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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관계 안으로 들어가자.


◆모리스 블랑쇼에게 텍스트는 저자만의 것이 아니며, 저자와 독자 사이의 공동작업 내지는 관계를 통해서 비로소 펼쳐진다. 블랑쇼의 친구 에드몽 자베스의 글을 인용하자면 "글은 거울이 아니다. 쓰기란, 미지의 얼굴을 맞닥뜨리는 행위다." 독자를 관계 안으로 인도하는 첫 문장을 제외한 모든 글 앞에는 검은 마름모가 붙어있다.


<기다림·망각> 등에서 시도해온 형식에 구애 받지 않는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시도한 작품이다. '정체로 쓰인 철학적 글쓰기'와 '볼드체로 쓰인 이야기 형식의 글쓰기'라는 두 개의 방식으로 단상, 파편, 중얼거림, 대화, 선언들을 채워간다. 읽어갈수록 두 방식 간의 경계는 모호해지는 순간들이 나타난다-정체로 쓰인 단락에 볼드체의 단어와 문장이 난입하거나, 볼드체로 쓰이는 서사에 주석이라도 달아보려는듯 정체가 사유를 이어가거나.


◆니체에 대한 구절들이 자주 보인다. 어떤 구절들은 직접 니체를 거론하며 그가 광기에 빠진 일화를 묘사하고 영원회귀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글을 전개하지만, 또 다른 구절들은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 그의 개념도 거론하지 않으면서 니체를 경유한다. "글쓰기, 그것은 아마도 다시 쓰면서 쓰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직 써지지 않은 것을 지우기 (그것 위에 쓰면서), 그리고 다시 쓰기는 그것을 다시 가릴 뿐 아니라, 그것을 가리면서, 앞선 어떤 것, 첫판(첫 번째 우회) 혹은 원본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도록 강요하면서 간접적으로 그것을 복권할 뿐이다. 그리고 이로부터 우리는 무한한 해독의 환상적 과정 안에 연루된다."


◆볼드체로 쓰인 글들은 이야기 형식으로 쓰이긴 했지만 쉽게 접근할 만한 것은 아니다. 구체적인 세계와 인물들을 재현하고 묘사하는 대신 익명 '그'와 '그들'이 처한 상황, '그'와 '그들' 사이를 오가는 대화가 토막난채 제시된다. 독자 자신을 투영하고 의지할 화자도 없고, 살아숨쉬는 것 같은 다채로운 인간군상도 없다. 독자가 읽어가는 순간 스쳐가는 유령들의 이미지일 뿐이다. 역자의 설명에 따르면 프랑스어에는 중성 대명사가 따로 없어서 대명사 "il"은 '그'와 '그것' 모두를 지시한다. '그'와 '그들'의 이야기인 동시에 '그것'과 '그것들'의 이야기로 읽어도 무방한 셈이다.


◆첫 문장에서 독자를 관계 안으로 끌어들였다면, 마지막 문장에선 독자에게 관계로부터 해방을 부탁한다.


◆너무 긴 말에서 나를 해방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