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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마새가 스스로 희생하고자 하는 것을 상징한다면
피마새는 희생당하는 것을 정하는 것이며 그것의 정당함을 주장한다.
전자가 마음의 작용이라면 후자는 이성의 작용이라고 할만하다. 정당함을 주장하려면 그 근거가 보편적이어야 하니까.
둘 모두 타인과 더불어 사는 삶을 전제로 깔고 있다는 점에서 물마새와 독마새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는데
물에 독을 풀어 세상을 중독시켜야 하며
어디든 스며든다는 점에서 물이 가장 날카롭고, 독이 가장 부드러우며
물이 가장 빠르고, 독이 가장 느리다면
물은 사회가 가지는 관습이며 독은 관습을 타파하려는 진보가 아닐까요.
빠르고 느리고 날카롭고 부드러운 건 모두 상대적 개념인데
이 상대적 개념이 어떠한 상징을 얻기 위해선
절대적 개념이 되어야 하는데
이미 있는 것보다(전통) 빠를 순 없고
가지고 있지 않은 것(진보)보다 느릴 순 없으며
이미 사고를 결정시킨다는 점에서 그 무엇보다 날카롭고, 진정으로 뭔가 바뀌기 위해선 모든 걸 바꾸어야 한다는 점에서 가장 부드러우며(효과가 없다)
변화가 800년간 멈추어 있던 세상에 변화의 키를 쥔 바람의 신이 '물에 독을 풀어 세상을 중독시켜야 해'라고 말했다면 물과 독은 변화에 대한 이야기여야 할테고
또한 형제새들이 모두 타인과 더불어 사는 삶의 어떤 부분들을 상징한다면 그것은 공동체가 당연한 것과 당연하지 않은 것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상징하는 게 아닐지.
그런 의미에서 보면 물마새와 독마새는 나올 수가 없는 시리즈가 되겠죠. 일종의 종속변수니까. 또 피마새에서 변화하는 각 종족의 개체들이 나왔으닉가요.
피마새는 희생당하는 것을 정하는 것이며 그것의 정당함을 주장한다.
전자가 마음의 작용이라면 후자는 이성의 작용이라고 할만하다. 정당함을 주장하려면 그 근거가 보편적이어야 하니까.
둘 모두 타인과 더불어 사는 삶을 전제로 깔고 있다는 점에서 물마새와 독마새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는데
물에 독을 풀어 세상을 중독시켜야 하며
어디든 스며든다는 점에서 물이 가장 날카롭고, 독이 가장 부드러우며
물이 가장 빠르고, 독이 가장 느리다면
물은 사회가 가지는 관습이며 독은 관습을 타파하려는 진보가 아닐까요.
빠르고 느리고 날카롭고 부드러운 건 모두 상대적 개념인데
이 상대적 개념이 어떠한 상징을 얻기 위해선
절대적 개념이 되어야 하는데
이미 있는 것보다(전통) 빠를 순 없고
가지고 있지 않은 것(진보)보다 느릴 순 없으며
이미 사고를 결정시킨다는 점에서 그 무엇보다 날카롭고, 진정으로 뭔가 바뀌기 위해선 모든 걸 바꾸어야 한다는 점에서 가장 부드러우며(효과가 없다)
변화가 800년간 멈추어 있던 세상에 변화의 키를 쥔 바람의 신이 '물에 독을 풀어 세상을 중독시켜야 해'라고 말했다면 물과 독은 변화에 대한 이야기여야 할테고
또한 형제새들이 모두 타인과 더불어 사는 삶의 어떤 부분들을 상징한다면 그것은 공동체가 당연한 것과 당연하지 않은 것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상징하는 게 아닐지.
그런 의미에서 보면 물마새와 독마새는 나올 수가 없는 시리즈가 되겠죠. 일종의 종속변수니까. 또 피마새에서 변화하는 각 종족의 개체들이 나왔으닉가요.
또한 만약 마음의 작용인 눈마새가 인의예지의 인이고 이성의 작용이 극에 달한 피마새가 인의예지 중 지이고. 그렇다면 물마새와 독마새도 각각 의와 예를 상징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눈마새와 피마새를 관통하는 주제가 '사람들이 자신과 대등한 존재를 정말 자신과 똑같이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취지에서 보면 그렇지 못한 존재의 의와 예는 결함이 있을 수밖에
다름을 증오의 이유로 삼는 수준에서의 '의'는 그 단서인 수오지심으로 미루어보면 악을 미워하는 마음인데 여기서 악은 '다름'을 미워하는 마음일 것이고 이것이 무엇보다 날카로우며 느린 물마새, 즉 인간의 디폴트라 할 것이며 '예'는 사양지심 사양하려는 마음은 타인을 의식할 때 나오는 것이기에 보편성을 획득하려는 시도를 하며, 그 과정에서 증오가 덜어지므로
이것이 인간이 스스로 가지는 변화하려는 지향이며 힘든 일이기에 가장 느리며 부드러운 것이 아닌지. 이 과정의 끝에 있는 지, 시비지심은 옳고 그른 것을 가르는 것이며 가장 이성적인 작용이기에 가장 정교한 논리를 가지므로 희생을 정당화하는 피마새가 된다. 하지만 눈마새 피마새에서 모든 변화의 시발점이자 진짜 주인공은 사모 페이이고, 결국 그의 연민에서
연민, 즉 인을 가르키는 측인지심에서 비롯된 마음이 인간을 올바른 길, 즉 다름이 사랑의 이유가 될 수 있는 존재로 이끌 것이라는 희망을 암시하는 것이 아닌지. 물마새 독마새 피마새의 작용을 통해 인간이 끝없이 성장하면서도 눈마새가 그 나침반역할을 한다는 것이 이영도의 숨은 의도였음이 아닐까..
어차피 끼워맞추기지만 이영도 작가가 가지는 지향과 또 이 소설에서 한국적인 정서가 짙게 깔려있다면 인의예지로도 해석가능하지 않을까 싶어 주저리주저리 적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