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평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사실은 힙스터-디거-시네필-비평가의 자기분석이자, 비주류문화예술을 소비하며 성장한 예술학교 졸업생 92년생 남자의 자기기술임. 단순화하자면, ‘나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내가 사랑하거나 증오했던 문화라는 거울에 비친 나는 누구이며, 내 곁에 있는 문화들은 도대체 어떤 역사와 맥락 속에서 출현한 것일까’라는 질문에 답하는 자기-문화-비평임.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굉장히 정직하려고 애쓰기에, 이런 책은 드물고 귀한 게 맞음.
음악부터 시작해 영화, 드라마, 철학과 비평까지 맥락 없이 여러 문화를 샅샅이 파헤치며 분석하는데, 여기 나오는 고유명사들이 독자들에게는 낯설 수 있고 실제로 어떤 것은 문화 전체 지형에서 중요한 것인지 의문이 들 수 있지만, 그것들은 10대 이후로 지금까지의 이 작가 ‘개인’에게 깊은 영향을 끼치고 이 작가의 취향과 세계관을 형성한 것들임. 이 선택과 해석의 방식이 우리 시대의 문화에 대한 분석이라기보다 그 문화를 통과한 작가 자신에 대한 분석이며, 이 문화를 통과했더라도 다르게 경험한 사람이 보기엔 지나치게 자의적이고 동의하기 힘들다는 인상을 받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시대의 한 단면이 그려짐. 유난히 지성적인 한 사람의 캐릭터와 데이터과잉의 문화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방식에 대한 생생한 증언.
결국 이 책은 이 질식할 것 같은 현실을 바꾸고자 하는 욕망, 그리고 동시에 자기 자신의 폭력성과 유해함에 대한 성찰이기도 해서 이 지점이 매우 놀라움. 이건 ‘적당’을 넘어서는 용기가 필요한 쉽지 않은 일이기에.
인터넷과 도시 이곳저곳에 널린 문화상품과 정보들을 게걸스럽게 흡수하느라 정신없었던 1,20대를 돌아보고 새로운 시즌을 준비하기 딱 좋은 30대 초에 정점에 달할 수 있는 작업이고, 이 책의 방법론과 태도는, 비평가지망생이 아니라 그냥 문화소비자로 지냈던 다른 사람들도 참고하면 매우 좋을 것이라고 생각함.
극찬이노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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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 같지만, 인스타와 생활에세이들이 만들어내는 현재중심적이고 감각중심적인 자아 옆에서, 지성과 분석력을 발휘해 여러 시간들을 탐색하는 좀 다른 자아를 보여주는 게 이 양반 글의 매력이라고 생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