 직접 말한다.
그리고 그는 수 많은 책을 읽었다고도 나온다.
그러니까 설정상 그는 거의 모든 것을 경험했고 아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세상을 아름답고 완벽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도형 도구들을 균형 있게 줄 세우는 이미지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큰 할아버지는 수명이 다해 그것을 물려받을 사람을 필요로 한다.
그것이 바로 그의 후손 마히토다.
큰아버지는 원작의 삼촌과는 달리
스스로 생각하기 즉 ‘창조적 인간’이 되기를 바라지 않고,
자신이 만든 세상을 물려주려고 한다.
마히토는 큰아버지가 만든 이 현실 같지만 이상한 세계
(여러 생물들의 의인화, 시간대가 섞여있다.
엄마(히미)는 어렸을 때 1년 동안 큰할아버지의 세계에서 살았고,
그때 아들 마히토를 만났다.)
평화롭고 자신이 살던 세계와는 비슷하지만 가짜인 세계를 거부한다.
마치 매트릭스의 빨간약을 선택한 네오처럼 말이다.
마히토가 선택한 현실은 끔찍하다.
전쟁 때문에 어머니가 불타죽었는데 그것이 환영으로 자꾸 보인다.
영화에서는 하야오의 아름다운 그림체로 그려져서 그렇지
이것이 영화가 아니라 실제라고 생각해보자.
어린 소년의 눈에 불타 죽는 어머니가 소리를 지르는 환영이 보인다.
얼마나 끔찍한가.
아버지의 둘 째 부인은 어머니와 닮았다. (동생이니까)
그러나 결국 어머니가 아니다. 마히토에겐 가짜인 것이다.
집안일을 해주는 할머니들, 든든한 아빠, 경제적으로도 풍요롭고,
어머니를 닮은 새엄마, 세상 모든게 친절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하지만 마히토의 마음 속은 그렇지 않다.
주변 모든 것이 친절해서 마히토는 억눌러있는 감정들을 표출 할 곳도 없다.
그래서 돌멩이로 머리를 내리친 것이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만든 천국 같아 보이는 평화로운 현실도
큰 아버지가 만든 작은 세상에도 마음 속에 지옥을 가지고 있는
마히토에겐 외부의 평화로움이 의미가 없다.
큰 아버지가 만든 세상에서 엄마의 형상은 녹아없어져 실패했지만
차후에 가능할 수도 있고 상상하는 모든 것이 가능한 세상이 될 수도 있다.
이 세계는 시간에도 얽매여 있지 않고 현실과 다르게 사물을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해보면 현실보다 더 완벽하게 보이는 세상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마히토처럼 이 세계에 넘어와 완벽히 적응해 영웅으로 대접받으며 평화롭게 살던
마히토의 엄마 ‘히미’는 자신이 먼 미래에 불타 죽을 걸 알면서도
현실의 자신의 시간대로 되돌아간다.마히토를 낳기 위해서다.
마히토 역시 엄마의 선택과 같이 자신의 시간대인 현실로 돌아온다.
요시노 겐자부로에서의 소설에서는 ‘관점’이 ‘창조적’ 세계를 만들었다면
이 작품은 ‘운명’적인 느낌이 있다. 삶이 이미 정해져있는 상태에서 인간은 창조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
하야오의 영화에서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선택’한 후 ‘씩씩하게 학교에 가기로 '선택'한다.
학교는 아버지가 만든 친절한 환경을 벗어나는 것이다.
마히토의 세상은 그대로지만 마음 속이 변화한 것이다. 그로인해 새로운 세계를 주체적으로 만들 수 있게 됐다.
관점과 선택이란 차이점은 분명 현실 세계에서 재밌게 다뤄볼 해석의 요소이긴 하지만
하나의 단어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 것보다 겐자부로의 소설 속 주인공과 하야오의 주인공이
결국 주체적으로 삶을 창조하게 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정해져있는 것 같은 운명적인 삶 속에서
삶을 창조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마히토의 친절한 환경처럼 인간을 대체해준다는 성능좋은 A.I의 소식들,
아름다운 가상세계,끔찍한 전쟁 소식,기후위기,그 밖에 암울한 소식들,
주변에 짜증나는 인간들,
곧 불바다로 타버릴 것 같은 지구 속에서 외부환경이 주는대로 삶을 살 것인가?
만약 '각각의 개인이 삶을 창조하는 거라면 '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미야자키 하야오님이 마지막으로 이렇게 묻는 것 같았다.
난 오히려 영화 자체만 보면 '그대들 어떻게 살것인가?'라는 질문이 느껴지진 않았음. 지브리 특유의 아이의 순수함 예찬 + 마히토의 성장스토리에 더불어서 기성세대가 아랫세대에게 말하는 목소리 + 아랫세대가 기성세대에 대한 감사가 들어가있다는 점이 기존 영화들에 비해 특이한 점이 아닐까 싶었음.
그냥 융으로 보면 풀림. 하야오가 영향 받기도 했고
융은 대체 서브컬쳐에 얼마나 영향을 끼친거.
아오 씨 독갤 가니까 제대로 된 해석이 나오네 무슨 자서전이 어쩌고 저쩌고 질렸다 개추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