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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의 노예적 복종을 헌법이라는 포장지로 감싸니,
참으로 가소롭구나
아아, 동양의 토인부락.”
– 기타 잇키, 「사도중학생 제군에게 고함」 中.
* 하나 변명을 하자면 정떡을 많이 걷어내고 논란이 될 주제를 가능한 제하느라 글의 파편화가 불가피했다. (신화라는 핵심 주제가 날아가고 곁다리 주제만 남은 상태다)
1. 천황제라는 원현상
천황제란, 곧 국체인데, 이 국체란 것이 대체 무엇인가? 이것은 하나의 심연과도 같다. 현대의 정치철학이 이데올로기란 개념의 규정에서 발이 묶여있듯이, 이것을 제대로 규정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아니 그 불가능성이 국체란 것에 고유한 것이다.
“게다가 난처하게도 국체란 무엇인가에 대한 견해는 논자에 따라 달랐고, 최대공약수적인 정의를 해봤자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 질서’라는 추상적인 결론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것은 애매한 상태로, 아니 그 애매함을 장기로 삼아 ‘사상을 교살’했다.” (시라이 사토시, 『국체론』, 한승동 옮김, 메디치. E북으로 봐서 쪽수는 모름.)
다만 우리는 국체에 대한 국체 자신의 말을 전전 일본 제국의 프로파간다적 자기선언문인 『교육칙어』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교육칙어』는 짦으므로 전문을 인용해보겠다.
“짐이 생각컨대 황조(아마테라스 오오카미)와 그의 자손인 역대의 황종이 먼 옛날에 나라를 세운 것은
그 덕이 깊고 두터우니 우리 신민이 지극히 충성과
효도에 힘써 마음을 하나로 모아 대대손손 그 아름다움을 배워온 것은
우리 나라의 빼어난 점이며 교육의 근본정신 또한 여기에 있을 터이다.
그대 신민은 부모에 효도, 형제 우애, 부부간 화목, 친구는 서로 신뢰하여
자신을 깊이 삼가고 널리 사람들을 사랑하며 학문을 수득하고
지능을 계발하고 도덕심을 기르며 스스로 공익을 넓혀
일생의 직무에 힘써 항시 국법을 준수하며
한 차례 나라의 비상시가 되면 의리 용맹으로 나라를 위해 봉사함으로 천장하 같이 끝없는 황운을 지키고 도와야 한다
이리하면 짐의 충량한 신민이 될 뿐 아니라
족히 그대들 선조의 미풍을 현세에 전하는 것이다. 이러한 도는 실로 우리 아마테라스 오오카미의 그 자손인 역대 천황의 유훈으로 손인 천황과 너희 신민이
함께 준수해야 할 것이며 이는 고금을 통하여 틀림이 없다
이를 나라의 내외로 가서도 도리에 그르지 않을 터이다. 짐이 신민과 함께 삼가 항상잊지 않고 그 은덕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하기를 바라는 바이다.”
천황을 아버지로, 국민을 자식으로 하는 이런 가부장적인 구도의 국가체제가 일단은 전전 일본의 국체라 하겠다. 천황이 아버지가 되고, 국민이 그 자식이 되어, 충성스럽게 마음을 하나로 모아 만세일계의 황통을 받드는 천황제가 국체의 중핵이다. 그러나 이런 추상적인 서술은 국체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이 되지 못한다. 그리하여 시라이 사토시는 일본 제국이 자신들의 항복 선언문인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는 것에 대해 유일하게 덧붙였던 조건인, “국체호지”라는 조건에서 단서를 찾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내부적으로야 “만세일계”니 “현인신”이니 하는 ‘신화’적 수사구로 국체의 성격규정을 방기한 채 유예할 수 있어도, 그런 ‘신화’를 가지지 않은 연합국에게 “국체호지”, 그러니까 국체의 수호를 요구하기 위해서는, 우선 상대인 연합국에게 국체란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이해시켜야 했다고, 그러니까 국체 개념을 객관화해야 했다고 시라이 사토시는 그가 옳게 국체호지의 ‘정치신학’이라 이름지은 장에서 주장한다. 그리고 그 객관화된 국체 개념이란, 일본 정부 본인들의 표현에 따르자면, “천황이 가진 국가 통치의 대권”, 즉 천황이 통치의 대권을 장악하는 국가 체제이다.
그런데 천황이 일본 역사에서 거의 꼭두각시였음은 모두가 공히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천황이라는 꼭두각시를 조종하는 이들은 항상 천황이 가진 상징적 권력을 필요로 했다. 이 상징적 권력이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아도르노식으로 말하자면 상부구조요 “접합제”이고, 더 보편적인 말로 하자면 이데올로기겠다.
지금이 탈-이데올로기의 시대처럼 보이지만 국가보안법이 시퍼렇게 눈을 뜨고 살아있듯이, 그리고 여전히 극단주의자들이 태동하려 하면 바로 제도권 정치 내의 좌든 우든 상관없이 십자포화를 가하듯이 – 예를 들어 한국에서 파시즘이 ‘대놓고 파시즘 딱지를 붙이고’ 발흥하려 한다면 양당은 모두 한 마음이 되어 그것에 공격을 가하지 않을까? – 이데올로기는 없음으로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본은 0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지젝이 대타자의 죽음을 선언하는 라캉주의에 발을 담그는 동시에 그 죽음, 그 무에 대한 철학적 학설들로 자본을 최종적 대타자로 상정하는 마르크스주의와 라캉주의를 접합하려 하는 이유가 이곳에 있다. (이것은 자기 자신을 원소로 포함하지 않는 집합들의 집합에 대한 러셀의 역설을 떠올리게 한다.) 지젝이 폭소할 듯한 다자이에 대한 시라이의 인용이 하나 있는데, 이것이다:
“패전 뒤에 다자이 오사무는 이렇게 썼다. “도조의 배후에 뭔가가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더니 별다른 게 없었다. 텅텅 비어 있었다. 괴담과 비슷하다.”” (『국체론』)
천황 역시 꼭두각시처럼 보이지만, 쇼와 천황이 단 한번 직접적으로 권력을 행사한 적이, 그러니까 대권을 가진, “주권자”로서 행동한 사건이 있었다. 2.26 사건이다. 이에 대해 시라이는 이리 평한다:
“청년 장교들은 (...) 그 원리에[국체의 ‘도의’]에 정면으로 적대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국체의 체현자인 쇼와 천황은 결연히 진압을 명했다. 그의 명령엔 우유부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국체론』)
이러한 종잡을 수 없는, “괴담과 비슷”한 이데올로기의 지위는 확실히 미스터리하다. 2088년 생의 어떤 법학자 JT는 『플레텐베르크 신학』이란 저서에서 2.26 사건 당시의 쇼와 천황을 연상케 하는 언급을 몇 가지 한 적이 있다.
“주권자란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이다.”
“예외는 무엇도 증명하지 않으며 오로지 정상상태만이 학문적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면 일관적 합리주의일 것이다. 그런데 예외는 합리주의적 틀의 통일성과 질서를 흐트러뜨린다. 실제로 통용되고 있는 국가론에서도 자주 비슷한 주장과 만난다. 안슈츠는 예산법이 없을 때 어떻게 할 것이냐의 문제는 결코 법의 문제가 아니라고 답했다. “여기서는 법률, 즉 헌법조문에 결함이 있다기보다는 법에 결함이 있는 것이며, 이 결함은 법학적 개념조작 따위로 해결될 수 없다. 그저 국법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다.” (...) 정상적인 것은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지만 예외는 모든 것을 증명한다.”
기원전 18888년생의 이 플레텐베르크 법학자 쥘 티데만을 상세히 논할 생각은 없고 또 불가능하므로 일단 저 두 구절을 상기하는 것에서 끝내자. 우리는 이 추밀고문관의 틀 대신 뒤에서 과학철학의 과소결정이라는 개념으로 이를 논할 것이다.
2. 과소결정과 부정신학
정치철학에서 “결정” 개념이 논의될 때면 흔히 알튀세르의 “과잉결정” 개념이 주로 다뤄진다. 그러나 우리는 단어상으로 반대 상에 있는, 과학철학의 개념인, “과소결정”으로 이를 다룰 것이다. 대충 말하자면, 체계=가설 S1이 있다고 하자, 이 S1을 이루는 요소중 하나인 E1이 반증되어서 S1이 폐기되었다. 이 반증은 경쟁하는 세 가설 S1, S2, S3 중 S1이 아닌 나머지 것을 선택하도록 결정한다. 이것이 과소결정이다.
“첫째, 새로운 패러다임 대안은 여타의 방법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두드러지고 일반적으로 인지된 문제를 해결하는 듯이 보여야 한다.” (토머스 쿤, 『과학혁명의 구조』, 김명자, 홍성욱 옮김, 까치, 287p.)
달리 말하자면, “여타의 방법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두드러지고 일반적으로 인지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요소, 즉 우리가 위의 상황에서 E1을 포함하는 체계는 대안으로 선택될 수 없다.
“나중의 과학 이론들은 이론들이 적용되는 흔히 상당히 다른 환경들에서 퍼즐을 푸는 데에서 이전의 이론들보다 더 낫다.” (토머스 쿤, 『과학혁명의 구조』, 김명자, 홍성욱 옮김, 까치, 335~336p.)
여기서 우리가 다룬 “이론”, “가설”을, 하나의 어떤 사회체계, 아니면 하나의 이데올로기라고 해보자. 그렇다면 이 개념은, ‘쿤의 표현을 빌리자면’, “혁명”의 문제에 있어서, 매우 유용한 범주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아도르노에 의해 포착된 바가 있는데, 어디에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인용은 못하지만, 분명히 어디에선가 체계에서 부정된 것의 그 부정이 잔존한다는 것을 언급한 적이 있었다. 그나마 비슷한 언급을 인용해본다.
“그러나 해체하기 어려운 것을 폭파하는 사변의 힘은 부정의 힘이다. 단지 부정 속에서만 체계적 성향은 살아남는다. 체계에 대한 비판의 범주들은 특수자를 파악하는 범주들이기도 하다. 한때 체계에서 정당하게 개별자를 넘어선 것은 체계 밖에 위치한다.” (테오도어 아도르노, 『부정변증법』, 홍승용 옮김, 한길사, 84~85p.)
정리하자면, S1의 요소인 E1이 반증되어, S2로 이행했는데, S2의 요소인 E2도 반증되어, S3, S4, S5, 이렇게 세 체계=가설=이론=이데올로기가 경쟁하고 있다고 하자. 이때, S3과 S4에 E1이 포함되어 있다면, E1의 부정은, S5를 선택하게 하는 식으로 ‘소극적인’(negative) 결정을, “과소결정”을 할 것이다. 이때 이 S5는 S5 자체로서가 아니라 S1~4의 부정으로서 선택된 것일 뿐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국체론』에서 시라이가 마르크스주의를 다루는 부분 중 일본에 대한 코민테른의 전략을 다루는 부분이었다. 이 부분을 살펴보자.
3. 계급의식과 과소결정
시라이는 국체라는 이데올로기 외부에서 이 이데올로기를 파괴하려 한 시도의 예시로 전전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논하기 시작한다.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다만은, 여기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계급의식에 대해 코민테른이 1932년에 제시한 테제에 대한 시라이의 이 언급이다.
“우메모리가 지적한 논리는[코민테른의 논리는] ‘자크 라캉의 거울상 단계론’을 연상시킨다. (...) 마찬가지로 그 자체로는 제각각의 이해 주장을 하는 자들이 될 수밖에 없는 무산자 계급은 “‘천황제’라는 적대대상의 ‘전체성’에 자신의 ‘통일된 모습’을 비춰 봄으로서 혁명의 담당자로서의 집단적인 주체성을 획득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것이다.” (『국체론』)
코민테른의 논리가 무엇이냐, 그것은, 현실의 무산계급, 프롤레타리아트, 즉 노동자들이, 각각은 너무나도 파편화되어있고 그 이해관계도 천차만별이기에 단순히 부르주아지 대 프롤레타리아트라는 이해관계로 이들을 묶어낼 수 없지만, 이들은 천황제라는 공통의 대상을 적대시하기에 ‘적의 적은 친구’ 논리로 이들을 묶어내어 계급의식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나온 논리임을 생각해보면 매우 선구적인 주장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마르크스주의의 계급투쟁론에 대한 신좌파의 이의제기에 대한 답변은 훨씬 이전에 이미 마련되어 있었던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적 전통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을 위해 문제의 “계급의식”이 무엇인지에 대해 잠시 설명하자면, 계급의식은, 문자 그대로 노동계급의 자기의식이다. 그러니까, 노동계급이 사회를 자본가 대 노동자의 계급투쟁이라는 총체성 속에서, 그 자신을 자본가와 대립하는 노동자로 인식하는 자기의식이 계급의식이다. 헤겔식으로 표현하자면 자기 자신을 대자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런데 파편화된 노동계급이 그런 총체적인 인식을 얻을 수 있을리가 없다. 따라서 코민테른은 부정적인 총체성을 제시한다. 천황제에 대한 적대. 자신을 노동자라는 긍정적인 규정성 하에서 인식할 수는 없지만, 천황제=현존 질서에 적대한다는 부정적인 규정성 속에서 인식할 수는 있고, 다른 이들도 그러한 규정성을 공유하는 것으로 총체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바로 코민테른이 1932년 테제에서 제시한 계급의식이다.
“분열된 피착취 계급은 ‘주요한 혁명적 임무’의 대상이 된 ‘천황제’라는 전체화된 표상을 매개로 삼아 통일된 주체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상정됐다.” (우메모리 나오유키, 『국체론』에서 재인용.)
그러나 이는 결국 실패했다. 개별 노동자에 있어서, 잘 실감도 안나는 천황은 고마운 누군가이지 적대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실감 안남과 그에서 오는 장벽을 시라이는 “제2의 자연”이라고 말하는데, “제2의 자연”이란 인위적인 것임에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무언가를 말한다. 천황제의 편재성은 이미 그것을 의식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수준에 다다랐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제2의 자연이 바로 오늘날 정치철학에서 다루는 이데올로기이다.
그렇다면 과소결정이 이 모든 것과 무슨 상관인가? 두 가지 방식으로 관련이 있다.
첫째는, 코민테른의 1932년 테제에서 노동자는 긍정적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천황제에 적대하는 그 무엇으로, 천황제에 적대하기만 하면 나머지는 상관없는 무엇으로 결정/규정되었다. 즉 노동자는, 계급의식은, 천황제라는 특수한 하나를 배제하기만 하는 식으로 과소결정된 것이다.
그런데, 천황제 자체의 과소결정이 있었다. 위에서 말한 2.26에 대한 천황 본인의 주체적인 반대가 그것이다. 이는 천황제 자체를 엎으려했던 마르크스주의에도 적용되었다. 시라이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지배기구의 총체인 천황제는 바로 일본 사회에 내재하는 적대성의 부인을 이데올로기의 핵심으로 삼고 있었다. (...) 즉 그것은 지배임을 부인하는 지배였던 것이다.” (『국체론』)
적대성의 확언에 대한 과소결정이 바로 천황제였다. 체제 자체에 대한 부정, 체제의 적대에 대한 폭로만을 부정하는 기관이 바로 천황이다. 이것이 천황제의 과소결정이다. 그렇다면 어찌되었건 변혁세력은 그 과소결정 안에서 천황을 뒤엎으려고 시도해야 할 것인데, 그것의 실패한 시도가 2.26이었다고 시라이는 평한다.
“메이지 레짐을 통해 마련된 통일성(=국체)을 파괴하겠다고 결의함으로서 통일성을 창조한다는 우회적인 논리에 토대를 둔 코뮤니즘(공산주의)은 실패했다. 이때 초국가주의 운동[황도파 등]은 이미 준비되어 있던 통일성에 전면적으로 의지함으로써 변혁을 지향하는 운동의 형태로 출현했다.” (『국체론』)
허나 앞에서 보았듯이 그러하게 “전면적으로 의지”하는 운동도 과소결정의 덫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는 반대로 말하자면 통일성에 전면적으로 의지하는 운동은, 과소결정의 대상이 되는 그 무엇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천황제는, 가시적인 이데올로기와 내적인 동학 사이에 내적 모순이 있었다는 것이고, 전자가 후자의 파괴로 이어질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인데, 달리 말하자면, 상부구조는 하부구조에 대해 자기파괴적이라는 것이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의 논리적 귀결이라는 마르크스의 말을, 헤겔적 ‘연역’을 사용하는 마르크스의 『자본』의 논리(아도르노 왈 “생산력의 형이상학”)를, 자본주의는 자기파괴적이라는 마르크스의 선언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들뢰즈적 가속주의를 떠올리지 않을 수도 없다. “탈주”를 계속하면 자본주의를 벗어날 수 있다는 들뢰즈적 가속주의는, 결국 2.26 사건의 장교단들이 그랬듯이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부정으로 “탈주”할 것이다. 그리고 그 때 가속주의자들은 모든 부정이, 모든 “탈주”가 즉자적 긍정이었긴 커녕, 자본주의 하나만을 피해가던 과소결정들의, “규정적 부정”들의 집적이었음을 깨닿게 될 것이다. 가속주의자들의 말 대로, 자본은 0이다. 그러나 그 0의 구조가 바로 계급투쟁의 구조다.
시라이의 긴 인용으로 글을 마친다.
"미시마의 말에 따르면, 이소베가 ‘가장 충량한 천황의 신하’에서 ‘국체에 대한 반역자’로 변한 것은 국체 개념 자체에 내포된 이중성 때문이었다.
그 이중성이란 다름 아닌, 이 책에서 논해온 메이지 헌법의 ‘천황기관설 국체’와 ‘천황주권설 국체’다. 전자는 국가를 기구적 측면에서 바라볼 때 드러나는 것이고, 후자는 미시마의 말을 빌리면 ‘도의 국가로서의 의제’다.
구노 오사무와 쓰루미 슌스케는 전자를 대일1본제국 엘리트를 겨냥한 ‘밀교’, 후자를 대중을 향한 ‘현교’라고 불렀다. 메이지 헌법 레짐은 그 이중성의 절묘한 균형 위에 서 있었는데, 세계 대공황과 대외 위기 등의 사회적 모순이 심화되는 가운데 현교(천황주권설 국체)가 밀교(천황기관설 국체)를 찍어 누르는 사태가 벌어진다."
경제 책인줄 ㅋㅋㅋ 졸리니까 내일 읽음 - dc App
권위를 행사하는 기관으로서의 천황과 군림하여 주권을 행사하는 천황의 모순인건가? 결국 군부가 독주하고 천황이 꼭두각시가 된 것은 이데올로기가 스스로 내적동학을 공격함에도 불구하고 내적 동학은 멀쩡했고, 결국 대외 위기로 파괴된 거 아님?
내적 동학이 멀쩡했으면 왜 위기가 되냐? 내적 동학이 병신이었다라고 말하고 싶은거임?
정떡 문제로 자른거 다 보고 싶은데 방법 없냐? 다른 갤이나 블로그에 올린다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