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 정사의 내용은 언급 없이 순수하게 요시카와 에이지 판본의 소설을 바탕으로 작성한 글임
유비와 조조
유비냐 조조냐?
본 적이 있는가? 유비와 조조 누가 최고의 군주인지 서로 키보드를 휘두르고 막으며 자웅을 겨루는 자칭 삼국지 매니아들의 토론을. 비록 이 싸움은 피비린내가 풍기진 않지만 그 열정만큼은 실제 목숨을 걸고 겨루는 삼국지 속 일기토와 진배없다. 자신이 좋아하는 인물을 방어하고 그 대척점에 있는 인물을 공격하는 모습은 막상막하의 무술실력을 가지고 수십합을 겨루는 삼국지 속 영걸들 같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삼국지의 진짜 주인공은 비중으로 보나 독자에게 미치는 영향력으로 보나 유비와 조조다. 사실 유비와 조조는 각자의 인생의 주인공이기도 하지만 서로의 욕망을 좌절시키는 반동인물이라는 점에서 서로 얽히고설켜있다.
하지만 그들이 얽히고설켜있는 뿌리엔 본질적인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즉, 앞서 살펴보았듯 유비냐 조조냐를 선택하는 문제는 근원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이냐에 대한 문제다. 서로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이 유비와 조조다.
그들의 극명한 도덕관의 차이는 이미 뿌리가 흔들려 쓰러져 고사한 고목인 한 황실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두고 발생한다. 이것은 그들의 가장 큰 도덕적 과제다. 하지만 정답은 없기에 인의와 충을 좇아 한 황실을 부흥시키려는 유비와, 황실을 자기 권위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자신만의 세계로 혁신하려는 야심을 가진 조조의 도덕적 태도는 근본적으로 조화될 수 없고 통일될 수 없다.
하지만 유비와 조조가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처럼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이 지점에서 삼국지의 진짜 재미가 발생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대립된 상태에서 각자의 덕목과 덕목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간의 투쟁과 고유한 아름다움이 삼국지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삼국지를 읽다보면 유비는 대체로 선한 행동을 해서 그 상대가 황제든, 장수든, 백성이든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신뢰받지만 조조는 대체로 사람들이 기겁할만한 악행을 눈 깜짝 안하고 저지른다. 생각해보건대 은연중에 인물들에게 가치판단이 내재되어 독자들에게 특정한 반응을 이끌어낸다. 이른바 선악의 프레임이 등장인물들에게 씌여지는 것이다.
각 인물을 둘러싼 도덕적 사건을 정리해보자면 이렇다.
유비
도덕적 과제 : 인의의 실현과 한 황실의 부흥
주요 에피소드 1. 돗자리와 발 팔아 2년 동안 모은 은과 사금을 털어 귀족 출신 어머니가 마시고 싶어하는 찻잎 몇 장을 사기 위해 갖은 고초를 겪음.
2. 인의가 살아 있는 곳이라면 마다하지 않고 자신의 관직과 근거지를 버리는 등 자신에게 손해가 될지라도 도우러 감.
3. 황실을 능멸하는 조조 암살계획에 서명함.
4. 조조의 대군을 피하기 위해 최전선 신야에서 내륙으로 후퇴하지만 자신들을 따라 이주하는 백성들을 뿌리치지 못해 작전상 큰 손해를 입음.
조조
도덕적 과제 : 기존의 도덕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
부녀자를 희롱하고 거짓간계로 자신에 대한 참언을 아끼지 않는 삼촌에 대한 아버지의 신뢰를 거두게 함.
동탁 암살혐의로 수배된 아버지의 벗인 여백사의 집으로 도망침. 대접을 위해 돼지 잡으려고 칼 가는 소리를 오해해 여백사의 가족들을 몰살하고 도망치는 와중에 여백사를 만나자 여백사마저 죽여버림.
3. 원술 정벌 시 군량이 모자라자 군량담당인 왕구에게 곡식 횡령죄를 씌워 목을 베고 병사들의 불만을 가라앉힘.
4. 사냥터에서 황제의 위신을 깎아내려 황제에 대한 대신관료들의 환호를 자신이 받음.
도덕적 프로파간다?
위 사항들을 검토해봤을 때 우리는 한 가지 의심을 해볼 수 있다. 작품 내내 전면적으로 유비의 선한 면모는 부각시켜 유비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이끌어내고, 조조의 악행을 드러냄으로써 부정적인 평가를 이끌어내려 한다면 이것은 인의를 내세운 유교적 가르침을 세뇌시키려는 일종의 도덕적 프로파간다가 아니냐고 말이다.
어쩌면 이 작품은 선악의 프레임을 영걸들에게 덧씌워 독자로 하여금 하나의 가치평가를 유도하는 것이 아닐까? 만약 작품이 그런 목적이며, 목적을 달성한 훌륭한 프로파간다라면 유비냐 조조냐 하는 질문에 삼국지를 읽은 우리들 모두 유비요 하고 입을 모아 말해야만 한다.
하지만 독자들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 각 인물에 대한 도덕적 평가의 기초가 되는 사안들은 일괄적으로 옳고 그르다라고 판단할 수 없다. 생각해보면 행동에는 동기가 분명히 존재하고 조조의 행동에도 꽤나 타당한 측면이 있음을 확인한다면 우리는 놀랄 수 밖에 없다. 그렇게 검토하다보면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판단이 무엇이 좋고 싫은지에 대한 판단으로 변해버린다. 그렇게 우리는 어떤 인물상을 선호하는지 생각해본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상적인 유비가 아닌 현실적인 조조를 선호하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조조가 리더로서 유비에 밀리지 않는 카리스마와 자질을 지니고 있는 인물임은 틀림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삼국지 속의 세계는 난세다.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는 무법지대이고, 힘이 곧 질서인 시대다. 이 세계관을 바탕으로 잔혹하지만 도덕적 결점을 지녔음에도 현실을 깨닫게 하며 자신이란 존재의 정당성을 설파하는 조조에게 많은 독자들이 흥미를 느낀다는 점, 더 나아가 독자들은 유비와 조조 외에도 주변인물들이지만 각기의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 관우, 조운, 순욱, 가후, 주유, 제갈량, 사마의 등 여러 인물들을 탐구한다. 그리고 그들이 왜 자신들의 최애인지 살핌으로써 가장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과 나름의 답을 찾아 나선다는 점.
이런 측면들을 고려해봤을때 삼국지는 설령 애초에 도덕적 프로파간다용으로 설계된 소설이라 할지라도 실제론 더 많은 의미를 함축하며, 독자들에게 자신만의 의미를 찾아 나서게 하는 프로파간다 이상의 역할을 수행하는 소설이다.
유비의 일생 : 상승과 몰락
삼국지란 작품이 도덕적 프로파간다 이상의 위치에 있는 작품이라면 단순히 착해빠진 유비가 대체 왜 주인공인가에 대해 좀 더 설득력 있는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까라고 고심해본다. 하지만 어쩌면 문학적으로도 유비가 주인공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든다.
유비는 언더독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하나 예를 들어보자. 만화 슬램덩크에서 전국최강 산왕공고와의 압도적 점수차를 따라잡기 시작하는 북산고교를 응원하는 그 심리, 경쟁에서 뒤지고 있지만 어쩌면 최강팀을 꺾을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산왕을 응원하러 온 팬들도 북산을 응원하기 시작한다.
이런 사실은 기이하다. 인간은 왜 가장 압도적으로 강한 힘을 무조건적으로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그 힘에 미치지 못하지만 굴하지 않고 맞서 싸우는 것에 도대체 왜 감동하는 것일까? 과학적인 설명은 불가능하지만 가장 강력한 무언가에 굴하지 않고 맞서 싸운다는 그 점 하나만으로도 인간의 내면을 꿈틀거리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유비는 이런 역할을 수행한다. 그는 유주 탁현의 누상촌이라는 시골마을에서 돗자리와 발을 짜서 팔던 고대 사회의 전통적인 가내수공업자이고, 이는 요즘처럼 핸드메이드 명품제조자로 떼돈을 버는 부유층이 아니라 찢어지게 가난한 계층임을 의미한다. 가산으로 군대를 거병할 재력을 갖춘 집안의 후손인 조조 또는 4대째 삼공을 지낸 명문가문인 원소, 원술 가문에 비해 유비는 상대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환경임에도 군대를 모병해 황건적의 난을 제압하는 공을 세우고 차근차근 올라간다. 그는 고대 중국의 최소 지방행정구역 단위인 현의 현령부터 평원상의 자리에 오르고 서주 태수, 예주목, 한중왕,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많은 굴곡진 인생에 따라 상승과 몰락을 거듭해온 시대의 풍운아다.
그러나 유비의 인생은 항상 승승장구하지만은 않는다. 한 번 상승의 대가로 몰락을 맛봐야만 하고 끝없는 부침을 겪는다. 장비가 독우를 후들겨 어쩔 수 없이 현령을 그만두고, 인의를 좇아 자신에게 도움을 구하는 도겸을 위해 평원상의 자리를 버리며, 도겸 사후 서주태수를 승계받지만 승냥이 여포에게 서주를 빼앗기고, 여포 토벌의 공에 따라 황숙이란 칭호와 예주목에 임명되지만 한실을 능멸하는 조조에 대한 반감에 또 다시 서주로, 하북으로, 여남으로, 신야로 하나의 세력을 갖추지 못한 채 이리저리 방황한다.
하지만 세계의 질서가 조조로 재편되고 있는 상황에서 조조에 맞서 자신의 세력을 형성해 천자를 구하려는 일념 아래 유비의 분투, 그리고 자신의 한계를 계속해서 극복하기 위해 한걸음씩 전진하는 그의 모습은 때론 어설프고 서글프지만 결국 유비가 하나의 어엿한 나라를 세웠을 때 독자들은 감동한다. 그것도 개인의 영달이 아니라 자신만의 도덕관을 추구한 결과로 갚진 성과를 이뤄낸 점에 말이다. 이런 뚝심으로 나라를 일군 유비를 보고 우리는 고양감을 맛본다. 적벽대전과 한중전투에서 조조에게 승리하고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자신만의 세력을 형성한 것은 이른바 언더독의 반란이다.
하지만, 상승이 있으면 몰락이 있는 법. 그의 마지막 행복도 오래 지속되진 않는다. 조조의 아들 조비가 후한의 마지막 황제 헌제를 산양공으로 격하하여 쫓아버리고 천자의 자리에 오름으로써 후한의 거대한 영화는 멸망하고 유비는 절망한다. 이에 더해 아우인 관우가 죽었으므로 복수라는 또 다른 도덕적인 과제도 떠안고 있는 상황이였다. 절망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유비는 이루지 못한 도덕적 과제를 완수해야만 하는 책무를 짊어져야만 했고 실행에 옮겨야만 했다.
분노라는 감정에 사로잡힌 유비는 자신에게 재앙을 불러일으킬 파멸의 씨앗에 불을 지핀다. 그의 마음 속의 불길은 현실로도 번져 온통 타버리고 만다. 화공으로 그의 대군과 장래가 촉망되는 촉한의 지휘관들 모두 타버린다. 갓 서른이 넘은 육손이 일평생을 전장에서 살아온 유비를 손쉽게 이겼다는 사실은 독자들에게 더욱 강렬하게 다가온다.
유비가 졌구나… 황실의 부흥도, 형제들을 위한 복수도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렸구나!
조조가 적벽대전에서 대패한 것이 곧 그의 몰락을 의미하진 않는다. 패배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영토와 재화, 권세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비의 이릉대전에서의 패배는 그렇지 않다. 조조라는 강적에 맞서 극적으로 이룩해낸 국가이기에 그의 대패는 곧 그의 몰락처럼 다가온다. 그가 일평생을 지키려 한 도덕적 힘을 바탕으로 한 신념은 살아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것 때문에 그의 육체는 스러져버린다. 그가 일평생 지키려 한 도덕적 힘은 한 순간 불어닥친 불길에 모두 타버리고 그 자리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른바 북산엔딩인 것이다.
결국 유비는 패배의 여파로 백제성에서 시름시름 앓다 죽고 만다. 우리는 한 시대가 지나갔음과 동시에 결국 의욕한 바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허망함에 할 말을 잃고 만다. 우리는 백제성에서 지는 별을 바라보며 영원할 수 없는 인간의 허무함을 곱씹고 돼지쓸개를 핥는 것 같은 씁쓸함을 맛본다. 한날 한시에 죽자는 도원의 맹세를 결코 잊지 않은 유비의 진한 복숭아빛 낭만만 남긴 채…
삼국지는 인생의 방향을 점검해보는 나침반이다.
요약해보자면 삼국지는 한 황실의 유지계승을 내세우고 인의라는 도덕적 덕목을 지키려는 대표적인 인물격인 유비와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고 자신만의 질서를 추구하려는 대표적 인물격인 조조의 라이벌 구도를 다룬 한편, 그 과정에서 고난과 시련을 맛보면서 각자 자신들만의 아름다움을 꽃피워내려는 인간들을 다룬 소설이다.
우리는 그들의 죽음을 바라보며 각자의 덕목을 지키려 하지만 그 완전함을 이루지 못한 채 결국 지하로 스러지고 마는 인물들에게서 인생의 허망감과 더불어 무상감을 느끼는 한편, 죽음 앞에서도 의연하게 자신의 덕을 지키는 인물들을 바라보며 위대한 삶의 단편이 될 조각들을 발견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삼국지 속 영웅들의 행동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는 삼국지 속의 주된 재미로, 어떤 기준으로 그 행동을 평가할지 판단하는 과정에서 각 인물은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지 탐구함과 동시에 그 세계를 구성하는 각 개인의 덕목들의 좋고 싫음과 옳고 그름에 대한 평가를 통해 우리는 인생과 도덕에 대한 감관을 다듬어볼 수 있다.
수많은 삼국지 속 인간군상들 속에 어떤 영웅이 가장 좋은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다보면 곧 영웅에 투영된 자기 자신의 모습과 추구하는 방향성을 찾게 될 것이다. 결국 자기 자신을 탐색하고 발견하는 것, 그것이 사실상 삼국지가 가져다주는 가장 큰 매력일 것이다. 더불어 삼국지를 읽을 때마다 선호하는 인물이 바뀐다면, 그것은 곧 현실세계의 모진 풍파 속에서 자기 자신의 변화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수단으로써 삼국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오래 되어 의심스럽지만 그럼에도 인생의 방향을 적절하게 안내하는 여전히 유효한 나침반임에 틀림없다.
삼국지 추 - dc App
유교도들의 점자블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