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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써보는 서평입니다.
독서, 특히 소설을 좋아하시는 독갤 여러분들께선 아마도
한번 쯤은 '소설'의 어원에 대해서 궁금해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영어로 Novel은 장편 소설을 의미하고 Roman은 단편 소설을 의미한다는 것은
익히 잘 알려져 있지만 만일 소설이라는 단어가
단지 Novel과 Roman의 번역어라면
소설 또한 장편과 단편을 지칭하는 단어가 달랐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소설은 단편이든 장편이든
그냥 '소설'이라고만 둘러서 지칭하죠.
여기에 대해서 나름 자세하고 방대하게 답을 내리는 책이 있습니다.
바로 베이징 사범대학 교수 루샤오평 교수가 박사생 시절 썼던 논문을 종합한
'역사에서 허구로'라는 책입니다.
(송나라의 사관들)
소설이라는 단어는 중세 중국에서부터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처럼 표기되는 한자도 동일했죠.
'작을 소'에 '이야기 설'
당대에 소설은 정말 말 그대로 '작은 이야기'를 지칭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가지 의문을 품을 수 있습니다.
"도대체 이야기에 크고 작음이 무슨 뜻인가?"
"그럼 큰 이야기도 있다는 말인가?"
네 맞습니다. '소설'은 바로 '대설'과 대치되는 개념이었습니다.
대설이란 말 그대로 크고 중요한 이야기,
즉 실증에 기반하여 검증된 역사를 기록한 책이라면
소설이란 말 그대로 작고 사소한 이야기, 즉 증거는 없지만
구전에 의해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를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구전이라 한들 민간에서는 사실 여하와 관련없이
실생활과 문화에 영향을 주는 이야기들이 있으니까요.
아마 현대에 빗대어 본다면 대설이란 공영방송에서 송출되는 뉴스라면
소설이란 흥미위주의 소식지나 유튜브, 매거진에 빗댈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당시의 소설이란 완전한 픽션이 아닌
역사적 사실성이 조금 떨어진 기록물인 셈입니다.
즉, 허구와 사실이 불분명하게 뒤섞인 이야기란 뜻이죠.
유교 사상이 강했던 중세 중국인만큼 자고로 올바른 이야기란
사실에 입각한 역사서가 제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소설은 때때론 잡록, 잡설이라 칭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사실성이 희박한 소설을 경시했으면서
왜 비싼 종이를 들이면서까지 기록을 했을까요?
이 책에 따르면 두 가지의 이유에서 였습니다.
하나는 소설의 기능 때문이었고
둘은 소설의 영향력 때문이었습니다.
(사진은 당나라의 유명한 사관 유지기)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글을 쓰는 직책은 두가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앞서 말한 과거 공신력 있는 문헌을 해석하고 참고하여
'대설'을 집필하는 사관 .
두번째는 전국 방방 곳곳을 다니며 가담항설을 수집하여 기록하는
패관입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사관은 역사가나 기자가될 수 있구요
패관은 소설가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여러분들도 잘 알다시피
역사를 기록하고 정리하는 데에는 한계가 분명히 있습니다.
특히나 지금처럼 자료 아카이브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했던
당시에는 기록의 공백이 많았겠죠.
그러므로 기록이 미처 담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상상력이 깃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 빠진 부분을 바로 패관이 보충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사료가 미처 담지 못한 부분을 소설,
즉 가담항설이 보충하는 것이죠.
이에 대해 유지기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관의 책무는 사건을 기록하고 여론을 기록하는 데에 있지만,
보고들은 바를 자세히 갖출 수는 없으므로, 반드시 빠지는 것이 있다.
이에 기이한 것을 좋아하는 선비가 그 빠진 것을 보충한다."
-유지기 / 역사에서 허구로에서 발췌-
지금으로선 역사서의 공백을 소설이 메운다는 것이 이상하지만
소설을 사실성이 역사서보다 떨어진 기록으로 여겼던
당대 중국에선 가능했던 일이었죠.
따라서 당대의 소설의 기능은 즐길거리이기도 했지만
역사서를 보완하는 역할도 했습니다.
둘째로 소설의 영향력입니다.
소설이 한낱 사실성이 부족한 열화된 기록물 취급을 당하던 시기
두 개의 주목할만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바로
수호전과 홍루몽 등 철저히 작가의 상상력에 의존한
비로소 완전한 픽션이 등장하고
또 대중들에게 폭발적인 사랑을 받습니다.
따라서 사관들을 비롯한 당대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소설의 입지가 마냥 외면할만한 수준이 아니게 되었으니
이 픽션을 당최 어떻게 해석할 지에 대해서 논의하기 시작하죠.
다시 말해 동양의 문학 비평의 필요성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 동양식 문학 비평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자세힌 경위가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참고해주시구요.
거두절미 하자면 소설도 나름의 자격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사실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교훈이 있으면,
즉 사람을 선한 길, 올바른 길, 지혜의 길로 가도록 유도한다면
허구이지만 나름 좋은 기록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당대 서사 기록물의 급을 매기자면
가장 최고는 역사적 사실이 담긴 역사서이고
그 다음은 허구이지만 좋은 가르침이 담긴 책
그리고 마지막이 교훈도 없고 가르침도 없는
단순 흥미위주의 글인 셈이죠.
그래서 한 때 조선에서는
이 단순 흥미 위주의 잡록(소설)의 수입이
금지된 적도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역사에서 허구로의 간략한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자세하고 디테일한 내용까진 담지 못해서 아쉽지만
서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문학 비평 연구가 부족한
동양의 사례를 살펴보았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책이었습니다.
문학의 등장과 비평의 등장 또한 훨씬 앞서있었지만
역사 중심주의 때문에 문학의 취급이 좋지 않아
그 명맥이 오래 이어지지 못한 점은 아쉽네요.
그래도 많은 학술적, 문학적 아이디어를 주는 내용이었습니다.
재밌겠다. 예문지에도 소설가 소개하면서 비슷한 말 나오던데. 조선엔 중국이랑 비하며 뭐 소설이라 할만한 게 없더라
소설에 대한 관점이 서구와 굉장히 다른 것 같습니다! 책을 읽어보면 활자기록이란 오로지 역사를 위한 도구었었는데 그게 점차 오로지 재미를 위한 픽션의 것으로 변모하는 과정이 재밌습니다. 브레히트가 왜 동양의 연극과 픽션에 대해 연구했는지 알 거 같아요
역사에서 허구로 ㄷㅅㅂ기
재밌겠다 이거
ㅎㅎ 감사합니다!
대설이란 게 따로 있었구만...
정말 재밌죠? 알면 알수록 동양의 문학사는 신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