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생각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

책 읽기는 즉각적인 재미에 대한 희생이고, 노력이다.

이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

내 생각에, 얕은 독서는 독서하지 않는 것만 못한 것 같다.

책읽기는 노력이다. 노력에는 기대하는 보상이 있기 마련이다.

책읽기에서 보통 기대하는 보상은 식견의 넓어짐이다. 조금 노골적으로 바꿔 말하자면, 내가 읽은 분야만큼은 내가 남들보다 잘나야 한다.

가령 내가 블록체인에 대해 읽었다면 나는 내 친구보다 블록체인에 대해 더 잘 알아야 한다.

바로 여기서 독서의 부작용이 나타난다.

우리는 독서라는 예외적인 노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설령 우리가 읽은 그 책이 전하는 정보가 가치가 없더라도

거기에 억지로 가치를 부여한다.

우리가 힘들게 그 책을 읽었기 때문에, 남들의 반대 의견과 상관 없이 내가 그 책을 통해 얻은 정보는 “좋은 정보”여야 하고, 그걸 아는 우리는 똑똑해야만 한다.

독서가 우리의 생각하는 지평을 그 책이 제시하는 것만큼으로 한정해버리는 것이다.

정보를 의심하지 않으면 그 정보를 얻기 위해 들인 노력의 크기만큼 정보를 향한 맹신도 강해진다.

책을 한 권만 읽은 사람이 제일 무섭다고 했던 이유도 이것이고

교회에서 몇번이고 반복해서 읽어주는 성경이 성경 말고는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큰 세뇌효과를 가지는 이유도 이것이다.

성경이 의미가 없는 책이라면 평생 성경만 내라 읽은 그의 삶의 의미가 부정당하는 셈이기에, 그는 성경의 가치를 의심하거나 하는, 자신의 생각의 지평을 벗어나는 행위 자체를 못 하게 되는 것이다.

독서를 할 때 그 내용을 받아들이는 것은 바보짓이다.

우리는 고객이고 작가는 정보 제공자다.

작가가 무조건 지적으로 우월할 것이라고 믿고 하인처럼 그 정보를 받들면

그 독서는 바보의 독서다. (쇼펜하우어도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다.)

책을 읽다가 작가를 의심하고, 실랑이하고, 토론에서 이겨버리는 것이

치열한 독서고 오직 이 방법만이 지식의 생각의 지평을 넓힌다.

두번째로는, 독서량을 늘려서 어떤 정보를 얻기 위해 들인 노력이 다른 대치되는 정보들을 얻기 위해 들인 노력과 비등하게 만들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