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항상 "감성"이란 번역어를 볼 때마다 이걸 왜 "감각" 대신 "감성"이라고 하지 생각했음
이 용법을 포이어바1흐에 대한 테제에서 처음 접했는데 도대체 뭔지 감이 안오는거야
"이제까지의 모든 유물론(포이어바1흐의 것을 포함하여)의 주된 결함은 대상, 현실, 감성이 단지 '객체 또는 직관'의 형식 하에서만 파악되고, '감성적인 인간 활동, 즉 실천'으로서, 주체적으로 파악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게 포이어바1흐 테제 첫 문장인데, 도대체 저기서 감성이 뭔 개소린지 알아먹지를 못하겠던 거임. 보통 감성하면 새벽갬성 할때 그 감성을 생각하니까. 그러다가 반년 뒤에 저걸 감각이라고 번역한 판본을 접하면서 저게 감각이란 뜻이란 걸 알았음.
그래서 난 이게 오래된 번역어구나 왜 이걸 계속 쓰는거지 하고 있었는데
순이비를 읽어보니 짜잔?
"우리가 대상에 의해 촉발되는 한에서, 대상이 표상능력에 미치는 결과가 감각이다."
내가 원문만 봤다면 미학이라고 생각했을 이 '감성'학(Ästhesik)의 두번째 문단의 첫 문장에서 이미 "감각"이란 번역어가 사용되고 있었음...
그리고 깨달았지... 옛날 역어가 유지되던게 아니라 이 미친 작자가 개념어를 존나 많이 구분해서 써서 시발 번역어로 쓸 단어가 없던 거였구나... 감각이 이미 개념어로 다른데 쓰이고 있어서 감성이란걸 계속 유지하고 있었구나...
칸트 이 미친 작자야...
+) 근데 bach는 왜 금지어됨?
`박'다. 이것이니까 bach가 그럴걸. 감각 이 감성 안에 있지
순이비나 존재와시간 같은 건 외우는 거지 이해가 아니야 왜냐 도무지 도무지니까
그거야 님이 이상한 번역본을 읽었으니까요
왜 히틀러가 독일에서 나왔는지 알거 같아 유대인도 유대인이지만 저렇게 대가리 빠개지는 책이란 걸 없애버리자 다 죽여버려 이래서야 이런 생각
그럼 하이데거는 지 책을 불태우고 싶었던거노...
내적 위대함(존재와 시간 불지르기)
하이데거는 지가 무슨 글을 쓰는지도 모르고 쓰더라고. 존재와 시간 그 책 도대체 뭐라는거야? 넌 알아?
한자닉은 분탕이니 무시
아는데 그냥 개드립이 떠올랐음
읽지도 못하는 책을 주워 섬기기는 잘하지 보통. 전혀 읽지도 못하는 애들이. 그러면서 막상 읽는 이들더러는 분탕이래지.
그럼 저 포이어바2흐의 테제에서 감성을 감각..이라고 보면 되는거고 그 감각이란 단어 정의는 칸트의 정의가 아니라 사전적으로 통용되는 정의로 이해하면 되는건가요? 도대체 맑스 읽을때마다 감성, 감성적인 인간 활동이 뭘 말하는 건지 모르겠음
노동.
독일 관념론 전통에서 써진 단어고 감성적인 인간 활동은 존나 복잡하긴 한데 일단 윗 놈 말이 대충은 맞음
그럼 대상 현실 감성이 객체 또는 직관 하에서만 파악된다는 건 대충 노동?으로서 파악된 게 아니면 어떻게 파악된다는 건지에 대해 가르침을 줄 수 있으십니까.. 단어만 떠돌고 이해가 안 됨
나도 저거 이해 못했음... 내 개인적인 해석을 그나마 이해한 곳 까지 말하자면 인간의 지각양식은 역사적으로 변화되고 또 인간이 감각하는 세상은 인간이 노동으로 개변한 결과이며 인식 자체가 정신'노동'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감각하는 바나나는 사실 바나나를 수입한 산업 즉 인간 노동의 집약의 결과물임
솔직히 포이어bach 테제가 맑스 텍스트중 가장 난해한거 같음...
오오오... 그래도 대충 무슨 말인지 알 것도 같네요. 법철학 비판을 다시 꺼내서 읽어봐야겠..
이론과 실천을 말하는 거야.
학자와 노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