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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적인 해석입니다 ㅎㅎㅎ, 읽은지 좀 되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용)
-한줄 요약 : GEB는 체계의 모순과 이성에 관한 책이당 -
에셔의 상대성
괴델 에셔 바흐는 요약하면 형식체계의 성질, 그리고 이성에 관한 책이다.
제목에 나와있는 세 인물 괴델, 에셔, 바흐의 공통점은 정교한 형식에서 체계의 모순을 탐구했다는 데 있다.
괴델은 수학을, 에셔는 수학/과학적 기법으로 미술을 바흐는 푸가 형태의 음악을 사용하여 그것을 보았다.
형식체계는 네이버에 따르면 알파벳과 공리라는 단어의 집합과 추론 법칙에 의해 생성되는 것들의 유한집합으로 구성된 것이라고 한다.
특정기호(알파벳: a,b,c 또는 1,2,3과 같은)와 거기에 적용되는 규칙(유클리드 공리, 페아노 공리 등등), 그리고 그로부터 생성되는 여러 정리들을 포함한다.
여기에는 우리가 이성의 대표적인 예라고 생각하는, 또는 이성이라고 생각하는 수학, 논리 그리고 과학이 해당된다.
괴델, 에셔, 바흐는 같은 개념을 다른 형식을 통해서 표현했다.
괴델의 불완전성의 정리, 에셔의 모순적으로 보이는 그림, 바흐의 음악(하나의 주제의 다양한 변형)은 하나의 개념에 대한 여러 은유이다.
위의 에셔의 그림을 보면 그림의 작은 각각의 부분들은 합리적이다. 계단을 걸어가는 사람, 문과 창문, 놓여있는 물건들 기타 등등..
문제는 이들을 전체적으로 한번에 보았을 때 생겨난다. 중력은 여러방향에서 마구잡이로 존재하는 것 같으며 계단은 위, 아래가 혼재되어 있으며 공간은
안과 밖이 중첩되어 있다. 그리고 계단을 따라가면 마치 우로보로스처럼 같은 곳을 맴돈다.
작게는 합리적인 것이 전체에선 모순적인 것이 된다.
괴델은 불완전성의 정리로 이를 표현한다.
이는 '충분히 강력한 어떠한 형식체계도 무모순인 동시에 완전할 수 없다.'와 '어떠한 체계가 모순이 없을 경우 그 체계는 자신의 무모순인 정리를 포함할 수 없다.'
다르게 표현하면 '체계가 완전하다면 참인지 거짓인지 결정/증명을 할 수 없는 명제가 반드시 있다' 그리고
'체계가 무모순적이라면 스스로의 무모순성을 증명할 수 없고, 스스로 모순이 있다는 것만 증명할 수 있다'라는 뜻이다.
무모순이라는 것은 체계에서 한 명제에 대한 참과 거짓이 동시에 증명(생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완전하다는 뜻은 체계에서 참인 명제는 모두 그 체계 내에서 증명(생성)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한다.
더 간단하게 말하면 강력한 형식체계는 반드시 모순(역설)을 포함한다는 뜻이다.
에피메니데스의 역설로 거칠게 비유를 들면 다음과 같다. 어떠한 체계 A가 다음과 같은 명제를 생성(증명)할 수 있다고 하자.
1. 에피메니데스는 크레타섬 사람이다. (참)
2. 모든 크레타섬 사람들은 거짓말만 한다. (참)
3. 에피메니데스는 모든 크레타섬 사람들이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 (참/거짓?)
3번이 참이라면 모든 크레타 사람은 거짓말쟁이이기에 크레타인 에피메니데스가 한 말은 거짓이다. (거짓)
3번이 거짓이라면 모든 크레타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기에 진실을 말한다. 에피메니데스 역시 크레타인이기에 그가 한 말은 참이다.(참)
3번 명제는 참과 거짓이 동시에 증명된다.
체계 A가 완전하려면 생성할 수 있는 모든 명제를 포함해야 하기 때문에 3번을 포함해야 한다. 그러므로 체계 A는 모순적이다.
체계 A가 무모순적이려면 3번 명제를 포함하지 않아야 한다. 3번 명제는 A의 알파벳과 공리에서 증명(생성)가능한 정리다. 이를 포함하지 않으면
체계 A는 완전하지 않다. - 무모순적이고 완전하지 않은 체계 A는 3번 정리를 생성(증명)할 수 있지만 3번 정리는 체계 A에 포함 되지 않기에 이를 증명할 수 없다.
이는 완전하려면 모순적이어야 하고 모순적 정리를 제거해도 형식체계가 스스로 모순의 존재를 증명한다는 이야기다.
모순이 제거된 체계 A의 알파벳과 공리는 모순정리의 존재를 증명하지만 체계 A는 그것을 포함할 수 없기에 증명될 수 없다.
모순이 무모순적 체계에서 증명되면 체계는 모순적인가 무모순적인가? 이는 ∞, 우로보로스 또는 다른 여러 재귀적 반복의 상징처럼 반복된다.
위와 같은 과정으로 괴델은 논리로 논리를 무너뜨렸다. 이성은 스스로의 모순을 증명했다.
이런 강력한 형식체계의 모순성이 이 책이 표현하는 주제이다.
책은 이러한 특성의 은유의 반복으로 가득 차 있다. (바흐에 대해선 애매한 감이 있다.. 음악을 잘 모름 ㅠㅜ...)
에셔의 그림의 작은 부분은 각각 합리적이다. = 형식 체계 A의 정리 각각은 증명될 수 있다.
에셔의 그림의 개념(안과 밖, 앞과 뒤 등등)은 중첩되어 있다. = 강력한 형식체계는 참과 거짓을 증명/결정할 수 없는 명제를 반드시 포함한다.
에셔의 그림의 패턴의 반복(같은 곳을 도는 계단, 형상의 변형과 복원) = 체계가 무모순적이라면 스스로 모순적인 것을 증명할 수 있다. 체계는 스스로의 모순을 가리킨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내포한다.
이런 이야기를 왜 아킬레우스와 토끼 그리고 거북이와 여러 등장인물들의 대화로 돌려서 표현하는가?
이는 호프스테터가 책에서 불교의 공안에서 예시를 들듯 우리의 도구(언어)로 표현 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을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모방한다.
공안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개에게 불성이 있습니까? - 無(무)
호기심 많은 중이 선사에게 물었다.
A: 무엇이 진정한 길입니까?
B: 그것은 네 눈앞에 있다.
A: 어째서 제 눈에는 안보입니까?
B: 너는 네 자신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A: 그러면 선사께서는 그 길을 보십니까?
B: 네가 '나는 어쩌지 않는다', '당신은 어쩐다' 이런 식으로 말하며 이분법적으로 보는 한 네 눈은 흐려져 있다.
A: 저도 선사께서도 없다면 다른 사람이 그것을 볼 수 있습니까?
B: 나도 너도 없다면 그것을 보려는 자가 누구란 말인가?
동산이 그의 중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불교에 보다 높은 이해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한 중이 앞으로 나와 물었다. "무엇이 더 높은 불교입니까?"
동산은 이에 대답했다. "그것은 부처가 아니다"
부족한 내가 생각하기에 위의 공안들은 하나의 성질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의미는 구분 지음으로써 생겨난다.
말로 정의하는 순간 그것은 그 성질을 표현할 수 없다. 그것의 성질과 언어는 모순된다. 이를 전달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은유이다.
책 자체가 이 성질에 대한 반복되는 은유이다. 각각의 장들도 이에 대한 은유이다.
괴델, 에셔, 바흐는 이 성질의 은유이며, 토끼와 거북이 아킬레우스의 이야기도 같은 것을 가리키는 은유이다.
등장 인물인 개미부인도 이 성질에 대한 은유이다. 은유는 은유에 꼬리를 문다.
은유 안에 은유를 내포하지만 그것은 같은 것을 가리킨다. 우로보로스처럼
이 책은 이성에 대한 은유이다.
이성이 우리의 일부, 또는 우리 자신이라 생각한다면
이 책은 우리에 대한 은유이다.
아.. 이렇게 책한권으로 또... 대신 읽고갑니다.. ㅋ
정성글은 무조건 ㅊㅊ
상권 읽었는데 아직도 기억에 남음. 그땐 읽다가 책에나온 부분 공부하고 싶어서 싶어서 바흐나 컴퓨터 과학쪽 아직도 공부하는 중인데 덕분에 얻은게 참 많은책.. 아직 하권은 안읽었는데 이제 다시 슬슬 읽어야 하나 싶음.. 덕분에 여러가지 공부하게 만들어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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