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석공(石工) 기일(其壹)」



  자식에게 석공 노릇을 가르칠 때

  용봉(龍鳳)이나 보살 아니면

  좋은 꽃 구름이라도 한 송이

  새겨 놓고 밤 맞이하는 걸 가르칠걸,

  내 워낙 머슴살이에 바빠 그걸 못 하여서

  자식은 날마다 제 뼈다귀 울리며 돌만 쪼면서도

  맨숭맨숭

  네 모로

  여섯 모로

  맨 모만 새겨 놓고는,

  여기서 해방될 때는 그 갑갑증으로

  불소주집으로 들어가서

  누구의 멱살을 잡고

  유리창을 깨고

  파출소로 들어가는 게 뵌다.

  내가 서 있는 지게 진 머슴살이의 저승길에서도

  환하게

  파출소로 또 들어가는 게 뵌다.



- 『서정주문학전집』(1972)




-




현재의 전집에서 이 시의 제목은 한자어를 이해하기 쉽게 바꿔 그냥 '석공 1'로 되어 있다. 제목으로 보아 석공을 소재로 한 시를 여러 점으로 구상한 것 같은데 후속 작품은 보이지 않고 있어 의아하게 느껴진다. 이 시는 삶에서 일과 일의 바깥 간의 관계를 노래한 시이다. 석공이라는 예술가에 비유된 것이긴 하지만 주제 자체는 예술가에게 한정되는 것이 아니고 노동에 대한 보편적인 문제를 그린 것이라고 하겠다. 마찬가지로 시의 내용이 이러하다고 해서 반드시 시인이 화려한 문양을 무문(無紋)보다 윗길이라고 생각했다고 단정짓는다면 곤란한 일이다. 그의 시 중에는 문양 없는 도자기를 노래한 「이조 무문백자송(無紋白磁頌)」이라는 작품도 있다.


화자인 석공은 돌을 쫄 때 문양을 새기고 나서 밤을 맞이하는 지혜를 아는 사람이다. 이때 문양 새기기의 지혜란 일을 하면서 생기는 피로를 오히려 일 자체를 통해 해소하는 것에 대한 비유이다. 그러나 석공은 이 지혜를 알면서도 도리어 그 자신이 일에 치이느라 바빠서 이것을 자식들에게 가르칠 겨를을 갖지 못한다. 그 결과 그의 자식들은 자신의 일 속에 문양을 새기지 못하고, 일에서 쌓인 피로를 일의 바깥에서 풀다가 더러 사고를 치는 꼴이 된다. 저승길에 선 석공의 입장에서 그 모습이 '환하게' 비쳐 보인다는 마지막 구절은 아마 반어적 표현일 것이다. 지루한 해석이 되겠지만 이 시는 발전해 가는 시대가 가지게 되는 그늘의 한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