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깊은 우울감에 빠져들었다
두 작품이 하나로 묶인 책인 탓에 우울한 작품을 연이어 읽은 탓인지도 모른다
이 일본작가의 실존주의는 서양의 실존주의와는 색이 좀 다른 것 같지만 실존주의의 냄새만큼은 그 어떤 작품보다도 짙게 난다
오바 요조는 위선적인 세상을 두려워하며 동시에 경멸하지만 그 자신도 타인에 대한 경멸을 깊이 숨긴채 순응하는태도를 보인다는 점에서 비슷한 인간이다.
그는 도무지 파악할 수 없는 세상사람들을 두려워하지만 그 자신이야말로 세상사람들을 능숙하게 속이는 사람인 것이다.
호리키가 요조에게 보이는 경멸은 요조가 갖고있는 호리키에 대한 경멸에서 비롯된게 아닐까?
인간실격에서 다자이 오사무가 자신의 분신을 전면에 세웠다면 사양에서는 주변인물로 그려냈다.
그러나 절망으로 끝난 인간실격과는 다르게 사양에서는 주인공 카즈코를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남긴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사양은 흐르는 물과같은 소설이라 막상읽고 나서의 감상은 딱히 쓸 내용이 떠오르지않는다.
다만 책을 읽으면서 카즈코가 불행으로 끝나지않기를 진심으로 바랬고 그녀는 투쟁이라는 그녀 나름의 방식으로 삶의 의지를 마지막까지 보여주었다
다자이 오사무 자신은 카즈코처럼 삶과 싸워나가겠다는 의지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강인함을 동경했을 것이다.
두 작품이 하나로 묶인 책인 탓에 우울한 작품을 연이어 읽은 탓인지도 모른다
이 일본작가의 실존주의는 서양의 실존주의와는 색이 좀 다른 것 같지만 실존주의의 냄새만큼은 그 어떤 작품보다도 짙게 난다
오바 요조는 위선적인 세상을 두려워하며 동시에 경멸하지만 그 자신도 타인에 대한 경멸을 깊이 숨긴채 순응하는태도를 보인다는 점에서 비슷한 인간이다.
그는 도무지 파악할 수 없는 세상사람들을 두려워하지만 그 자신이야말로 세상사람들을 능숙하게 속이는 사람인 것이다.
호리키가 요조에게 보이는 경멸은 요조가 갖고있는 호리키에 대한 경멸에서 비롯된게 아닐까?
인간실격에서 다자이 오사무가 자신의 분신을 전면에 세웠다면 사양에서는 주변인물로 그려냈다.
그러나 절망으로 끝난 인간실격과는 다르게 사양에서는 주인공 카즈코를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남긴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사양은 흐르는 물과같은 소설이라 막상읽고 나서의 감상은 딱히 쓸 내용이 떠오르지않는다.
다만 책을 읽으면서 카즈코가 불행으로 끝나지않기를 진심으로 바랬고 그녀는 투쟁이라는 그녀 나름의 방식으로 삶의 의지를 마지막까지 보여주었다
다자이 오사무 자신은 카즈코처럼 삶과 싸워나가겠다는 의지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강인함을 동경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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