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바로 라블레야!
라블레의 팡타그뤼엘 3권은 팡타그뤼엘의 신하이자 광대 역할인 파튀르주가 자신이 결혼을 해야하는지에 대해 각종 사람들에게 질문하고 다시 반박하는 문답으로만 소설이 진행됨
따라서 A를 만남->A가 결혼의 이유에 대해 종교적인 이유를 내세움->파튀르주는 그와 모순되는 철학적인 이유로 이를 반박함->B를 만남->B가 결혼의 이유에 대해 철학적인 이유를 내세움->파튀르주는 이를 과학적인 이유로 반박함->... 무한반복 이런 식으로 소설이 진행되는데
결국 소설 내내 진행되는 건 각종 분야에 대한 지식, 정보에 대한 논리적인 연결, 파튀르주의 대상의 허를 찌르는 반박문, 이를 움켜쥐고 써내려가는 라블레의 열정넘치는 만연체 문장 등등인데
이게 도끼 소설들이랑 다를게 뭐임? ㅋㅋㅋ 하지만 도끼 소설은 무슨 삶의 진실을 담은 강론서처럼 취급받고 라블레는 유머 소설에 가까운 취급 받지
결국 도끼가 잘한 건 무거운 주제에 대한 선점일 뿐 오로지 도끼, only 도끼 거리면서 붙들고 있을 이유는 전혀 없다는 거임
그니까 19세기 러시아 문학이 소설을 완성했다는 고정관념은 좀 가져다 버리고 17, 18세기 소설들을 좀 더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맨날 그러니까 문체 다듬고 배경 설명 잘하는게 미덕인 줄 알잖아
누가 [19세기 러시아 문학이 소설을 완성했다]라고 주장함? 이 새끼가 원흉이네 ㅋㅋㅋ
대놓고 언급이야 안되지 현대인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느낌의 소설들은 19세기 후반에 대부분 나왔고 그때 중심이 러시아 문학이었으니 자연스레 올려치게 되던게 독갤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