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그런데 달아난 말 출간이란 우리가 영원히 유예되는 것이라 동의하였으니 곧 해체꾼 자네의 정의로움(δικαιοσύνη)와도 같은 것이겠지?
로크: 나는 이 번역을 기다린다. 또 기다린다. 또 기다릴 수 있다. 계속해서 그럴 수 있다. 나는 이를 풍요의 바다성이라고 한다.
스피노자: 제2부 정리 26과 제3부 공리 3, 제7부 정의 273에 의하여 풍요의 바다는 2033년에 완간된다는 것이 따라나온다. Q. E. D.
칸트: 무릇 우리가 기다리는 번역이라는 것이 도대체가 나올수 있는 것인지를 사념해보면, 출간 일반은 단지 소극적으로만 사용될 수 있는 우리 오성의 기다림을 규제하는 이성의 이념의 규준이라는 것이 분명하게 우리 이성에 표상으로 나타날 것이다
피히테: 1. 풍요의 바다 출간일을 X라고 하자. 2. 이 X는 유예되었다는 표상은 분명하다. 그로부터 이 표상의 필연성은 필연적으로 연역된다.
헤겔: 오히려 즉자적으로 도망친 말과 미시마 자기의 분리가 지양되어 있으므로, 이 경우는 즉자적으로 존재하는 바대로 민음사의 출간적 확신 속에 존재하고 또 그런 출판사에 존재하는 대로만 그렇게 즉자대자적으로 존재한다.
포이어바1흐: 그러나 달아난 말은 유예된 적이 없는가? 한번 보자!
마르크스: 달아난 말의 생산이 즉자적으로 이념적이란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념적이란 것은 무엇인가! 이 성체변화는 일어나기 위해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출간이다. 그리고 민음사는 달아난 말을 다 내겠다고 호언장담하였기에, 우리는 기다릴 것이나. 그것이 좋은 선택인지는 모른다.
레닌: 1) 풍요의 바다 번역은 2023년에 나온다. 그런데 2023년은 이제 한달 반 남았다는 것이 모든 반신앙주의적인 상식을 가진 이들에게는 자명하다. 따라서 제1단은 물러가라! 민음사라, 참으로 훌륭한 출판사군! 우리는 달아난 말이 내년에 나온다는 헤어 플레하노프의 말을 믿을 수 없다!
후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 달아난 말의 한국어본이 소여될 것이라는 필증성과 충전성, 이것이 어떻게 선소여된 생활세계적 토대맞춤 위에서 그 자체 명증하게 스스로를 나타내고 드러낼 수 있단 말인가?
하이데거: 달아난 말은 출판-중-존재다. 그것은 출판-중-존재로서 그 역광을 언제나 출판-과정 속에서 일으키고 또 영원히-유예됨의 상태일 수 밖에 없다.
들뢰즈-가타리: 태양-출간. 출판사 민음사는 언제나 그 출간일을 가지고 있으라. 말은 항상 달아나는데, 이는 비유가 아니라 참된 진실이다.
이런 거 보려고 독갤하지
병신들ㅉ
존 로크, 루소, 데카르트는 칸트 헤겔에 비해 그냥 쉬운건가요 글을 잘 쓴 건가요? 역시 전자인가 - dc App
둘 다
디카이오쉬네
들뢰즈는 들뢰즈-가타리로 수정하는게 맞지 않노? 단독 저술에서도 말 더럽게 하지만 저런 초현실적인 텍스트와 비교하면 그나마 학술적인 문체를 구사하니까
ㅇㅋ
이거 번역체뿐만 아니라 원문도 느낌이 비슷함? 번역자들이 이런 뉘양스까지 공부하는거려나.
쇼펜도 해주셈ㅋㅋ
똥오줌 어디감
아 걸으면서 보다가 빵터졌네 ㅋㅋㅋㅋ
-이건 읽을때 어캐 읽냐 ()이거처럼 읽어야하나
하이데거식 문체 보고 바로 ㅊㅊ했다
ㅋㅋㅋㅋㅋㅋ - dc App
하이데거 ㅈㄴ웃기네 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