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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이란 개념을 \'있음\'으로 표현한 수, 즉 0이란 숫자는 정말 신비하다. 어떤 수에 관계없이 0을 더하거나 빼도 그 값은 변하지 않고 항상 일정하다. 하지만 이것은 수학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법칙이고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세계에선 다른 이야기가 된다. 연산을 하더라도 그 결과값엔 차이가 없기에 쉬이 간과하기 쉬운 사실이지만, 중요한 것은 분명 그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굳이 더하거나 뺀다는 행위 그 자체일 것이다. 이렇게 0이란 숫자의 특성을 고려해보면 움베르토 에코의 마지막 소설 <제0호>란 제목이 더욱 의미심장해진다.
작품의 본격적인 내용이 전개되기 전에 인용되는 \"연결하기만 하라!\"는 E.M.포스터의 소설에서 나온 구절은 정말 간결하지만 이 소설의 핵심을 그대로 관통한다. 갑작스레 주인공이 받게 되는 의뢰는 수상하기 짝이 없다. 막대한 자금력과 조직력을 제공하는 의문의 후원가 덕분에 주인공과 직장 동료들은 돈은 문제없이 어느 신문사의 편집부가 되어 마음껏 취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탈리아에서 유례가 없었던 이 언론 프로젝트는 그저 그럴 듯하게 포장되었을 뿐이다. 무솔리니부터 프리메이슨, 마피아, CIA, 교황까지 온갖 인물과 단체를 취재 대상으로 기사를 작성하는 신문인 <제0호>는 대중들이 쉽게 관심을 표현하고 반응하는 자극적인 음모론을 마구 생산해내는 황색언론의 전형을 보여준다. 문제는 이 언론은 그저 단기 프로젝트적 단체란 것인데, 이 과정에서 저널리즘의 정도라고 할 수 있는 공정성과 방향성은 온데간데 없고 그저 가십거리 기사와 소재만이 판을 칠 뿐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어떻게 인용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p.83)”와 “우리는 뉴스가 없는 상태에서 뉴스를 만들어냈어요. 거짓말은 하지 않고 말입니다. (p.190)” 이란 문장에서 볼 수 있듯 이들은 선동과 날조가 아니라, 그저 기존의 사실들과 정보를 아주 교묘하게 ‘편집‘해서 그저 독자들에게 전달할 뿐이다. 이렇게 기만스러운 언론의 행태는 영화 <내부자들>의 조국일보 논설주간의 명대사를 생각나게 한다. “마지막 글자 하나만 고칩시다. ‘그렇다’가 아니라 매우 그렇게 ‘보여진다‘라고…” 이들은 그럴 듯한 말을 제시할 뿐이고 판단을 내리는 건 어디까지나 읽는 이들의 몫이란 거다. 객관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기사를 싣는 것 같지만, 애초에 기사가 그들의 시선에 맞추어 편집되고 재배열되는 이상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기사란 그저 공허한 울림이 아닐 수 없다. “결론은 독자들이 내리는 겁니다. (p.275)”란 편집자의 말은 그 자체로 기만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계를 뒷받침하는 건 쏟아지는 뉴스다. 기술과 정보의 발달로 그 어느 때보다 쉽고 빠르게 자신이 원하는 뉴스를 찾을 수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검증되지 않은 가짜뉴스들도 정식 뉴스의 탈을 쓴 채로 기승을 부린다. 사람은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보고, 믿고 싶어하는 것만 믿는다는 ‘확증편향’은 근거없는 가짜뉴스가 전세계적으로 폭발적으로 전파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각국의 정부들이 가짜뉴스를 규제하려 시도 중이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기 때문에 한계도 명확하고, 또 언론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같은 가치들과 상충되기에 어떤 기준을 세우든 논란은 필연적이다
애석하게도 유일하고 확실한 방법은 바로 우리가 가짜뉴스에 휘둘리지 않는 안목을 길러야한단 점이다. 비록 이 소설은 90년대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했지만 실제로 그 시기에 이탈리아는 비슷한 문제로 크게 홍역을 치른 바 있고, 비단 오늘날의 대한민국에서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문제이다. 인문학의 세계적인 석학 움베르토 에코가 이를 소재로 자신의 마지막 소설을 집필한 이유는 무엇일까. 늦었지만 이미 2년 전에 타계한 그의 명복을 빈다.ㅈ
작품의 본격적인 내용이 전개되기 전에 인용되는 \"연결하기만 하라!\"는 E.M.포스터의 소설에서 나온 구절은 정말 간결하지만 이 소설의 핵심을 그대로 관통한다. 갑작스레 주인공이 받게 되는 의뢰는 수상하기 짝이 없다. 막대한 자금력과 조직력을 제공하는 의문의 후원가 덕분에 주인공과 직장 동료들은 돈은 문제없이 어느 신문사의 편집부가 되어 마음껏 취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탈리아에서 유례가 없었던 이 언론 프로젝트는 그저 그럴 듯하게 포장되었을 뿐이다. 무솔리니부터 프리메이슨, 마피아, CIA, 교황까지 온갖 인물과 단체를 취재 대상으로 기사를 작성하는 신문인 <제0호>는 대중들이 쉽게 관심을 표현하고 반응하는 자극적인 음모론을 마구 생산해내는 황색언론의 전형을 보여준다. 문제는 이 언론은 그저 단기 프로젝트적 단체란 것인데, 이 과정에서 저널리즘의 정도라고 할 수 있는 공정성과 방향성은 온데간데 없고 그저 가십거리 기사와 소재만이 판을 칠 뿐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어떻게 인용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p.83)”와 “우리는 뉴스가 없는 상태에서 뉴스를 만들어냈어요. 거짓말은 하지 않고 말입니다. (p.190)” 이란 문장에서 볼 수 있듯 이들은 선동과 날조가 아니라, 그저 기존의 사실들과 정보를 아주 교묘하게 ‘편집‘해서 그저 독자들에게 전달할 뿐이다. 이렇게 기만스러운 언론의 행태는 영화 <내부자들>의 조국일보 논설주간의 명대사를 생각나게 한다. “마지막 글자 하나만 고칩시다. ‘그렇다’가 아니라 매우 그렇게 ‘보여진다‘라고…” 이들은 그럴 듯한 말을 제시할 뿐이고 판단을 내리는 건 어디까지나 읽는 이들의 몫이란 거다. 객관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기사를 싣는 것 같지만, 애초에 기사가 그들의 시선에 맞추어 편집되고 재배열되는 이상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기사란 그저 공허한 울림이 아닐 수 없다. “결론은 독자들이 내리는 겁니다. (p.275)”란 편집자의 말은 그 자체로 기만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계를 뒷받침하는 건 쏟아지는 뉴스다. 기술과 정보의 발달로 그 어느 때보다 쉽고 빠르게 자신이 원하는 뉴스를 찾을 수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검증되지 않은 가짜뉴스들도 정식 뉴스의 탈을 쓴 채로 기승을 부린다. 사람은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보고, 믿고 싶어하는 것만 믿는다는 ‘확증편향’은 근거없는 가짜뉴스가 전세계적으로 폭발적으로 전파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각국의 정부들이 가짜뉴스를 규제하려 시도 중이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기 때문에 한계도 명확하고, 또 언론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같은 가치들과 상충되기에 어떤 기준을 세우든 논란은 필연적이다
애석하게도 유일하고 확실한 방법은 바로 우리가 가짜뉴스에 휘둘리지 않는 안목을 길러야한단 점이다. 비록 이 소설은 90년대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했지만 실제로 그 시기에 이탈리아는 비슷한 문제로 크게 홍역을 치른 바 있고, 비단 오늘날의 대한민국에서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문제이다. 인문학의 세계적인 석학 움베르토 에코가 이를 소재로 자신의 마지막 소설을 집필한 이유는 무엇일까. 늦었지만 이미 2년 전에 타계한 그의 명복을 빈다.ㅈ
사진 첨부가 안됐길래 재업함
사실 마지막 소설에서 그런 소재를 쓴 것이 아니라 에코의 모든 소설이 그러함 - dc App
에코 작품 읽은 건 첨이라... 짬 좀 더 채우고 다른 작품도 읽어볼게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