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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형제들에게 전화를 거네>, 요나스 하센 케미리, 민음사.

: 개인의 불행이 어떻게 테러리즘이라는 범죄로 이어지는지를 잘 보여준 작품. 

ISIS 같은 단체는 지하드 전사도, 믿음의 사도들도 아닌 불행한 이들을 이용해먹는 사기꾼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읽으면서 느꼈다.

소통의 도구인 휴대전화가 오히려 주인공의 고립과 외로움을 증폭하는 도구로 이용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저자는 이 작품을 쓰면서 스트린드베리의 <꿈연극>을 참고했다고 밝혔는데, 그 때문인지 작품에 몽환적이면서도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감돈다. 

정신이 헤롱헤롱 풀어지는 듯한 스타일의 글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재밌게 읽을 수 있지만, 르포 같이 객관적인 글을 좋아하는 독자는 형편없는 작품이라 느낄 수 있다. 

물론 난 전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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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선셋 리미티드>, 코맥 매카시, 문학동네. 

: 영화 <곡성>과 더불어 믿음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게끔 만든 책이다. 

합리적 인간으로 자살할 것인지, 비합리적 인간으로 살아남을 것인지 작가는 독자에게 묻는다. 

백인과 흑인의 대립은 단순한 말장난이 아닌, 지성과 영성의 대결이자 합리와 믿음의 싸움이다.

둘 중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지는 독자의 몫에 달렸다. 

내 자신도 굉장히 의외였지만, 나는 흑인의 손을 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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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시지프 신화>, 알베르 카뮈, 책세상. 

: 삶의 의미에 대해 물어놓고, 인간 의지의 위대함을 답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실패한 철학서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위대함이 의미를 대체할 순 없다고 본다. 졸렬하지만 의미 있는 일이 있고, 위대하지만 무의미한 일 역시 있다. 

위대하니 의미가 있다는 생각에는 동의할 수 없다. 카뮈의 답은 결국 그가 비판한 선배 철학자들의 답과 마찬가지로 비약이다. 

그러나 설령 고통스러운 것이라 해도, 삶의 조건을 그 자체로 존중해야 한다는 태도는 매우 인상 깊었다. 

희망을 모두 죽여 없애버린 순간에 비로소 자유가 생겨난다는 것도 흥미로운 발상이었고. 

무신론자들은 재밌게 읽을 수 있다. 단, 종교적 믿음이 공고하면 카뮈의 담론이 불편할 수 있다. 

소설 <이방인>의 설명서격 작품이다. <이방인>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시지프 신화>가 도움이 될 것이다.

문제는 설명서가 더 어렵다는 점. 게다가 마음을 움직이는 <이방인>과 달리, <시지프 신화>는 머리를 움직이는 글이라 감동이 훨씬 덜하다.

개인적으로는 <이방인>이 카뮈의 메시지를 더 잘 전달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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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줄리 아씨>,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 예니. 

: 진보하고자 하는 시도가 어떻게 실패하고 어떻게 퇴보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누구보다 남성을 지배하고자 했던 줄리는 남성에게 명령 해달라 애걸하고, 

신분제에 도전하고자 했던 장은 백작의 명령에서 전보다 더한 공포를 느낀다. 

결국 발전하고 진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잠시 동안의 혼돈을 견뎌내는 것, 실패에 절망하지 않는 것임을 이 책을 통해 배웠다. 

단순한 치정극의 형태를 띄고 있지만, 신분 문제, 남녀 문제 등 다양한 사회 담론을 담고 있다. 

특히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보면 굉장히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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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지그문트 바우만, 동녘.

: 자기계발서보다 사회학 서적에서 더 위안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자계서의 경우, 지금보다 더 노력할 것을 요구하지만 사회학 서적은 그렇지 않다.

내가 겪는 문제를 사회라는 환경에 초점을 맞춰 분석하기 때문에 나만의 잘못이 아니라는 위안을 받는 것이다.

이 책 역시 그렇다. 날이 갈수록 시민들이 순응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훈계하는 학자들은 많다.

그러나 바우만은 훈계하지 않는다. 그는 무엇이 시민들을 순응적으로 만들었는지를 먼저 밝히고자 한다.

여러가지 담론이 나오지만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소비주의와 인간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소비주의의 '소비자-상품' 관계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타인을 마치 상품처럼 취급하게 된다고 바우만은 지적한다. 

읽고 나면 갑질이나 블랙 컨슈머 문제가 단순히 개인의 인간성 문제만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소득 불평등 문제가 나와서 경제학적 설명을 기대할 수 있는데, 경제학적 설명은 거의 없다.

엄격한 사회과학서도 아니고 철학과 사회학을 혼합한 형태의 책이다. 엄격하고 객관적인 사회과학서를 기대하고 보면 실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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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모두가 나의 아들>, 아서 밀러, 민음사.

: 안티 아메리칸 드림. 공동체를 고려하지 않고 물질적 성공에만 집착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잘 묘사한 희곡. 또는 '내 가족만 잘 살면 돼'라는 사고의 비참한 말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책임이 있다'라는 대사가 특히 인상적이다. 

작가가 던지는 화두도 좋지만, 작품성 역시 뛰어나다. 

특히나 악에 대한 묘사가 아주 인상적이다. 이 작품의 악역은 조 켈러다.

그는 불량 부품을 납품해 21명의 전투기 조종사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동업자에게 죄를 뒤집어 씌운 악당이다. 

그러나 그가 저지른 악행의 근원에는 너무도 인간적인 소망이 있다.

그저 내 자식 나처럼 배곯지 않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 아내를 고생시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악의 씨앗이 된다. 

그렇기에 조의 무책임함에 화가 나면서도 동시에 동정이 가기도 한다. 

뛰어난 작가는 이런 식으로 악역을 만든다. 

진짜 악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에서 싹트기 보다는 사소하고 인간적인 부분에서 싹트기 때문이다.     

희곡의 완성도가 높아서 데뷔작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다. 인물 간 갈등 관계도 복잡해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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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위대한 작가가 되는 법>, 찰스 부코스키, 민음사. 

: 안티 아메리칸 드림, 또는 반 노오력 찬가. 노력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 부지런하면 누구나 풍족한 삶을 쟁취할 수 있다는 미국적 믿음에 대해 비판한 시다.

쉽고 평이한 문체로 노력만 요구하는 사회와 야망에 사로잡힌 인간들을 비판한다. 

겁나 대충 쓴 거 같은데도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통찰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흠칫 놀라게 된다.

노오력이 부족하다는 말에 지쳤다면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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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김영하, 문학동네.

: 죽음과 예술에 대한 흥미로운 시각이 돋보인 소설. 솔직히 문체는 별로였는데 주제가 곱씹을수록 좋아서 선정했다. 

특히나 작가가 예술가를 어떻게 묘사하는지 보면 굉장히 재밌다.

화자인 자살 안내인은 죽은 자들을 그리워하며 그들로 작품을 만든다. 

마치 짐승을 죽여서 그 시체로 박제를 만들듯이. 

이제 죽은 자들은 예술이란 이름으로 불멸의 아름다움을 획득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는 갈증을 느낀다. 

결국 아름다운 죽음보다는 아름답지 않은 삶이 더 낫다는 것을 안내인을 어렴풋이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목을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고 지은 걸 보면, 김영하 작가는 계속 예술을 하겠다고 마음 먹은 모양이다.

예술이 자신의 삶을 박제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신인 작가의 유치함과 패기가 동시에 엿보이는 작품이다. 단순하게 쓰였지만 곱씹을수록 괜찮은, 단순하지 않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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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아무튼>,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혜정원.

: 솔직히 이 책은 내용을 요약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끝까지 다 읽었지만 이 단편집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나는 제대로 대답할 수 없다.

그렇지만 굉장히 흥미롭게 읽은 책이다. 이미지가 가진 설득력이 때론 논리를 압도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아고타 크리스토프 자신이 오랫동안 고국 헝가리를 떠나서 산 탓인지 공간에 대해 집착하는 주인공들이 자주 나온다. 

주인공들의 이러한 집착이 단순하면서도 기괴한 이미지로 잘 묘사되어 있다. 대표적인 작품이 <운하>이다. 

한 때 도시에 살았던 모든 이의 영혼이 도시를 둘러싼 운하를 따라 흐른다는 이야기다. 

공간이 단순히 생존의 장뿐 아니라 한 민족과 사회의 존재를 증언하는 화석임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 매우 인상 깊었다.

특히나 그걸 구구절절 말로 풀어서 설명한 게 아니라 이미지를 통해 제시했다는 점이 대단하다.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모국어가 아닌 불어로 글을 쓴 헝가리인이기 때문에, 글 자체는 사실 그렇게 아름답지는 않다. 

때문에 문체가 좋은 소설을 선호하는 독자는 실망할 확률이 굉장히 크다. 분량도 짧기 때문에 '뭐야, 별 것도 없네'하고 책장을 덮을 공산이 크다.

하지만 나처럼 괴상하고 짧은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는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이상, 올해 재밌게 읽은 책 9선이었다. 

독갤러들은 무슨 책을 재밌게 읽었냐? 소개 좀 해주라. 같이 공유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