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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쯤인가? 우리나라에서 옌롄커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라는 소설을 바탕으로 한 동명의 영화가 개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직장상사가 이 원작소설을 엄청 감명깊게 봤다면서 이게 영화화됐다고? 이건 꼭 봐야해 하며 헐레벌떡 영화를 예매하곤 재밌을거라고 나에게도 권했기 때문이였다. 나는 거절하며 속으로 비웃음으로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아저씨특) 성인영화라면 환장하고 봄 ㅋㅋ’
난 옌롄커란 소설가를 모르기도 했고 영화의 마케팅이 성애장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삼류성인영화로 치부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분이 얼마나 안목이 높은 예술애호가인지 이 자리를 빌어 비로소 사과를 드린다. 아니 근데 그럼 소설을 추천해줬어야 하는거 아닌가?) 그런 기억이 남아서인지 미루고 미루던 간만의 중문학 기행의 첫 작품을 이 작품으로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 작품의 주요 소재는 듣기 싫어도 들을 수 밖에 없는 직장인들이 가장 즐기는 이야기인 바로 불륜이다. 사실여부가 밝혀지지 않은 불륜에 관한 뜬 소문마저 사람들의 모든 관심을 빨아들이는 강력한 진공청소기 같은 흡입력을 지닌 흥미진진함을 지녔다. 가공할만한 녀석이다.
불륜이란 소재는 마치 자석에 달라붙는 쇳가루처럼 흥미를 강렬하게 잡아당기지만 오히려 그런 흡입력과 몰입을 이용하기 때문에 이런 소재가 오히려 작품을 망치는 것은 아닐까? 자신의 부족한 문학적 능력을 오락성으로 씌우는 비열한 짓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봤지만 적어도 이 작품에는 감히 이런 불경한 생각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찐이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재미는 물론이고 탁월한 소설이란 생각이 들었다. 근데 아무리 내가 왜 재밌는지 왜 탁월한지 설명하려해도 못할거 같은데? 조바심이 들고 부담감에 등에서 한 줄기 땀이 흐른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읽은 선인류로서 이 책이 어떤지 이 작품을 읽을 후인류들에게 전달해야만 한다는 당위적 의무감이 든다. 아 이거 정말 좋은데 어떻게 좋은지 설명할 길이 없네.. 안읽으면 자기만 손핸데..
아 이렇게 무겁게 생각할수록 더 안써지는데 큰일이네 여태껏 썼던거 다 지울까?
먼저, 이런 유혹의 이야기는 유혹을 당하는 사람의 심리와 그 변화에 묘미가 있다. 유혹을 당하는 사람이 유혹을 당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발정난 개새끼 마냥 엉겨 붙어 교미한다면 그 얘기는 분명 재미없을터. (욕정의 해소를 목적으로 하는 일본 성인작품에서도 이딴 스토리는 퇴출당한다) 이른바 빌드업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유혹당하는 사람의 심리가 형성되는 과정과 점차 변화하는 과정이 드러나야만 한다. (이걸 잘해야 꼴잘알 작가다) 하지만 옌롄커는 야동이나 망가 스토리 짜는 사람이 아니다. 그의 작품은 꼴리게 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 아니라, 불륜이란 소재를 통해 인간의 어느 부분을 포착해내는 것이다. 따라서 독자들은 작품을 읽을 때 바지를 내린 채 읽는 것이 아니라, 정자세로 허리를 곧추세우고(발음이 비슷한 다른 걸 세워선 안된다) 자리에 앉아 책을 읽으며 감동을 느끼고 여운을 음미하게 된다. 작가는 미슐랭 3스타 주방장같이 능수능란하게 작품을 조리한다.
초반 스토리는 단순하다. 사단장 부인인 류롄이 사단장 사택에서 취사병으로 근무하던 우다왕을 유혹하고, 우다왕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홀리지만 유혹을 거부하고 도덕적 승리자로서 자부심을 지킨다. 그러나 류롄이 자신의 권력을 행사하여 그를 짜르려하자 우다왕은 그 권력에 못이겨 유혹에 넘어간다.
특히 류롄이 사단장의 출장을 틈타 우다왕을 살살 유혹하는 1, 2장이 어쩌면 이 소설의 클라이맥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류롄의 육체에 대한 묘사와 그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유혹에 넘어가버리고 싶은 우다왕의 아득함을 표현한 아찔한 심리 묘사 부분이 이 작품의 백미다. 일부만 인용하고 싶다가도 일부만 떼 봤자 별 의미도 없는 것 같고 걍 이렇게 소개해도 볼 사람은 보고 안 볼사람은 안보겠지 그냥 넘어가겠다. 중요한건 이게 아니다. 갑자기 엄마아빠 몰래 거실서 소리 죽이고 성인영화를 보며 마음 졸이던 때가 떠오른다. 침 한 번 꿀꺽 삼켰는데 소리 겁나 크게 느껴지는 고요하지만 눈을 뗄 수 없는 그 느낌, 그것도 영상이 아닌 글로 하여금 그 느낌을 느끼게 하고 독자들의 정신을 몽롱하게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아 갑자기 정신이 혼미해지네...
불륜이야기의 플롯은 단순하다. 누가 누구랑 붙어먹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벌을 받는다. 하지만 우리가 판사를 자처할 필욘없다. 즉 불륜에 대한 도덕적인 귀책을 물을 필요가 전혀 없다. 자자 바람피셨으니 이혼하시고, 아이는 누가 키우시고 재산은 몇대몇~~ 아니 이런거 필요없다고!! 중요한 것은 사막을 걷던 방랑자가 오아시스에 홀리듯이 바닥에 코 박고 미친 듯이 물을 핥아먹듯 왜 서로를 갈망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이다. 즉, 상간남녀의 심리. 이 심리를 잘 전달해야만 걸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의 이야기가 후지지 않은 것은 앞서 언급한 심리는 물론이거니와 그런 심리로 발전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류롄이 왜 우다왕을 유혹할 수 밖에 없었는지, 우다왕이 류롄의 수청을 들지 않아 짤릴 위기에 처하자 왜 그가 짤리면 안되는지에 대한 설정, 유혹에 넘어갈 수 밖에 없는 심리와 점차 그가 왜 류롄과의 사랑을 진정한 것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는지의 과정을 명문대 지망생이 수능문제를 꼼꼼히 풀고 OMR카드를 작성하듯 빠짐없이 그리고 탄탄하게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 관계의 변화
이 소설에서 눈에 띄는 것은 먼저 류롄과 우다왕의 관계의 변화다. 류롄은 우다왕을 교체할 수 있는 권한을 지녔고 유혹에 넘어오지 않자 자신의 패를 활용한다. 하지만 장인과 아내에게 가족들을 도시에 입적시키고, 간부가 되기로 각서까지 쓴 우다왕으로서는 절대 좌천되면 안 될 간절한 사유가 있었다. (요즘과 같이 가족간의 약속도 손바닥 뒤집듯 하는 세태와는 다르다는 점도 분명 고려되어야 할 것이며 물론 우다왕 개인의 성격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우다왕은 류롄의 유혹에 따라 류롄에게 봉사한다. 그는 성애 중 좋아서 어찌할 줄 모르고 울부짖는 류롄을 보며 정복감을 맛보기도 하고 권위로 자신을 복속시키려했던 류롄의 간악함에 대해 단죄를 내려 군자의 복수를 달성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는 점차 단순한 성욕의 만족이나, 복수나 정복감이라는 관계상 우월함을 맛보는 것에서 진화한다. 우다왕은 부부관계 직전에도 반드시 다음에는 공을 세워 승진하고 도시에 입적시킨다는 각서받는 아내와의 관계와는 달리, 즉 순수한 사랑이 아니라 무언가 단서가 달리는 대가가 결부된 아내와의 꼬무룩한 관계와는 달리! 류롄과의 사이에서는 어느 대가도 없는 그 자체로 순수한 빳빳함을 맛보게 된다.
그리고 이 순수는 진정한 사랑으로 나아가게 하는 기폭제가 된다. 고작 한두달 몸이나 섞는 불륜따위에 진정한 사랑을 운운하다니 그건 선을 넘는 것 아니요? 불륜을 미화하는 것 아니요?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들의 관계는 서서히 변화한다.
그 과정 자체도 점진적이다. 우다왕이 자신을 만족시켜준 날에는 류롄이 우다왕 대신 집안일을 한다. 주인과 노예의 지위가 바뀌어 버리는 것이다.(남편이 등산을 열심히 하면 아침밥상이 바뀐다던데 그런 취지와 상통하는듯 싶다) 하지만, 그건 성적 만족을 줄 것을 조건으로 하는 명백한 대가를 요구한다. 이 조건이 성취되어야만 그들의 관계는 잠시나마 역전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경계는 미세먼지 가득한 날의 하늘처럼 모호해진다. 그들은 주인과 노예가 아니라 주인과 주인 또는 노예와 노예가 된다. 대가성 없는 관계, 니 것과 내 것이 없는 그 희미한 경계 속으로 그들은 서서히 들어간다. 그들은 그렇게 수직적 관계에서 수평적인 관계로 변화한다.
그들은 거기에 멈추지 않고 한 단계 더 나아간다. 대담하게도 사단장 사택의 문을 걸어 잠그면서 모든 것을 배제한 채 순수하게 그 둘만 남는다. 그리고 그들의 꿈이였던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자연 그 상태로 으흐흐.. 4일간의 밤낮없는 관계 덕에 우다왕은 다리를 후들거리며 더 이상 남자구실을 못하게 되어버리지만!
우다왕과 류롄은 자신들만 있는 이 공간에서, 그들 사이의 순수한 사랑을 확인한다. 모든 것을 폭파하는 강력한 다이너마이트같은 억압된 본능의 표출로 그들을 가로막았던 장벽들을 모두 무너뜨린다. 마오 주석의 연설을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달달 외우던 열렬한 혁명 분자였던 그들은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는 듯한 마오 주석의 초상화, 어록, 거울, 팻말들을 다 어! 때려부수고 어! 다 뭉개버리고 어! 싸제껴버리고 그 모든 권위와 권력으로부터의 억압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친다.
그들은 그렇게 어느 것에도 권력이나 권위 따위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도취 속에 진정한 자유를 찾는다. 이제 그들을 막아서는 건 아무 것도 없고 오직 그들은 순수하게 상대를 인식한다. 그런 자유의 시간 속에서 몸부림치고 울부짖던 우다왕은 다시 빳빳하게 고개를 쳐든다. 그들은 진정으로 평등하면서도 순수한 사랑의 절정에 이른다.
그들은 자신들 사이에 있던 장벽을 모조리 허물어뜨렸지만, 현실의 장벽은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는 만리장성처럼 견고했고, 그 끝없는 아득한 장벽까지 모두 무너뜨리진 못한다.
모든 것을 버릴 각오가 된 우다왕이였지만 더 이상 이곳은 사단장 조리병이였던 내가 사단장 부인과 ~ 란 제목으로 시작하는 이세계가 아니다. 그리고 그들의 수직적 관계는 다시 부활한다. 다시 명을 내리는 사람과 명을 따라야 하는 사람으로. 그들은 폐쇄된 사택을 나와 열린 공간으로 돌아옴으로써 다시 현실로 돌아갈 준비를 마친다. (원래 관계로의 부활이나 문을 걸어잠구는 폐쇄성과 현실로 돌아올땐 다시 문밖으로 나온다는 설정도 진짜 미쳤음) 그리고 그들은 정기휴가를 마치고 맥빠져 터덜터덜 자대로 복귀하는 군인 장병 아저씨처럼 조용히 복귀한다. 원래 있어야할 곳으로.
**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의미의 변화
마오쩌둥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라는 슬로건이 적힌 사단장 사택에 걸려 있는 단순한 나무 팻말이란 소재가 작품 내내 의미를 가지며 그 의미가 변화하는 과정도 흥미롭다. (걍 미쳤음) 이것은 단순히 마오 쩌둥의 가르침을 전달하는 문구가 적힌 팻말에 지나지 않았으나, 곧 우다왕이 사단장 사택에서 근무를 시작하고나서부턴 ‘사단장을 위해 복무하라’로 의미가 바뀐다.
하지만 류렌이 팻말이 원래 위치에 걸려있지 않으면 바로 자기 침실로 들어오라는 은밀한 암호로 정하면서, 팻말은 사랑의 밀약의 표시로 변질된다. 원래 있어야 할 곳에 벗어남으로써 시작되는 그들의 관계는 곧 현실에 대한 이탈을 의미한다. (이것도 미쳤다) 그리고 이런 뜻들을 표상하는 팻말이란 물건 그 자체는 그들의 광기 어린 욕망과 그 속에 내재되어 폭발하고야 마는 억제 제어할 수 없는 분노와 반항에 순수를 추구하려는 그들만의 몸부림에 더럽혀진다.
그들은 한바탕 달콤한 꿈과 같은 낭만 속에서 현실을 초월한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시간은 흔적을 남기고 류롄의 몸에도 흔적을 남긴다. 류롄이 우다왕의 아이를 잉태하였는데 이 일은 얼렁뚱땅 넘어갈 수 없는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일이다. 왜냐하면 사단장은 적을 짓밟고 죽이는데는 선수였지만 침대에서 남자로선 은퇴한 선수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저지른 엄청난 일에 대한 결과는 현실에 커다란 상처를 남길 것이다...
우다왕은 사단장이 돌아온다는 소식에 류롄에게 부탁해 휴가 받아 고향으로 돌아간다. 고향에서 그는 망연해하지만 우연히 주운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가 표기된 나무 팻말을 발견하곤 조상 모시듯 모시기 시작한다. 그걸 밟은 아이의 뺨따귀를 날릴 뿐만 아니라, 고향에 돌아온 후 단 한 차례의 부부관계도 하지 않던 그가 아내에게 욕망의 사념체를 뿜어낸다.
그러나 그의 욕망의 대상은 아내가 아닌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팻말이였다.. 그토록 팻말에 대한 집착은 극에 달해 아내는 인민대장에게 내 남편 팻말보고 싸는 미친놈이니 다시 군대로 돌려보내야 된다고 호소한다.
인민대장은 우다왕에게 다시 원래 돌아갈 곳으로 돌아갈 것을 충고하며 그 나무 팻말을 뻥 차버린다. 그렇게 내버려진 나무 팻말과 그의 처지가 오버랩되며 (이것마저 미쳤다) 그의 현실에서의 두 번째 도피는 끝이 났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는 진짜로 원래 있어야 할 곳, 그리고 있어야만 하는 곳이자 자신이 저지른 엄청난 일에 대한 책임을 져야만 하는 부대로 돌아간다.
부대로 돌아간 우다왕은 개빡친 사단장의 조치로 사단은 풍비박산 나 완전히 재편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의 죄로 죄없는 사단의 인원들은 갈 길을 잃어버린다. 하지만 운 좋게도 그는 류롄의 마지막 보은으로, 상을 받아 그토록 염원하던 가족들의 도시입적이 가능한 지위의 일자리를 얻게 된다.
우다왕은 이제 더 이상 부대에 있을 수 없었고 떠나야만 했다. 그는 떠나는 마지막 길에 충동적으로 사단장 사택에 내려 류롄과 마주한다. 마지막 선물로 류롄은 그에게 익숙하지만 알 수 없는 무엇인가를 전달하는데 그것은 그들의 은밀한 사랑의 증표였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팻말이였다. 그리고 작품은 이렇게 끝이 난다.
** 에필로그
그런 일이 있은 뒤로 15년이 지나 우다왕은 류롄을 찾아간다. 15년 전 류롄이 그에게 전해준 사랑의 증표를 전달하기 위해. 하지만 류롄은 너무나 냉담하게도 졸병을 시켜 돈이 필요한거면 액수를 적어놓고 가라고 쪽지를 남길 뿐이였다.
그는 유혹에 시달리고 번뇌하면서도 결국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아니 어쩌면 유혹에 빠지기를 간절히 기원했을 연약한 인간으로, 마땅히 연약함에 상응하는 벌을 받는 것이 하늘의 이치리라. 하지만 그는 실업자가 될 동료들과 달리 운좋게 일자리도 얻었고 복락을 누리면서 신분상승의 상방도 열려 있었다. 그렇다한들 어찌 그에게 아무런 벌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으랴?
우다왕은 류롄이 전해준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팻말을 간직한 채 평생을 살아갈 수 밖에 없었다. 그가 불과 며칠 맛 본 진정한 사랑의 달콤한 맛은 다시는 맛보지 못할 영원한 고통의 구렁이가 되어 그의 온몸을 휘감아 옥죄였고, 그는 오직 진정으로 순수한 사랑을 되살려주는 존재를 간절히 그리며 단지 숨만 뻐끔뻐끔 거릴 뿐인 산송장처럼 모조리 박탈당한 현실 속에서 평생을 그저 그렇게 견뎌왔다. 그것이 그에게 내려진 최후의 형벌이었고 그것은 너무나 가혹했다. 아니 어쩌면 스스로에게 내린 형벌이였을지도.. 하얀 눈이 그의 머리 위에 계속 쌓여만 간다.
나는 사실 류롄과 우다왕의 사랑은 근본적으로 결여되었던 것이 다르기에 사랑의 의미도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류롄은 쾌락에 대한 갈망으로 시작한 유혹이고, 그 결과로 우다왕은 근본적으로 순수함에 대한 근원적 갈망에 눈뜨게 된다. 불이 붙었을때는 모든 것을 서로에게 주었지만 관계가 종료된 뒤에는 류롄과 우다왕이 추구하던 언제든지 대체 가능한 쾌락과 대체 불가능한 순수에 대한 갈망의 깊이가 다르기에..
그래서 결말도 애틋한 재회 이야기가 아니라 혼자만 상대를 갈망하는 일방의 이야기로 마무리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들 사이 모든 것들을 허물었다는 그 사실은 착각이였고 그들 사이의 간극은 여전한 것이 아니였을까? 그래서 눈을 맞고 그저 류롄의 ‘허가’를 기다리며 서 있을 뿐인 우다왕이 더욱 쓸쓸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그는 이별 후 15년째 그 자리에 한결같이 서있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극한의 심연 속을 허우적거리면서.
좋은 감상이네용... 나보다 깊이 감상한듯. 이제는 대중화의 거장 옌롄커의 일광유년과 딩씨ㄱㄱ
안그래도 담달 + 그해여름끝 사서까지 구매목록 1순위로 올려놈.. 한림원은 옌롄커에게 노문상을 대령하라!!!
중국 문혁시절인데 되게 창세기 요셉과 보디발 설화 떠오르더라. 우다왕의 야훼가 마오같다는 느낌.
오 검색해보니 진짜 비슷한 내용이네 ㅋㅋ
잘읽었습니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