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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재야의 압축기술자 '제임스초이스'인데
도끼를 이해하려면 스탕달, 발자크를 먼저 이해해야 하고,
그 이후의 문학사가 대략 어떻게 진행되었는가를 이해하는 게 필요한 듯.
한국에서는 이상하게 스탕달의 중요성이 과소평가되는데, 적당한 두께의 평전 한 권조차 아직까지 번역된 게 없을 정도.
스탕달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모더니즘에 매몰될 수밖에 없는 측면도 큰 듯.
나중에 적당한 길이의 글에서 다뤄보면 좋겠는데,
스탕달이 소설 문체에 가져온 혁신은 크게
1. 소설에 단속적인 '하드보일드'한 문체를 최초로 도입함으로써 엄청나게 다이나믹한 운동감을 창조함.
그래서 현대 소설의 문장은 스탕달 이전과 이후로 나뉨. 동시대 최고 수준의 문장가들인 발자크나 위고, 괴테 등의 소설 문장과 비교해볼 것.
2. 1번과 연결되는 맥락에서, 소설 문체의 현대적 '압축성'의 감각을 최초로 제시함.
3. 심리 묘사의 기술들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킴. 이건 다들 상식적으로 아는 얘기고.
4. 결론적으로 인간의 주관과 외부 현실이 불가해하게 혼합되어 있는 '인간 내면의 운동감'을 극히 역동적, 압축적으로 묘사하는 문체를 제시함.
극도로 압축적인 스탕달 문장은 존재의 '폭발' 운동을 보여주는데, 이런 압축을 스탕달보다 잘했던 작가는 세계 문학사상 전무하다는 점에서 극히 중요한 작가.
(스탕달, 발자크 세대 이후의 작가들은 근대화 과정 속에서 모더니즘적으로 파편화되거나 에밀 졸라식으로 '사회 소설화'되는 경향을 보여줌)
발자크가 파르마의 수도원의 한 장마다 '숭고함이 폭발한다'고 극찬했던 일화나, 약간 과장된 평가지만, 스탕달의 소설에는 한 장마다 소설 몇 편씩이 압축되어 있다는 극찬 등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하는 작가.
문장들이 인간 존재의 폭발을 일으키는 듯한 다이나믹한 진동을 느끼면서 읽는다면 스탕달을 깊이 이해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듯.
스탕달 이후의 소설은 크게 두 뱡향으로 발전했는데,
1. 스탕달에게서 배운 대가들의 '내면적 소설', '성격 소설'
2. 플로베르를 공부한 대가들의 모더니즘 소설(플로베르는 스탕달이 문장을 대충 쓴다고 '아마추어 작가'라고 매우 혐오했다고 함)
1번 라인은 19세기에 러시아에서 푸쉬킨-레르몬토프를 거쳐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에게서 절정에 달하고 이후 쇠락하게 되나, 현대 소설의 '기본기'를 형성함으로써 영원히 살아남는다.
"레르몬토프와 스탕달, 그리고 <적과 흑>에 대하여 황홀감을 갖고 반응한 푸쉬킨 사이의 상호관계는 다층적이며 복잡하다. 푸쉬킨의 심리적 수법은 스탕달의 영향 없이는 구성될 수 없었으며, 이와 더불어 유전적 작용이 이 산문가들을 묶어주는 유형학적 일치 위에 중첩되었다. 이 모든 것이 함께 어떤 식으로 푸쉬킨의 양식의 특징을 결정했으며, 그리하여 레르몬토프의 산문의 심층적인 분석적 심리학은 푸쉬킨의 "잘 두드러지지 않는" 심리학과는 확실히 다르지만, 그럼에도 푸쉬킨이 스탕달의 업적들을 소화했던 것은 간접적인 형태로 레르몬토프의 산문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할 수 있다."
В данном случае соотнесенность Лермонтова со Стендалем и Пушкиным, с восхищением отозвавшемся о «Красном и черном» («…я от него в восторге»; XIV, 166), многоуровневая и сложная. Пушкинский психологический метод складывался не без влияния Стендаля при чем на типологическую общность, связывающую прозаиков, накладывалось генетическое воздействие. Все это вместе в чем-то определило специфику пушкинской манеры, и, хотя углубленный аналитический психологизм лермонтовской прозы заметно отличается от «неброского» психологизма Пушкина, все же, как можно предположить, усвоение старшим поэтом достижений Стендаля опосредованным образом сказалось и на прозе Лермонтова.
- Вольперт Л.: <Лермонтов и французская литературная традиция>
(같은 저자인 Вольперт는 <푸쉬킨, 레르몬토프, 스탕달Пушкин, Лермонтов, Стендаль>에서는 레르몬토프가 스탕달을 직접 언급한 문헌학적 증거가 남아 있지 않으므로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많은 정황들과 공통점들을 살펴보건대 아마 깊이 탐독했을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이를테면 <적과 흑>의 주인공 쥘리앙 소렐은 레르몬토프의 <리곱스카야 공작부인>의 주인공 크라신스키와 매우 흡사하다는 것이다)
2번 라인은 1번 라인이 근대 사회의 파편화로 인해 필연적으로 쇠락할 수밖에 없었던 데 비해, 근대 사회의 파편성을 토대로, 20세기에 온갖 문학적 실험들을 통해 전성기를 누리고 이후 포스트 모더니즘을 거쳐 쇠락한다. 이 라인은 이후 현대 소설의 기교와 기법 실험 전통을 형성함으로써 살아남게 된다.
한 마디로 1번 라인이 '인간적인 예술'의 종합이자 절정이라면, 2번 라인은 오르테가 이 가세트가 말했던 것과 같은, '예술의 비인간화'의 실험적 전개이다. 그렇기 때문에 근대화 과정에서 1번 라인은 20세기에 쇠락할 수밖에 없었던 반면에 2번 라인은 20세기에 전성기를 맞았던 것이다.
1번 라인이 주로 인간의 내면적 운동을 '표현(表現이라는 번역어 자체가 내면적인 것의 외면화를 의미함)'하고 '전달'한다면, 2번 라인은 주로 어떤 절대적인 관점에서 대상을 '묘사'한다. 양자의 차이를 알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적절한 예시가 필요하겠으나, 이 부분은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뤄보자. 이를테면 백치 2부 초반의 므이쉬낀 공작의 의식의 흐름과, 제임스 조이스식 의식의 흐름을 비교해보라.
그렇다면 도스토예프스키의 주요 업적은 무엇인가?
여기서도 간단히 요약하고 넘어가고, 나중에 기회가 되면 더 풀어보기로 하자.
1. 니체는 시대적 한계로 인해 도스토예프스키를 깊이 이해하지는 못했으나(후기 대표작들은 거의 이해하지 못한 듯하고, <죽음의 집의 기록>을 극찬함), 도스토예프스키를 '나에게 있어 스탕달보다 더욱 큰 행운'이라고 예리하게 평가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1번 라인의 정점에 위치한 존재로서, 스탕달이 근본적으로 합리주의적 정신의 소유자였던 데 비해 극단적인 합리주의와 극단적인 비합리주의를 동시에 사유했던 특수한 모순적 인간이었다.
이것은 스탕달과 마찬가지로 근본적으로는 합리주의적 정신의 소유자였던 톨스토이가 건드릴 수 없는 영역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의 내면적 운동은 세계 문학사상 가장 큰 '덩치'와 비교 대상을 찾기 어려운 강렬함을 보여주며, 이 운동 영역의 발견은 도스토예프스키 없이는 상상하기 어렵다.(필자는 표현의 정교함과 결정적인 시적 깊이 면에서는 오히려 레르몬토프가 더 나은 듯싶다.)
이런 '극도의 합리성과 극도의 비합리성의 모순과 통일'의 발견은 스탕달의 표현 영역의 한계를 극복하게 해주었다.
2. 역사학자 카가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발자크의 성격 소설이 '유사성들의 축적'을 통해 인물을 하나의 전형으로서 제시한다면,
도스토예프스키는 '대립되는 것들의 축적'을 통해 인간을 하나의 모순 덩어리로 제시하는 방식을 세계 문학사상 가장 결정적으로 제시했다.
이것은 물론 단순한 성격 반전이나 그로테스크한 파편화와는 다르며, 도스토예프스키 이후 어떤 소설가도 이러한 유기적 복합성의 드라마틱한 폭발을 표현하는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후의 거장들은 심리학을 추구하면서 심리학에 매몰되거나, 문체 실험을 통해 파편화되거나 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스탕달과 발자크를 깊이 이해해야 도스토예프스키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까닭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여러 면에서 최초의 소설가로서도 중요하지만, 고전주의 소설 '최후의 대가'로서도 중요한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진정한 비밀은 단순한 심리학이나 성격 표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순되는 것들을 종합하여 하나의 유기적 드라마로 만들어내는 구성 능력에 있는 것 같다.
바.흐찐이 이야기한바, '최초의 대화적 소설가'로서의 도스토예프스키도 정점에 다다른 유기적 구성 능력이라는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스탕달과 발자크를 넘어서서 제시한 소설 창작 방식(모순되는 것들의 축적)은 현대 문학의 공리가 되었으며, 그런 면에서 이후 도스토예프스키에게서 자유로운 작가는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와
스탕달의 인물들처럼 살아보고 모더니즘으로 넘어간 거랑 스탕달류의 인물들이 존재한다고 들어만 보고 유행따라 모더니즘 따라한 거랑은 크게 차이가 나죠. 그래서 스탕달은 우리에게 존재할 수 없던 구대륙의 잃어버린 유산처럼 다가올 뿐. 이제 와서 스탕달 같은 인간을 국문학의 무대에 올릴 순 없는 노릇이고. 도끼는 어설프게라도 따라하고 만족(물론 제대로 따라하지 못했지만) 할 수라도 있지만 스탕달은 시도조차 하기 힘든 거리가 먼 존재라.
사실 근본 원리를 알아야 더 깊게 볼 수 있는 법인데, 그런 면에서 보면 아직까지 결정적인 스탕달 평전 한 권이 없는 건 아쉬운 일이죠. 말씀대로 스탕달에 대한 탐구 단계를 거치지 못하고 도스토예프스키로 다 해결하고자 했던 건 상당히 많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이해조차 없이 무작정 모더니즘에 뛰어든 작가들은 물론 더 많은 한계를 보여주었던 듯하고요. 스탕달 스타일을 재현할 수는 없는 일이고 또 이제 와서 그럴 필요도 사실 없겠지만, 일단 스탕달을 이해해야 할 필요는 있는 것 같네요.
ㄴ,ㄷ,ㅉ
혹시 적과 흑 역본은 어떤걸 추천하시나요?
김붕구
김붕구역이 옛날 번역이라 부정확한 부분들이 있기도 한데, 전체적으로 스탕달 특유의 리듬감을 가장 잘 살린 판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거보고 적과 흑 범우사 장바구니에 넣었다.. - dc App
엇그제 적과 흑 범우사 중고 구매한 샛별이의 승리....!
프랑스에서의 세르반테스 수용 및 (스탕달까지의) 발전 과정과, 선대 라블레와의 비교 및 그 영향에 대해서 궁금해지는데 혹시 간단하게라도 설명해줄 수 있을까..?
글쎄 나도 모르는 주제네 ㅋㅋㅠ 그런데 영향의 계보학이라는 것 자체가, 푸쉬킨처럼 "적과 흑은 엄청난 작품!"이라고 직접 명시해놓은 문헌학적 증거가 없으면, 스탕달-레르몬토프 경우처럼 뭔가 분명히 직접 읽었을 것 같은데도 확실히 말하기는 어려운 그런 상황이 되는 것 같아서 좀 애매하기도 한 듯(푸쉬킨이 읽었는데 레르몬토프가 안 읽었을 것 같지는 않기도 하고, 스타일에서 유사성이 드러나기도 함에도)....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스탕달은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였던가, 하여튼 힘들 때 돈 키호테를 읽고 엄청난 감명을 받았다는 기록을 남겼다고 하고, 르사주의 '질 블라스 이야기'를 평생 탐독하며 스페인 소설에 간접적으로 큰 영향을 받았다 이 정도? 라블레는 진짜 거의 모름 ㅋㅋ 고골이 영향 받았다 이 정도밖에.
아하... 그러면, 레르몬토프는 도스토옙스키하고 친연성이 깊은 작가임? 아니면 그저 우위에 있다, 그 정도의 뉘앙스인 거임?
레르몬토프가 러시아 문학의 본격적 심리주의와 내면적 산문의 시초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고, 특히 스타브로긴 등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마적 주인공들은 레르몬토프의 주인공의 후예들이라고 볼 수 있지. 근데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마들이 관념적인 비현실적 존재들이라면, 레르몬토프의 주인공은 매우 입체적인 현실적 존재라는 점에서 레르몬토프의 요절을 더욱 아쉬워하게 되는 듯....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eading&no=394354
그리고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eading&no=391928
동완역 <현대의 영웅>이 복간되면 좋을 텐데 여러모로 아쉬운 듯.
고맙쓰... 좋은 꿈 꾸길
ㄴ,ㄷ,ㅉ
스탕달 쉽다는데 너무 수준낮은 소설은 아님?
어려워야 수준 높은 소설인가? ㅎㅎ
ㄴ,ㄷ,ㅉ
ㄴ ㄷ ,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