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반게리온 보는 중
풀의 영상, 엔카운터지, 전화 이야기, 태백산맥, 설사의 알리바이 의 감상평을 댓글로 남겨주시면 되겠습니다. 다음 독회는 11월 27일 까지 금성라디오, 도적, 네 얼굴은, 관문점의 감상, VOGUE야 를 읽어오시면 되겠습니다
주최자가 존나 나태해도 독회는 계속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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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의 영상 / 기적의 순간에 기다림이 아쉽다는 듯, 안타까움을 내비치는 듯 그 미련에 감정을 내비친다. 헐벗음, 그 깨끗함의 가치를 매기면서 단점도 말한다-사람으로 치면 엉클샘. 우리는 결코 청결을 유지하며 살 순 없다. 모든 예술가는 특정 부분에 결벽증을 앓면서 평생 고통스러워 한다. 그 아집을 스스로 조절해가며 절충해야 다음 단계(혹은 다른 시선)을 갖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의 시인 김수영은 탈의를 계속한다. 본래 겨울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결코 어리석은 기다림을 하지 않는다. 이것이 교훈이라면 교훈이고(낯 간지럽지만) 존경한다면 존경한다. 역사적 시선으로 한정 할만큼 가벼운 시는 분명 아니라고 생각한다.
엔카운터지 / 시 도중에 나온 엔카운터지와 아오네스코를 잘 몰라 아쉬웠어도 일단 읽었다--- 마치 무언가를 소유하고 있는 듯 빌려줄랑 말랑 하면서 그 가치를 매기는 것 같았다. 그 정체는 비단 표현하지 않아도 이집 저집 배회하는 것 마냥 들락날락 하며 눈에 보이는 한 지점에 머무르면 그만이다. 빌려드리려 한-이 오만은 사실 이 시에서 가장 중시해야 할 부분이다-방을내드린다는 뻔뻔한 거짓말! 광휘를 소유하는 자는 이도저도 아니고 절대적 관계, 그 자체, 그것은 나로써는 조금 서럽기도 하다. 결코 초월하지 못할 벽을 만난 것이다. 그러기에 그는 거짓말을 한다: 넉넉하다고. 나도 역시 이 거짓말을 일삼는다. 시간을 속이고만 싶어 자꾸만 거짓말을 한다. 카프카가 이런 기분 이었을까 싶다.
전화이야기 / 아내 눈치보단 아이 눈치를 보는 아빠의 모습은 애달프다. 부부싸움-시 로도 있다!-은 익숙한 대목이며 아이 또한 그렇다. 사실 내 생각엔 이 전화는 마지막 연에서 기어코 폭발한다. 나는 그 전까지 그 파괴 이전 화학을 연구하는 셈이었다. 전화라니, 마치 핵폭탄을 주문하는 어느 권력자 같은 기분도 든다. 하지만 역시나 부고, 죽음이다. 핵은 곧 소멸의 과학, 어떤 것을 생산하든 귀결이 절망인 것은 불가피하다. 역사적으로 어떻게 입증됐든 역시 압도적 폭력이다-절망의 물방울의 이미지는 내겐 방사능인 셈. 지각하고 난 뒤는 너무나 늦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전에, 그 순간에, 대처 하기엔 우리 존재는 너무 어리석다. 나의 관점엔 그 무엇보다 염세적일 수 밖에 없는 이 통화는 어떤 것도 낳지 못한다.
분명 이 시인은 그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태백산맥 / 나는 종종 세대차이라 할지, 꼰대스러운 탄식을 한다ㅡ내게도 유효한 대목이지만 서도 짜증을 내는 셈이다. 분명 기분나쁜 현실이다. 부정하는 자는 정말로 로맨티스트이다. 우리의 유행은 실로 편승하는 편이 맞다(이에 대한 반박은 그 단어 개념 자체에 있음을 피력하는 바이다). 패잔병들은 빛과 소금이 절실하다. 대상이 무엇이 됐든 생활에 있어 필수요소로써 탐구해야만 할 영원인데, 그나마 역사 앞에 형태가 보여 갈구 할 수 있음에 감사해야할 지 알 수가 없다. 그 배덕감을 즐길 뿐, 실컷 도둑질 하며 우리의 양분을 키워야 된다. 6000km짜리 양심의 발판을 직시하기엔 버거울 뿐더러 너무 기분나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시간이라니---오묘한 감정이 든다. 정지를 예찬하는 척 하며 박자에 맞춰 노래하는
게 진정 그의 모습이겠지. 그렇게 믿고싶고도 지향하는 바이다. 왠지 모르게 서글퍼지는 건 나 뿐 만 아니길 비는 바이다.
설사의 알리바이 / 솔직히 이 시는 너무 더럽다. 온갖 연상들이 이 이미지-아주 중요하고 주 되지만 결코 상상하고 싶진 않은-가 자꾸만 유도되기 때문이다. 이 불쾌함이 차마 설득 될 순 있을 진 몰라도 친절하지 않은 건 어쩔 수 없나보다. 이것을 파헤쳐 보기엔 나로썬 너무나도 불쾌하다-그러나 가치를 떨어트릴 수 없을 뿐더러 되려 아주 훌륭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주 적절한 비유이며 설득력 있다. 작시는 곧 설사......이 처절한 몸부림!-차마 내가 이 말을 할 줄은 몰랐다. 마치 사드 후작적 감상을 김수영에게서 느낄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근데 사실 시작이 어떤 배설이라고 피력한다면 동조하지는 못하겠다. 어느 정도 인정 할 수 밖에 없을지라도 최후의 자존심인 셈이다. 그 따위 것을 고수하려고 여태 독
회를 한 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