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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기타맨 / 어느 여름날 / 가을날의 꿈 / 겨울
지만지에서 출간된 희곡집을 읽으면 이렇게 다섯 편을 읽을 수 있고, 창작 시기대로 정리되어 있다.
포세의 희곡을 전체적으로 살펴보자면, 절대 일반적인 근대극의 형식을 띄고 있지는 않음을 알 수 있다. 위키에서는 대충 입센 '다음 가는' 희곡 작가로 자국에서 대우 받는다는데... 입센을 '잇는' 작가가 아닌 이유는 당연히 둘의 작풍이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권말에 실린 작가의 말에도 적혀있듯 포세는 입센이 아닌 베케트와 밀러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덤으로 포세 본인이 자기 소설에는 (사이)가 많다고 언급했다.)
그래. 그러니까, 포세의 극은 기본적으로 '부조리극'이다. 극한으로 한정된 공간 묘사, 확연하게 이어지지 않는 (시로 쓰인) 대사들, 서사의 부재, (사이)의 범람 등등. 포세는 일정한 '리듬'을 지닌 채 극을 이끌어나간다.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어떤 방대한 일대기나 사건의 진행이 아니라, 인물의 대사를 통해 어렴풋이 끌어올려지는 과거의 기억들뿐이다. 그렇게 사건은 단지 내면으로서 무대에 출현하게 된다.
그래. 그러니까, 포세의 극은 진실된 사건의 재현이 아니다. 우리는 인물들이 나누는 대사를 통해 그들이 겪은 '삶'을 유추한다. 그래. 포세가 삶을 그려내는 방법이란 그런 것이고,
그래. 그러니까, 이러한 경향은 초기작인 '이름 / 기타맨'부터 나타난다.
<이름>에서는 한 가족이 만나며 일어나는 사?건을 다룬다. 만삭의 여인과 그의 남편, 그리고 가족들이 충돌하며 과거의 기억이 어지럽게 뒤엉킨다. 인물들은 강박적으로, 반복적으로 언행을 반복하고, 차라리 독백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을 만한 대화를 나눈다. 그들의 과거는 현재에 오롯이 녹아있다.(이러한 포세의 시간관은 뒤의 작품집인 <가을날의 꿈 외>에서 더 잘 드러난다.) 그래서 포세의 극에선 회상씬 대신 대화로만 과거가 드러난다. 그마저도 플롯이랄 건 거의 없다. 그저 이랬네 저랬네 하는 기억의 파편들만 존재할 뿐. <기타맨>은 이러한 기억의 파편이 아주 철저하게 '공연'된다. 바에 나타난 기타맨, 이것이 극의 전부다. 기타맨의 노래를 통해서만 삶은 재현된다.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한 남자의 길고 긴 연대기나 서사가 아니다. 지금, 기타맨의 노래에 담긴 삶의 회환과 파편들뿐이다. 이것이 전부다. 그래, 그러니까, 이것이.
<어느 여름날 - 가을날의 꿈 - 겨울>부터는 '사건'이랄 만한 것이 존재하게 된다. 그러나 포세는 역시 평범한 회상으로 그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어느 여름날>은 한 여자와 그 남편의 이야기다. 그 여자는 어떤 여자인가? 우리에게는 중년인 여자이고, 오래 전에는 아내였던 여자이다. 이 두 가지 시간대가 겹쳐지면서 극은 진행된다. 중년 여자는 과거의 여자의 공간속에 존재한다. 마치 자신의 과거를 들여다보는 것처럼, 극은 둘 사이에 무대적인 거리를 두지 않는다. 그건 말 그대로 함께 존재한다. 우리의 기억이 어딘가에서 불려들어온 것이 아니라 우리의 내면에 존재하듯, 그렇게 사건은 중첩을 거쳐 진행된다. 남편은 부조리극 주인공에 어울리는 사람이다. 약간의 불안 증세를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그는, 강박적으로 바깥에 나가 보트를 타려 한다(포세의 보트 모티프는 <보트하우스> 때부터 최근 작품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반복되는 듯하다.)
그래. 그렇게 여자는 그를 기다리는 것이다. 폭풍우가 치는 날 여자는 창문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그를 기다린다. 두 공간이자 시간, 과거이자 중년인 지금에서 기다린다. 과거에서 현실로 이어지는 기억의 중첩은 여자의 기다림을 지속시킨다.
<가을날의 꿈>은 가장 인상적이었던 희곡이다. 이 희곡에선 앞서 말했던 시간의 중첩이 극대화된다. 역시 공간은 단 하나밖에 없다. 공동묘지. 이곳에서, 남자와 여자, 둘은 만나고, 남자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등장하여, 넷이 존재하고, 그것들은, 모두 할머니의 장례식으로 연결되어 있다. 묘지에서의 만남으로 그들의 기억은 중첩된다. 역시 한 사건에서 한 사건으로, 한 시간에서 다른 시간으로 이동하는 데 구분은 필요하지 않다. 그것은 모두 하나의 공간(이곳이 공동묘지로 설정된 것 역시 의미심장하다. 묘지는 죽음의 공간이자 만남의 공간, 죽음으로 만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에서 시작되고, 끝이 나기 때문이다. 그래. 더 말하지 않아도. 아마, 그게 나을 것이다. 직접 보는 것. 그쪽이 훨씬 인상에 남을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 작품이 정말 인상적이었다는 말만 남기고 싶다.
마지막 작품 <겨울>은 공간의 전환이 존재한다. 공원과 호텔이라는 공간이 교차되어 나타나는 이 극은 여태 포세가 그렸던 관계에 대한 생각이 담겨있다.(여태 본 포세 작품에서는 전부 불륜이라는 소재가 등장했고, 여기서는 대놓고 섹슈얼리티로 극대화된다.) 이 작품은 약간 불륜극에 부조리극 쓰깐 느낌이라, 음, 그리 흥미로운 작품은 아니었다.
그래, 그러니까, 그게 그렇다.
아니, 그래.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그래. 나는 포세를 읽었다. (짧은 사이) 그리고 더 읽을 것이다. (짧은 사이) 어쩌면 다른 이들도 읽겠지. (사이) 어쩌면 독붕이들도... (말을 중단한다.) 그는 호불호가 많이 갈릴 것이다. 그래도 읽겠지.
욘 포세가 지극히 해체적인 작가는 아니다.
그는 오히려 해체를 통해서 절대성을 파헤치려는 작가에 가깝다.
그의 인간성이란, 일전에 쓴 감상평에 인용한 문구처럼 '어둠, 환하게 빛나는 것을 게워낸 어둠'이다. 그래. 그러니까, 기억의 반짝임을 게워내는 일련의 과정이, 곧 삶이라는 것. 그래서 그의 극은 반복되는 말이 더는 진행되지 않을 때. 그게 그렇게 계속될 때 끝이 난다.
그래.
(긴 사이)
이제,
이제 말할 게 다 떨어졌다.
암전하도록 하자.
.
.
.
독백-노래-기타 줄 풀기 이거 3개가 연쇄되며 나타나는 걸로 충분히 행위 예술로도 값지더라
기타맨 연극으로 봤으면 더 쩔긴 했을듯 ㄹ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