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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하늘」
하늘이 왼통 새로 물든 풋사과 한 개 맛이 되는 가을날이 사과나무라곤 한 그루도 없는 질마재 마을에는 있었습니다. 사과밭은 재 넘어 15리 밖에 멀찌감치 눈에 안 띄게 있었지마는 소금장사 황동이 아버지가 빈 지게로 돌아드는 저녁 노을 짬이면 하늘은 통채로 사과 한 개가 되어 가지고 황동이네 지붕과 마당에 그뜩해졌습니다.
효자 황동이 아버지의 아버지영감님 손에만 쥐여지는 이 마을선 단 한 개 뿐인 사과. 그 껍질 얇게 벗겨서는 야몽야몽 영감님 혼자만 잡수시는 그 기막힌 속살 맛으로요. 또 겨우 영감님의 친손자 황동이만이 얻어 먹게 되는 그 참 너무나 좋게는 붉은 그 사과 껍질 맛으로요. 그러고 또 그 할아버지와 그 손자 그 속살과 그 껍질을 다 집어 세도록까지, 그 턱 밑에 바짝 두 눈을 갖다대고 어린 목당그래질만 열심히 열심히 하고 서 있는 내 또래 아이들의 목에서 나와 목으로 다시 넘어 가는 그 꿈에도 차마 못잊을 군침 맛으로요.
- 『떠돌이의 시』(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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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마재 신화』가 나온 지 1년 뒤에 출간된 『떠돌이의 시』에는 질마재 이야기의 속편 격에 해당하는 산문시 세 편이 실려 있다. 이 세 편은 이야기의 허구적 재미와 현실을 논하는 리얼리즘이 묘하게 결합되어 있다는 점에서 질마재 시편에서 보이는 미덕을 거의 그대로 안고 있다. 가령 「당산나무 밑 여자들」의 내용은 마을 여자들이 이십대에는 연애라고는 전혀 않다가 오십대에 들어서야 성욕을 분출하는데 그것이 칠백 년 먹은 당산나무의 힘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시의 두세 번째 문장으로 보아 실상 그것은 여성에 대해 과잉된 정조를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단골 암무당의 밥과 얼굴」의 내용 역시 마을 무당의 손과 얼굴이 유독 희고 부드러운 것이 굿 행위에 쓰였던 '귀신이 먹다 남긴' 쌀로 밥을 해 먹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시의 마지막 문장으로 보아 실상 그것은 마을의 일반적인 사람과는 달리 육체 노동에 시달리지 않기 때문이란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마을에서 귀한 사과가 한 알 들어온 날이면 온 마을 하늘이 사과맛으로 변했다는 「사과 하늘」의 내용 역시 재미있는 이야기 속에 리얼리즘을 담고 있다. 「눈들 영감의 마른 명태」, 「대흉년」 등과 함께 질마재 계열 시편 중에서 가난에 시달려 사는 사람들의 면모를 조명한 대표적 작품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반드시 가난의 테마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유종호는 질마재 시편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소재로 가난 문화의 사실적 묘사를 든 바 있다. 작가의 정치적 포지션과는 무관하게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겠다는 리얼리즘의 추구가 동시대 가장 매력적인 사회 사생적 작품을 낳은 셈이다. 다른 책에서 유종호가 적고 있는 다음과 같은 표현은 주목할 만하다. '우리 문학 쪽에서 가장 보수적인 작가 시인으로 알려진 김동리와 서정주가 「황토기」 「동구 앞길」 등 일련의 초기 작품에서 그리고 『질마재 신화』에서 가장 이해심 많은 민중적 삶의 재현과 전경화에 성공하고 있다는 것은 하나의 반어적 사실이다. 이러한 측면이 간과된 것은 이른바 진보적 진영의 평자들이 도식성과 경직성을 특기로 하면서 작품의 구체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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