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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주의로 유명한 알베르 카뮈는 『시지프 신화』라는 철학적 에세이에서 다음과 같은 점을 지적한다.

"삶에 의미가 없다고 굳게 믿는 사상가들 중에 그 삶을 거부할 정도로까지 자신의 논리를 밀고 간 사람은 아무도 없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정말로 아무도 없었을까? 우리는 오토 바이닝거의 자살을 익히 알고 있다.

본론으로 들아가자.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읽어본 이들은 그 속에 신앙에 대한 도스토예프스키 자신의 내적 갈등이 침윤되어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 혹은 다양한 사상은 전부 도스토예프스키 본인의 안에서 서로 갈등하던 생각들의 표출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지하로부터의 수기』의 지하인과 같이, 어떤 의미에서는 책으로, 사상으로 만들어진 일종의 호문쿨루스인 것이다. 따라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수많은 작품에서 전개되는 인물들, 혹은 사상들 사이의 갈등은 도스토예프스키 본인이 겪은 내적 갈등의 반영이고, 그것의 전개 또한 그러하다.

그렇다면 『악령』의 전개는 도스토예프스키 본인의 내적 갈등이 어떻게 시작되어 어떻게 진행되었고 또 어떻게 그 나름대로 답을 내렸는지가 반영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키릴로프의 자살은 심대한 중요성을 가지게 된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창조한 인물들중 가장 복잡하고 독특한 이 키릴로프란 인물은 이른바 인신(人神)사상의 소유자이다. 포이어바 흐나 슈티르너식의 무신론을 떠오르게 하는 — 니체의 능동적 허무주의는 이 둘을 비롯한 청년 헤겔학파의 아류에 불과하다 — 이 사상은 요약하자면 신이란 유한함의 공포를 피하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낸 환상이고 —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니체의 "힘에의 의지" 대신 포이어바 흐나 슈티르너가 말한 인간의 자기-소외로서의 종교 개념을 떠올려야 한다 — 그러한 환상을 극복함은 곧 유한함의 공포를 극복함이라는 것인데, 그것은 사상적 자살을 통해 보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키릴로프는 한 가지 변주를 보여준다. 신이 없다면 인간이 신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신은 여전히 존재'해야 하는' 것으로 요청되고 있다. 이에 더하여, 키릴로프는 자살을 통해서만 신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키릴로프의 자살은 그저 신이라는 환상을 깨트리고, 그로서 인류를 신으로 만들기 위해 계획된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키릴로프는 예수에 대해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태도를 여러번 보이는데, 이는 앞서 말한 일종의 요청주의적 관점과 연관이 있다. 간략히 말하자면 예수의 죽음은 신이 없다면 헛된 것으로 되어버린다. 따라서 신은 요청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이 나름대로 꽤나 흥미롭고, 사실 키릴로프의 인신사상에서 핵심적인 부분이지만, 우리의 관심사는 다른 쪽이다.

그래서 키릴로프는, 달리 말하자면, 키릴로프의 사상은, 즉 도스토예프스키의 인신사상은 어떻게 끝을 맞했었던가? 우리는 여기서 키릴로프가 외친 사상적 자살 대신에, 카뮈가 "철학적 자살"이라 부른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키릴로프의 마지막은 그야말로 희극을, 더 정확히는 카프카나 더 이후에 나타날 부조리극의 그것을 — 나보코프는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해 그의 작품들이 전부 희극적이라는 평을 내린 바 있다 — 연상케 하는데, 이는 참으로 사상적이고 정신적이기는 커녕 삶적인 모습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정신은, 사상은 이미 죽었다. 키릴로프에게서든 도스토예프스키에게서든.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부르는 용어를 이미 알고 있다. "철학적 자살".

키릴로프의 사상이 죽는 순간, 『악령』에 투영된 도스토예프스키의 그 내적 갈등도 죽는다. 달리 말하자면, "철학적 자살"이 일어난다. 우리는 『악령』에서 키릴로프의 자살만을 보는 것이 아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철학적 자살" 또한 목격하는 것이다. 키릴로프가 삶에 패배했듯이, 도스토예프스키 역시 그러하고, 『악령』의 전개 역시 그러하다. 키릴로프의 죽음 이후 『악령』의 전개는 그저 "철학적 자살"의 결과에 불과하다. 그런데 사상적 갈등이란 『악령』의 작품성을 구성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끝나버린 갈등이 제대로 된 작품성을 구성할 리 없다. 키릴로프의 죽음과 동시에, 『악령』의 작품성 또한 죽는다, 혹은, 자살한다.

『악령』의 결말은 그러한 "철학적 자살"의 자기고백이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금 오토 바이닝거의 위대함을 상기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악령』은 자살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