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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나는 쫓기려고 태어난 사람인가?
도망치려고 생겨난 사람인가?
봄이 익어 보리모개가 팰 무렵이면
기쁘다는 것들도 슬프다는 것들도
내게는 두루 다 승겁기만 해
보리꽃 물결치는 밭둑길 따라
줄달음쳐 줄달음쳐 달아나기만 했나니
나는 아마도 달아나려 생겨난 사람일 게다.
그래 1937년 늦봄에는 또
제주도라 서귀포의 바닷가 언덕에 와
혼자 배꼽을 하늘에 드러내놓고
우두머니 누워서 빈둥거리고만 있었나니,
이런 때면 나는 차라리
한 마리 목청 좋은 아름다운 수탉이
무한이 무한이 부럽기도 했던 게다.
그리하여
'감물 들인 빛으로 짙어만 가는
내 나체의 샅샅이
수슬수슬 날개털 드리우고 닭이 웃으면……'
그런 시 귀절도 생각하고 있었던 게다.
여기로 오기 전에 서울서 이상(李箱)이를 만났을 때 내가
"어디 햇빛 좋은 보리밭둑에나 가서
실컷 드러누어 쉬어나 보시오" 하니
"그것도 해보았는데 더 피곤하고 고단키만 해"
대답하던 말소리의 그 그늘도 기억하며
어떻게라도 나는 그 창생초년의 것을 회복하려 하고
있었던 게다.
내가 이 여름 주로 먹고 살던 것은
'벼락'이란 이름의 제주 특산 소주와
해녀가 건져오는 소라와 전복과 생미역과
'보말'이라는 윷놀이에도 좋은 조개와
밤송이같이 생긴 성게와
간장에 절인 산초열매 죄끔뿐,
밥이라는 저속한 것은 거의 먹지도 않았나니,
심장은 늘 항상 부풀어올라
하늘과의 입맞춤에 잠겨들면서
자기를 한 신(神)으로 느끼고 사는
오만하고 무례한 자가 되어가고 있었지.
맑은 바다에서 미역 넌출을 따들고 나오며
기쁜 햇빛의 소리같은 노래를 부르는
젊고 예쁜 해녀도 모조리
나는 물론 여신들로 느끼고 살았지만,
그들이 가까이 올 때 드러나는
그 손톱 속의 때만큼은 딱 질색이었네.
그래, 여기 친구 누구더라
손톱이 고운 여신 하나만 데려와달라 했더니
어느 초생달밤 솔수풀 속으로
그 손톱들 밑에서도 초생달이 이쁘게 떠오르는
속눈썹도 아조 긴 처녀 여신 하나를 꼬아왔지만
그 노래는 신식은 신식이면서도
해녀들의 것보다 그 음색이나 음질이
하늘의 달이나 별들에까지 갈 것 같지가 않아
잠시 같이 앉아 놀다간 헤어지고 말았네.
장가들어도 좋다고 밤에 내게 이 미인을
데불고 온 청년은
큰 소나무 멋진 가지가 늘 태평이듯이
천둥 벼락에도 폭풍설에도 산들바람에도
태평이듯이
그렇게 늘 태평키만 한 말하자면 우수한 산보자로서
세계황제를 시켜준대도 그건 귀찮아 정말로 안할 사람이라
이게 좋아 어느 이슬비 오는 산보길에서부턴가
음양처럼 따라다니는 친구가 되었네만
가만 있자, 이 나라엔 이런 친구가 사실은
꽤나 많은 줄로 아네.
별일이지. 암 별일이구말구. 어슬렁 어슬렁 어슬렁하고 말씀야.
하지만 이런 희랍 신화풍의 신의 연습이라는 것도
오래 이어 하자면 매우 고단한 것이라,
제주도 대유 석 달 만엔가
마지막으로 또 한 번
정방폭포의 쏟아지는 물을 실컷 맞고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배에 올랐나니,
집에 오자 그 피곤한 <자화상>이란
시를 쓴 걸 보면
나는 꽤나 지쳐 있었던 모양이야.
- 『팔할이 바람』(1988)
-
서정주의 첫 시집 『화사집』에는 위의 제주도 기행을 바탕으로 쓴 이른바 '지귀도 시' 네 편이 실려 있다. 시인 자신이 회고하는 것처럼 그의 제주도 기행은 내적으로는 자신을 하나의 신으로 여기게 될 정도의 강한 자의식을, 외적으로는 야생적인 삶에 대한 긍정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전자를 대표하는 작품이 「정오의 언덕에서」라면 후자를 대표하는 작품은 「고을나의 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들이 『화사집』 시절의 어떤 에너지를 특이한 방식으로 형상화시키려 한 노력의 소산인 것은 인정될 만하다. 그러나 이 두 편의 부분적인 성공을 제외한다면 전반적으로 지귀도 시는 시집 내에서 하위권에 머물러 있는 작품들이라고 느껴진다. 이숭원은 『미당과의 만남』에서 훗날 『안 잊히는 일들』 연작으로 발표한 「제주도의 한여름」이라는 시를 인용하며, 시인의 제주도 기행의 실상이 지귀도 시의 수사와는 딴판인 객기 체험에 불과했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지적하고 있다. 수탉을 '웅계(雄鷄)'라 부르며 '지귀 천년의 정오를 울자'고 노래한 것이 실상은 술 먹고 닭 보고 토하는 소리에 다름아니었음은 시인 자신이 인정한 바이기도 하다.
위의 시 「제주도에서」는 「제주도의 한여름」과 같은 소재를 공유하면서 보다 많은 이야기를 덧붙이고 있다. 그래서 내용 전개가 다소 난삽하게 된 단점도 있긴 하다. 가령 해녀 같지 않은 신식 미인을 그에게 소개해 주었다는 청년에 대한 설명은 사족처럼 느껴진다.(『천지유정』에 이 인물의 모델로 추정되는 인물이 나오는데 확신은 없다. 당시 서정주는 자신의 친구 중 한 명이 제주도에 연고가 있어 숙소를 대주었으며 그가 허무주의자 같은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말하고 있다.) 서정주의 정신적 궤적과 관련해서 은근하게 지적되고 있는 사항의 하나는 그가 나이를 먹으면서 『화사집』 시절을 다소 어쭙잖게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지귀도 시에 쓰인 수사적 포장에 대한 고백도 그렇지만 그 뒤에 쓴 「자화상」을 두고 '피곤'하기만 한 작품이라는 식으로 부르는 것 또한 이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상이랑 미당이랑 동년배였나...? 뭔가 되게 낯서네
미당이 다섯살 동생ㅋㅋㅋ 저 시를 쓸 땐 서정주도 70대였으니까 그냥 편하게 적은거같음
약간 윤동주 - 문익환 느낌임 ㅋㅋㅋㅋ 분명 나이로 윤동주가 연하가 아닌데 일찍 죽어서 그런가 연하 같은 그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