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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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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FW(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와 유사한 느낌을 내는 뛰어난 에세이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이 책을 읽었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인데, 특히 그가 DFW와 마찬가지로 남부 사람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으면서 다소 북부스러운 깍쟁이 글을 쓴다는 점에서 그렇다. 어떤 의미에서 이는 지금은 문학 영역에서 약간 격리되어 있는 듯한-'남부' 문학 같은 식으로-남부 문화를 대변해 저 바깥 세상의 언어로 말을 할 수 있게끔 하는 기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요즘 유명한 남부 소설가라고 하면 제스민 워드 정도 밖에 떠오르지 않고, 콜슨 화이트헤드처럼 남부의 문제를 파고드는 작가라면야 늘 있지만 그런 의미는 아닐 것을 알 테다.) 다만, DFW보다 좀 덜 깍쟁이스러운 사람이다. 그 점은 <펄프헤드>의 또 다른 매력일 테다.



사실, DFW에게서는 남부스러움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그 본인도 글에서 몇 번이나 언급하듯-'다른' 미국의 현대성, 자의식, 냉소 같은 것들이 가득한 반면 설리번은 그런 것과는 다소 거리가 멀다. 그보다는 좀 더, 자기가 조명하고 있는 사람들과 비슷하다. <펄프헤드>에 실린 에세이들은 크리스천락 페스티벌, 우익 시위, 미국 남부 문예 운동South Agrarians, 옛 미국의 음악 및 문화, 그리고 자연 등의 소재를 다루고 있는데, 설리번은 사실 꽤나 많은 부분에서 자신을 에세이를 쓰는 관찰자 이상의 자세를 취한다. 그의 서술은 이 글 속의 다른 이들이 말하는 것과 상당히 유사하다. 책 뒷면에 적혀 있는 "매거진 저널리즘계의 톰 웨이츠"라는 말은 아마 이 점에서 나오는 말일 텐데, 그는 톰 웨이츠가 그랬듯 정말로 스스로를 이 괴짜들과 동일시한다. (과연 그 상대가 이를 얼마나 믿는지는 모르지만.)



게다가 <펄프헤드>는 사실 에세이보다는 단편처럼 읽힐 때도 자주 있다. 과거의 사건이나 자신의 기억을 서술하는 부분에서 이는 사실상 에세이에 삽입된 짧은 단편처럼 서술되며, 화자의 중립성은 쉽사리 뒤틀린다. 우익 시위를 다루는 <아메리칸 그로테스크>에서 그는 시위 속에서는 시위의 일원이 되며, 시위 밖에서는 어쩔 수 없이 냉소적일 수밖에 없는 반대자가 된다. 이 둘은 벤저민 프랭클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미국 건국의 전통과 기독교에서 서로 뭉쳐지지만, 서로 전혀 다른 곳을 바라보며 둘 다 그리 보기 좋지는 않은, 시위자와 부유한 정치인이라는 그로테스크한 분단을 낳는다. 그리고 설리번 본인이 그 분단의 바로 위에 서 있다. 다시 한 번 톰 웨이츠라는 비유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회의 부랑자들을, 사실 그들이 그리 좋아하진 않을 포맷으로 다루는.



물론 설리번 본인이 바로 이런 기성 제도의 시각을 반박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고 있다. John Fahey를 비롯한 아메리칸 프리미티브 운동 및 그 근본이 되는 옛 미국의 음악을 다루는 <알려지지 않은 시인들>은 이 포맷의 고급화 자체가 결코, 위에서부터 만들어졌고 아래에서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 포맷만은 아님을 지적한다. 대중 음악을 그저 듣고 넘기는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그저 듣기 위해서 듣고 이를 연주하는 고급 예술적인 태도 자체가 풀뿌리에서부터 있었고, 그 음악들을 재발견한 이들은 그저 일반적인 고급/대중 문화의 프레임에 맞춰 대중 문화의 고급적인 수용을 새로이 만들어냈다고 착각했다고. 가수 Ethel Waters는 루이지애나의 크라잉 샘 콜린스가 프랑스의 우아함을 도입하기 전부터 이미 시적 효과를 의도한 모더니스트였다.



설리번은 여러 에세이에서 질문하고 있다. 우리는 이것들을 정말로 어떻게 다루고 싶은가? 너무 샌님 같게 굴 필요는 없더라도, 무성의하게 대할 생각도 없지 않은가? 여러 의미로 설리번의 관심사와 글쓰기는 일종의 체화된 기예를 전제로 한다. 말을 길게 하는 것보다는 행동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장점에 감탄하는, 땅과 가까운 사람들. 그러나 설리번의 글을 주로 읽을 사람들이 누구인지 생각해보면 이 점은 참 아이러니한데, <펄프헤드>에 실린 에세이들은 본디 주로 GQ 잡지에 실렸으며, 그 독자들에게는 아마 오돌토돌한 땅보다는 매끄러운 시멘트가 훨씬 더 익숙할 것이다. 일종의 남부 전도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P. S. John Fahey 같은 기인을 다루는 번역서는 이번이 처음이다. 건스앤로지스, 마이클 잭슨 같은 이들을 다루다가 등장하니 더더욱 신기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