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어려운 시기에 어머니는 이 모든 것들을 남겼으며,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쇠약해 있으면서도 울고 있는 엘레나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서로 아껴 주며... 살거라."


그러나 어떻게 산단 말인가?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




만약 모든 일이 곧바르게 진행되었다면, 즉 하나의 정해진 선을 따라 진행되었다면, 딸베르그에게 있어서 인생은 멋들어진 것이었을 거다. 그러나 이 시기에 도시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바르기는커녕 기이할 정도로 예측하기 힘든 형태로 일어났으며, 세르게이 이바노비치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헛되이 추측하려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추측할 수가 없었다.





"중위, 세 시간 후면 수백 명의 산 목숨이 그의 수중에 떨어질 거야. 내가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유일한 사실은 내 생명을 바쳐, 그리고 자네 생명을 바쳐 그들의 파멸을 막을 수 없다는 걸세. 부탁이네만, 초상화니 대포니 소총이니 하는 것들에 대해서 나에게 더 이상 말하지 말아 주게."




그것은 아마도 꼬지르에게 있어 학생을 가르치는 일이 일종의 오래된 심각한 실수였다면, 전쟁은 천직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일은 우리 인생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어떤 일에 종사해 온 사람이, 예를 들면 로마법을 전공해 온 사람이 21년째가 되는 어느 날 갑자기 로마법은 그가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좋아하지도 않는 것이며, 실제로 그는 정원사가 더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해서 꽃에 대한 사랑을 불태울 수도 있는 일이다. 이런 일은 우리의 사회 구조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이런 사회 구조 아래서 사람들은 죽을 때가 되어서야 자기에게 주어진 천직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꼬지르는 그의 자리를 마흔다섯의 나이에 찾았다. 그리고 그때까지 그는 실력 없고 무섭기만 한 선생으로 지루한 나날을 보냈던 것이다.




이렇듯 전투에서 전사하는 것은 멋있는 일이었다. 만약 고통을 느끼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시체만이 빼뜨류라가 미신이 아니라 정말 존재했다는 유일한 목격자였다. 그러나 그가 존재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아무도 대답할 수 없다. 누가 피의 대가를 지불할 것인가?

아무도, 아무도 없다.




문장이 정말 정말 주옥 같다 절판나서 구할 수 없으면 주변 독서실에서라도 꼭 빌려서 봐 진짜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