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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와 시간 제1편제3장(세계의 세계성)까지 메모하면서 읽었는데 하이데거의 통찰력 진짜 대단한거 같음 천재같다
세계의 세계성을 전통적 존재론은 자아라든가 이성이라든가 주관 정신 이런 실체적 개념으로 규명하려 했는데 하이데거는 그런 주관 객관 모델을 확실히 거부하고 우리의 가장 가까운 존재양식인 일상성의 맥락에서 세계현상을 파악하려하는게 흥미로웠음. 즉, 뭐 초월적인 자연이라든가 사물의 총체로서의 세계(하이데거는 이런 세계를 지칭할 때 괄호를 넣었다 함)로 종전의 존재론은 세계를 파악했는데, 하이데거는 그게 아니라 세계를 도구적 존재자와 교섭하는 실존적(예를 들면 우리들의 세계라는 식의 공공적 성격)의미로 파악했음.
그리고 이런 우리와 가장 가까운 세계가 환세계(독일어로 Umwelt)고, 여기서 행해지는 도구와의 상호작용을 배려적 마음씀(여기에는 무엇을 만든다든가 이야기한다든가 부순다든가 그만둔다든가 등등)으로 규정했는데, 이러한 세계분석도 우리 일상과 매우 친밀한 양식으로 행해져서 읽으면서 재밌었음. 또 도구는 지시라는 존재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최종적으로 현존재(인간)을 위한 유의의성이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실존론적으로 명료하게 논증한 거 보고 읽으면서 감명받았음.
데카르트적 세계해석 부분은 전통적 존재론의 파괴(적극적 성격의 비판)이라는 테제하에 대략적으로 이해했는데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나는 존재한다’에 대해 존재론적으로 규명하는 것에 면죄부를 줬다는 내용이 핵심이였음. 여기에 덧붙여서 연장성을 가진 것으로서의 ‘세계’의 규정을 논거로 하이데거는 데카르트를 비판하는데 이 부분은 어렵더라. 대략 데카르트는 세계를 사물적존재로 인식했다는 내용인데, 이것으로 인해 세계를 도구적 존재자와의 교섭인 배려적 마음씀(세계내존재의 존재양식)을 건너뛰어서, 즉 무시해서 파악했다는게 주된 내용임.
22절에서 24절까지의 도구와 세계내존재, 현존재(인간)의 공간성에 대한 분석은, 존재자의 공간성을 공간적 위치관계를 나타내는 ’내부성’으로 파악하지 말고, 배려적 마음씀으로서의 ‘내존재’로 파악해야한다고 강조함. 내존재의 존재양식은 무언가의 곁에서 생활하다, 친해져있다 이런건데 즉, 세계내부적존재자인 도구들과의 상호작용의 맥락에서 파악하라는 내용이였음. 이거에 대한 예가 하나 있는데 우리가 쓰고 있는 안경은 내부성으로 보면 바로 코 위에 걸쳐있어서 가깝지만, 내존재로 본다면 그걸 의식하지 못한채로 생활하고 있다는 느낌으로 먼 존재라는 느낌임(이걸 하이데거는 환경세계적으로 눈에 띄지 않음 -내가 읽고 있는 일역판에서는 目立たなさ라고 번역됨-라고 표현함). 즉 안경을 끼고 있다면 사실 별로 주제화하는거 없이 쓰면서 생활한다는 거지. 이게 눈에 띄게 되는게 배려적 마음씀이 결손적 형태가 되면(잃어버리거나 자리에 없거나 용도에 맞지 않거나 부서지거나) 우리에게 도구적존재성을 띤 채로 가까이 다가오게 되는 거.
즉 요약하자면 우리의 세계는 사물(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실체로서)로 파악하는게 아니라 우리와 상호작용하는 도구로서 파악해야 하고, 이 도구의 최종목적은 인간의 실존가능성을 위해(유의의성), 그리고 인간의 존재는 일단은 배려적마음씀(도구와의 교섭, 상호작용)이다 라고 정의할 수 있을거 같음.
근데 이건 철스퍼거적 내용 써도 되는건가… 원래는 역사 전쟁사 좋아하는데 고등학생 때 잠시 흥미가졌던 하이데거 철학 다시 공부하는 중. 고딩시절엔 이거때문에 독일어 좀 공부하기도 함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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