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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에피소드 중 가장 유명한 창세기의 천지창조와 선악과에 따른 원죄의 탄생을 그렸다. 모태신앙으로 '원치 않게' 태어난 나는 이 책을 읽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당시에는 그저 성경의 생생한 해설서가 아닌가 싶었는데, '선악을 알게 된' 지금 와서 보니 해석에 따라 창조주 하나님(성부)을 사탄과 아담의 목소리로 교묘하게 돌려까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작가인 존 밀턴은 40대에 크롬웰의 실각으로 권력을 잃고 실명하기에 이른다. 그럼에도 사마천이 <사기>를 저술한 것처럼 초인적인 노력을 통해 이 책 <실낙원>, 후속편 격인 예수의 시험을 다룬 <복낙원> 등 불후의 명작을 저술한다. 아래는 자기 연민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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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 눈은 흑내장으로 시력을 잃고, 내 안구는 백내장으로 희미해져서, 당신이 나의 이 두 눈을 다시 찾아주지 않으니, 이리저리 눈을 굴려 당신의 힘 있는 빛줄기를 찾아보려 하지만 부질없고, 희미한 빛조차 볼 수가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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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주 성부(聖父)는 인간과 천사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다고 한다. 원죄론을 만들어낸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강조한 바 있다. 이 책의 주된 서사는 그의 관점을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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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잘못인가. 내게서 얻어낼 수 있는 것은 모두 얻어내고서 배은망덕한 짓을 저지른 인간의 잘못이 아니라면 대체 누구의 잘못이겠는가. 나로서는 인간을 의롭고 바른 존재로 창조했고, 타락의 유혹을 충분히 이길 수 있는 힘도 주었지만,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주어졌기 때문에, 타락하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타락하는 것이 가능하긴 하다. 또한 나는 하늘의 모든 천군천사들과 영들에게도 자유의지를 주었기 때문에, 선 자들이나 넘어진 자들이나 다 자유의지를 지닌 자들이다. 그러므로 선 자들은 자신들의 자유의지로 선 것이고, 넘어진 자들도 자신들의 자유의지로 넘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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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고위급 천사였다가 신(神)에게 반역이라는 타락을 저지른 사탄의 절규이다. 자유의지의 결과는 악에 대한 깨달음에 따른 비참함인 것으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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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모든 희망은 사라졌다. 그분이 우리를 천국에서 추방하고 유배를 보낸 후에, 우리 대신에 인간과 이 세계를 창조해서, 자신의 새로운 기쁨으로 삼은 것을 보라. 그러므로 희망아, 잘 가라. 희망과 함께 두려움도 잘 가고, 참회도 잘 가라. 내게 좋은 모든 선한 것들은 가버렸으니, 이제 내게 남은 유일한 선은 악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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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짐이 곧 국가다" (L'État, c'est moi)라는 말로 유명한 루이 14세, 곧 절대군주의 의지를 닮았다. 그저 신은 운명에서 벗어나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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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지만, 내가 그렇게 심연에서 물러나서 거기에 나의 선을 행하지 않는 것은 나의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다. 내게는 그렇게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필연과 우연은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고, 모든 일에서 오직 내가 뜻하는 것이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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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턴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알고 있기에 당대의 정설이었던 천동설에 대한 의문을 아담의 질문으로 간접 표현한다. 그리고 세상의 믿음은 곧 뒤집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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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지혜로워서 늘 모든 것을 적당하고 알맞게 하는 자연이 오직 이 한 가지 용도로 쓰기에는 너무나 고귀하고 지나치게 많은 천체들을 쓸데없이 만들어서, 날마다 저토록 끊임없이 반복해서 각자의 궤도를 돌도록 강요하면서도, 정작 훨씬 더 짧은 반경으로 돌면서 빛을 받을 수 있는 지구는 전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자신보다 더 고귀한 천체들이 헤아릴 수 없이 긴 여정을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시간으로 잴 수도 없는 빠른 속도로 돌며 보내오는 열기와 빛을 조공으로 받음으로써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게 하는 이 말도 안 되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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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셸리의 SF 소설인 <프랑켄슈타인>의 서문으로 유명한 구절이다. 나는 이 아담의 절규가 실낙원을 가장 인간적이고 아름다운 책으로 만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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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물주여, 언제 내가 흙으로 나를 빚어 인간으로 만들어달라고 요청했으며, 어둠으로부터 나를 이끌어서 여기 이 즐거운 동산에 데려다주시라고 간청했습니까. 내가 사람이 되어 살아가고 싶어서 당신께 나를 사람으로 만들어 존재하게 해달라고 요청한 적이 없으니, 나를 다시 흙이 되게 해주시는 것이 합당하고 옳을 것입니다. 또한 당신은 내가 스스로 원해서 지키겠다고 약속하지도 않은 선을 내게 지키라고 너무나 가혹한 조건을 내거셨으나, 나로서는 그런 조건을 따라 살아갈 수 없으니, 나는 당신이 내게 주신 모든 것을 반납하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내가 저지른 죄에 대한 형벌로는 충분할 것 같은데, 무슨 이유로 이렇게 내게 끝없는 비탄과 괴로움을 더하시는 것입니까. 당신이 말하는 정의라는 것은 정말 이해하기가 불가능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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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저출산 기사를 보면 거의 매번 댓글로 나올법한 글이다. 아담은 신에게 원죄를 저주받고 차라리 아이를 낳지 말까 고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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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에게 정말 좋은 유산을 물려주게 되었구나. 그 유산을 내가 몽땅 써버려서, 너희에게는 단 한 푼도 물려주지 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되기만 한다면, 너희는 나를 저주하는 대신에 도리어 그것을 막아준 내게 감사하지 않겠느냐. 아, 온 인류가 아무런 죄를 저지르지 않아도 한 사람의 잘못으로 인해 단죄되어 죽어야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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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비참한 인류여, 얼마나 심하게 타락하고 부패했기에 이 정도로 비참하고 참담한 처지가 되고 말았단 말인가. 이럴 거면 차라리 자녀를 낳지 않고 인간의 존재를 여기에서 끝내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이런 식으로 우리에게서 생명을 빼앗아가실 거면, 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단 말인가. 아니, 왜 이런 삶을 우리에게 강요하시는 것인가. 우리의 삶이 장차 어떠할 것인지를 안다면, 아예 생명을 받아 태어나지 않거나, 태어났다고 해도 곧 반납하고서 평안히 세상을 뜨는 것이 상책이지 않겠는가. 전에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어서 너무나 보기 좋고 바른 모습이었던 인간이 비록 죄를 지었다고 해도 이렇게 흉측하고 참담한 모습으로 변하여 비인간적인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인 것인가. 인간은 여전히 부분적으로는 하나님의 형상을 유지하고 있으니, 바로 그 창조주의 형상 때문에라도 이러한 흉측하고 참담한 모습을 겪지 않고 그런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야 마땅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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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정너인 신은 겉으로는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했다고 하고 실상은 이미 계획된 것이라고 아들(성자인 예수)에게 폭로한다. 신은 자신을 닮은 인간에게 행복과 영생을 주었지만 단 하나의 시험을 통해 전부 뺐어버린다. 그리고 다시 상속인 아들을 통해 구원한다. 미리 결과가 예정되어 있는 것이 자유의지인가? 여기서 악의 존재에 따른 대한 신의 논리적 모순*이 드러난다. 중세 스콜라철학부터 근대의 라이프니츠까지 많은 철학자들이 변신론(Theodizee)에 빠져들게 된다.

* 신이 자유의지를 부여해 인간이 악해질 것이라는 것을 전부 알았다면 신은 선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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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고 기뻐하는 아들아, 네가 인간을 위해 청원한 모든 것은 내가 영원 전부터 작정하고 계획한 것 속에 다 포함되어 있는 것이니 모두 이루어질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저 낙원에서 계속해서 살아가는 것은 내가 자연에 부여한 법에 어긋나는 불법이어서, 자연의 저 순수한 불멸의 원소들은 혼탁하고 이질적이며 추악한 것과 함께 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제 타락해서 더러운 것들로 오염되어 버린 인간을 토해내고, 병病의 원인이 되어 버린 인간을 낙원에서 쫓아내어, 처음으로 만물을 병들게 하고 부패하지 않은 것들을 부패시킨 죄로 말미암아 죽게 된 인간으로 하여금 그런 그에게 가장 알맞는 거칠고 나쁜 공기를 마시게 하고 썩는 양식을 먹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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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미카엘은 인간에게 삶을 안분지족하라고 당부한다. 그런데 자유의지를 주어놓고 분수에 맞게 살라? 어쩌면 인간은 마치 실낙원의 신처럼 ChatGPT로 대표되는 인간을 닮은 AI에게 같은 명령을 내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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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엘은 대답했다.


“너의 삶을 사랑하지도 말고 미워하지도 말며, 너의 삶이 길든 짧든 그런 것은 하늘에 맡기고, 네가 살아 있는 동안에 제대로 잘 살아가거라. 자, 이제 또다른 것을 볼 준비를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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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턴의 구교(가톨릭)에 대한 비판으로 보이는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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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까닭에 세상 풍조를 따르지 않고 성령과 진리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고수해나가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 극심한 박해가 생겨날 것이지만, 나머지 대다수의 사람들은 외적으로 그럴 듯한 의식들과 장엄한 모습만을 갖춘 종교로 만족할 것이다. 진리는 사람들이 퍼붓는 비방의 화살 세례를 받고 퇴색하게 되고, 참된 믿음으로 행하는 일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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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을 붙이면 이 책은 단테의 <신곡>처럼 윌리엄 블레이크 그림이 많이 담겨있다. 장엄하다고 불릴 수 없으며 상당히 해학적인 그의 그림은 실낙원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