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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비판과 범신론 논쟁이라는 대주제 하에서 하도 다양한 내용들이 전개되어서 요약은 못하겠고(주요 인명만 두자릿수임) 감상만 몇개 남겨보자면

- 뜬금없게 들리겠지만 후기 비트겐슈타인은 현대판 피론주의자가 맞는거 같다.

- 나로서는 회의주의에 대한 슐체의 입장이 호감인데, 야코비든 하만이든 전부 피론주의 특유의 그 나이브함, 그러니까 일상적 실천에 모든 걸 맡기면 된다는 순진함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순진함은 일상적 삶 자체가 잘못 돌아가고 있을 때나 상이한 (비트겐식으로 말하자면) "삶의 형태"가 충돌할 때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물론 철학이 사회에 대해 말을 '해야'한다는 것은 속류 행동주의이겠지만, 불만 정도야 가질 수 있는 것 아닐까? 애초에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체제 긍정적으로 될 수 밖에 없는 또 다른 하나의 말이다. 비판을 결여한 철학은 단순한 어용철학으로 전략하게 되어있다. (파시즘이 민족주의적 다원주의에서 출발함을 기억하자) 피론주의식의 회의주의와 다르게 슐체는 회의주의를 이성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이성이 취할 수 있는 일관된 입장으로 받아들이고 회의주의를 무엇보다 비판으로 취하고 있다. 그 점이 호감이다. 참된 회의주의는 아타락시아를 향할게 아니라 파산을 향해야 한다.

- 야코비는 문제 제기는 흄 다음으로 정말 잘 한거 같은데 해결책이 똥이다. 그냥 문제 제기만 계속했으면 더 탁월했을 듯 하다.

- 멘델스존은 칸트랑 야코비한테 털린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뭐가 있는 사람이었다.

- 헤르더 파트인 5장은 유일하게 노잼이다.

- 6장은 로크주의자들을 다루는데, 로크주의가 저때까지 유지된게 신기하다. 다 흄주의자들일 줄 알았는데...

- 초월론 철학의 강점이자 약점은 그 소극성에 있는 것 같다. 칸트가 흄에 의해 반박된 것을 전제해놓고 흄을 반박한다는 비판이 책에서 여러 논자들에 의해 매우 자주 제기되는데, 칸트는 자기 철학을 권리의 문제로 돌림으로서 이를 해결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결과적으로 흄은 반박되기는 커녕 서로 무관한 것이 되는게 아닌가 싶다. 칸트가 흄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는 실제의 경험이 광상곡이 아닌지 맞는지는 몰라레후라고 하는 방법 말고는 없어 보이는데, 이것은 일관성은 가지겠으나 칸트 자신의 의도와는 상반되어 보인다.

- 피히테가 반은 스피노자 주워먹었고 반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 같았는데 라인홀트나 마이몬 등등 나름의 흐름 속에서 나온 사람이었다.

- 라인홀트의 철학은 매우 흥미로웠다. 표상의 내용 자체를 의심할 수는 없다는 후설의 회의주의 반박을 선취한 것 부터 시작해서, 칸트가 표상 개념을 제대로 정의하지 않고 있다는 것도 수긍이 갔고, 그 밖에도 근원 원리는 증명될 수 없다는 등 피히테스러운 부분이 많아서 흥미롭다.

- 마이몬은 프로토-들뢰즈로 보였다. 읽어봐야만 하는 사람 같은데 번역은 커녕 관련 책이 있기는 한가...?

- 스피노자주의와 낭만주의의 영향을 좀 더 자세히 다뤄줬으면 좋았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