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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입문 3개월차 독린이......
생각을 정리할 때 인스타 비계에 두서없이 막 글을 쓰며 감상문을 남기는데, 조금 다듬고 간소화시켜서 한번 감상문 적어봤어요
인스타 보는 친구들이 '너 이런 거 하니' 할까봐 무섭네
피드백 많이 해주세요 ..! 자의적인 해석이 많아서 떨리네요
<변신>
그레고르는 사회의 압박과 공포에 이기지 못해 벌레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참 딱한 것이, 벌레가 되는 과정에서도 일을 갈구한다.
그가 처해진 환경을 보아, 일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일에 광적으로 집착'해야만하는' 그를보니, 안톤 체홉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다.
카프카를 만나고 체홉의 눈을 다시금 들여다보니 그의 눈이 조금은 애석하게 느껴진다.
체홉은 작품에서
<온갖 역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일을 하며 살아가야한다.>를 외친다.
그 일, 과연 그레고르에게는 어떤 존재였을까?
그는 일을 해야만 가족들을 먹여살리고, 하녀의 월급을 주고, 빚을 갚아나갈 수 있다.
누군가에겐 '일을 하며 살아가야한다'가 아니라
'살기 위해선 일,일,일만을 해야한다'의 톱니바퀴에서 굴려지고 있지는 않을까.
그는 사명감을 지녀야만했다. 가족들을 사랑해야만했다.
나의 삶이 비참하지 않다고 여겨야만 했다.
하지만 무릇 인간이라면 빛을 보며 잠시 쉬어야할 때도 있는 법이다.
그게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다.
그런데 '인간다운 삶'에는 한가지 의미가 더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사회적 인간다운 삶'이다.
그 성에는 필연적으로 돈이라는 입장권이 필요하다.
그 성은 참으로 잔인한것이, 성 안에서 태어나는 축복받는 이도 있고 저 지구 반대편에서 성의 그림자조차 받지 못한 채 태어나는 사람도 있다. 성에서 추방당하는 사람도 있겠고.
그리고 그 성의 이름을 사회라고 짓는다면, 그 곳에 들어가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도태되다가 이윽고 죽겠지.
벌레는 어둠 속에서 삶을 영위한다.
그레고르는 빛 볼 시간이 없는 그의 삶에서 빛이 있노라 그를 속이고 있었겠지만, 속임수는 오래가지 못한다.
내가 나를 속이는 것은 언젠가 구멍이 뚫리는 법이다.
사회와 타인은 항상 대못을 들고 서있다.
그가 압박과 공포를 무의식에 인정해버린 순간부터
그는 결국 어두운 벌레로 변하고 있었을 것이다.
카프카는 이를 위로해줄 생각이 없다.
책에서 위로를 받는다고 현실이 뭐 바뀌나, 너가 웃고 있어도 사회는 너에게 사과를 던질 것이다.
벌레로 변한 순간부터 돌아올 방법은 없을지도 모른다.
가장 가까운 타인이자 사회라고 할 수 있는 가족은, 그를 처음에 지극정성으로 돌봐주었으나 점점 힘에 부친다.
그가 벌레가 되어버렸대도 그가 그레고르임은 변하지 않는 사실일 터인데, 후반에 가서 그는 숨겨야하는 애물단지 취급을 받게 된다.
애지중지에서 애물단지로 넘어가는 반응이 꽤나 양심에 찔리겠지.
그래서 그들은 말한다. "그레고르도 이걸 원할거야." (이 잔인한 선고는 <판결>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렇게 그는 어둠 속으로 끌려가게되고, 완전한 벌레가 되어 결국 죽게된다.
그가 죽고나서 가족들은 '환담'한다.
그리고 말한다.
아, 우리 사정이 꽤 나쁘지만은 않았구나?
나에게 이 문장은 마치 벌레로 죽어버린 그를 보며 '내가 쟤보다는 낫지'라는 살인적인 위안을 얻는 차가운 사회를 보는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그들은 왜 그레고리가 멀쩡할 땐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그레고리는 4명의 벌레가 될 자양분을 전부 먹어버린 것은 아닐까.
홀로 너무 많은 짐을 짊어진 빛바랜 사명감이 그를 결국 갉아먹은 것 같아 참 씁쓸하다.
<변신>의 그레고르는 벌레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죽어 간다.
<판결>의 게오르크는 익사형을 선고받는다.
그리고 자살한다.
<시골의사>의 의사는 이도저도 아닌 삶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한탄한다.
사회는 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 죽이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이 드는 나날들이다.
시골의사랑 판결도 쓰고싶었는데 엄청 오래걸리네 ..
피드백/칭찬/비판 많이 해주시면 다른 것도 쓸게요 ㅠㅠ 꼭 많이 해주세요
인생 망하고 이틀동안 카프카만 보니까 기분이 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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