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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곳이 이름 붙일 수 없는 곳이기 때문에 현실이 아닌 것 같고, 감당할 수 없다고 말했던 적이 있었는데, 하지만 이젠 어느 틈에 그 반대가 된 거야. 이제 난, 아직 이름은 없지만 엄연히 우리 앞에 놓인 이 확실한 현실들을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아. 또, 이런 표현이 어울릴까, 그 현실과 마주 서는 고뇌를 가지고 춤출 수 있다고, 그렇게 말한다면. 문 창호지에 비쳤던 네 몸짓같이 말이야. 그리고, 이건 보다 중요한 말일지도 모르는데, 앞으로 헤쳐 나갈 앞날이 참담하고 어렵게 느껴지긴 하지만, 어쨌든 이제야 난 싸울 수 있을 것 같아. 내 식으로, 모든 것과. 삶, 관계, 또 모든 것, 정치나 사회 같은 것들과도… 이를테면, 난 존재하기 시작한 거야.」



. 낯선 시간 속으로. 많은 독붕이들이 이름만 들어보고, 아마 첫 페이지 펼쳐봤다가 금방 덮었을 소설이다. 출간 이후 이 소설에는 많은 수식어가 붙었고, 80년대 '전위 소설'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김현에 따르면 아주 촘촘하게, 계획적으로 써내어 작가가 투고한 이 소설은, 4편의 분리된 중편이 마지막 소설 <낯선 시간 속으로>에서 합쳐지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 그렇다면 이 소설의 큰 서사는 무엇일까? 전위, 모더니즘이 으레 그렇듯 사실 이 소설은 서사로 밀고 나가는 작품은 아니다. 80년대 작품 치고는 드물게도(물론 80년대 한국 소설사를 자세히 파헤쳐보면 이런 모더니즘 작품이 드물었던 것은 아니다. 심지어 우리가 잘 아는 <난쏘공> 역시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중간 위치에 자리하는 작품이라는 평이 많으니. 모더니즘의 유전자는 한국 문학사에 내재되어 오랜 기간 내려오고 있다.) 이 소설은 사회적인 이야기를 주류로 다루는 작품은 아니다. 적어도 우리가 아는 80년대 소설의 방식으로는 다루지 않는다.


. 서론이 길어졌는데, 이 소설은 앞서 말했듯 4편의 중편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편을 이렇게 쪼개서 설명해보자면,


1. 1974년 봄 - 한 일병이 전역 버스 안에서 깊은 생각에 잠긴다.

2. 1974년 여름 - 전역한 남자는 방에 드러누워 아버지의 성묘를 가려한다. 가야한다.

3. 1974년 가을 - 남자는 관객이 되어 배우였던 자신의 극을 바라본다.

4. 1974년 겨울 - 놓쳐버린다. 바다로 떠난 그는 놓쳐버린 것들을 다시 지나치며 '낯익은 시간'을 수렴해간다.


대충 이런 구성인데, 이게 소설의 전부다. 이 틀 안에서 모든 게 이루어지며 소설의 모든 경계, 그러니까 시간과 공간, 현재의 남자와 과거의 남자들, 과거의 대사와 지금의 대화, 어제의 사건과 오랜 뒤의 후일담이 허물어진다. 그러니까... 그냥 '모더니즘' 해버린다.


. 그러니까 오롯이 서사에 대해서 말하자면 세 가지 사건으로 간단히 정리할 수 있다. 1. 남자는 극단에서 배우를 꿈꿨고, 2. 거기서 사귀던 여자애를 군대에서 NTR 당했고, 3. 그러는 와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와! 무려 세 줄 정리가 가능한 줄거리다.


.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소설은 시작된다. 이 간단한 줄거리, 젊음이 겪는 아픔과 성장이란 이 일련의 이야기를 우린 너무 쉽게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이 소설은 주인공의 내면을 치밀하게 파고들어 기억 속에 잔재된 시간과 공간을 형상화시킨다. 그래서 이 소설은 어렵다. 어렵게 말함으로써 쉽게 말할 수 없는 부분을 말하려 한다. 여기서 더 깊이 들어가면 모더니즘 담론이 되어버리니 일단 이 소설 자체에 대해서 좀 더 다뤄보자. 그게 훨씬 좋을 것이다.


. 주인공은 자신을 겪는다. 자신의 과거, 자신의 과오, 자신의 삶이 되어버린 것들을 겪어낸다. 이 소설에서는 유난히 대명사(너, 그, 남자, 병정 등등)가 많이 등장하는데, 거의 대부분이 또 다른 주인공이다. 마치 녹화된 비디오 목록이 재생되듯, 주인공은 자신의 기억을 '헤맨다' 그건 독자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은 이 기억에 대해서 딱히 해설을 해주거나 하지 않는다. 그래서 독자는 주인공의 (본인한테는 물론이고 읽는 독자한테도) 고통스러운 여정을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


. 환상과 꿈이 뒤엉키고 현실과 사실이 겹쳐지면서 소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혼란에 빠진다. 덕분에 소설은 단순히 가상적인 것, 가시적인 것의 언어를 뛰어넘는다. 독자는 매순간 남자가 겪는 내면적 진실에 도달한다.


. 구성적으로는 이 소설 전체가 파편적으로 흩뜨러진 기억을 모아가는 과정이다. 그것을 증명하듯 마지막 중편에 이를수록 점점 더 글이 응축되고 확연해진다. 특히 후반부에 이르면 이미 겪었던 기억에 실제의 '나'가 개입하며 기억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나간다. 그는 자신이 함몰했던, 그로 인해 계속해서 함몰하는, 그 고통스러운 환상에 점점 더 깊이 개입할 수 있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 소설은 단순히 망상, 환상, 해체에 이르는 여타 모더니즘과는 다른 결과를 도출한다.


결과적으로 이 소설은, 아주 특이한 방식의 '성장 소설'이다. 마치 프루스트가 파편된 기억을 하나씩 더듬어가며 되찾았듯, 이 소설은 고통으로 점철된 한 젊은이의 일 년이 수복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독자였던 나는 파편화되어 있던 환상이 현재로, 미래로, '낯선 시간'으로 자리잡는 과정을 보며 눈물을 쪼르르 흘릴 수밖에 읎었다...


. 별개로 문장력이 역대급이다 싶었다. 이런 글은 글빨 안 좋으면 통하기 어려운 방식 같은데... 주인공이 보는 마술적인 이미지나 그에 대한 묘사나 상당히 상당히 좋았다.


. 이거 읽고 박상륭 읽으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좋았던지라 <한없이 낮은 숨결> 읽을 듯? 대충 훑어보니까 작가인 '나'가 독자인 '당신'한테 시비거는 메타픽션이다. 도당체.


. 평론가 김윤식이 쓴 이인성 해설서가 있다. 그것도 조금씩 참고해가면서 읽었는데, 문지 관련 썰이 은근 웃기다. 특히 김윤식 김현이 신입생 이인성 앉혀두고 치킨 사준 다음 '무슨 작가 좋아하니?' '그 작가에 대해선 이런 의견도 있더라.' 했다는 썰이 왠지 웃겼다.


. 여러분 묵은지를 읽읍시다 그런데 조금 퓨전을 곁들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