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설은 구원이 신에 의해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이미 정해져있고 인간이 뭘 어떻게한다고 절대 바뀌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아무리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문제라도 구원여부는 너무도 중요한 문제라서 어떻게든 자신이 (구원받을 것으로) 선택받은 인간인지 확인하고 싶어진다.
내세가 이미 고정되어있고 확인할 방법은 현세 뿐이다.
현세에서 내가 선택받았다는 증거를 확인해야한다.
무엇보다 나 자신을 납득시켜야하고 그것은 자기세뇌적인 방식이라도 좋다.
교회지도자들은 이점을 파고들어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고 교회에 많은 돈을 바쳐서 자신이 선택받았다는 증거를 찾으라고 부추기는 것이다.
이것은 심리적인 측면에서 면죄부를 파는 구교의 방식보다 더욱 강압적이고 강력한 것이다.
예정설은 신도의 마음에 영원히 씻을 수 없는 강한 불안감을 심어주고 불안감은 계속적인 확인(교회관점에서는 교회에 대한 상납)을 요구하는 것이다.
확인은 전혀 확실성이 없기 때문에 계속해서 반복확인이 되어야하고 이것이 이 교회 비즈니스의 핵심이 된다.
그리고 금전을 통해 확실성을 부여받은 신도는 (일시적으로) 자기확신을 부여받게 되고 이는 자신의 경제적 활동을 완전히 정당화한다.
이런 과정은 조금 소름이 돋는다.
그런데 아무리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문제라도 구원여부는 너무도 중요한 문제라서 어떻게든 자신이 (구원받을 것으로) 선택받은 인간인지 확인하고 싶어진다.
내세가 이미 고정되어있고 확인할 방법은 현세 뿐이다.
현세에서 내가 선택받았다는 증거를 확인해야한다.
무엇보다 나 자신을 납득시켜야하고 그것은 자기세뇌적인 방식이라도 좋다.
교회지도자들은 이점을 파고들어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고 교회에 많은 돈을 바쳐서 자신이 선택받았다는 증거를 찾으라고 부추기는 것이다.
이것은 심리적인 측면에서 면죄부를 파는 구교의 방식보다 더욱 강압적이고 강력한 것이다.
예정설은 신도의 마음에 영원히 씻을 수 없는 강한 불안감을 심어주고 불안감은 계속적인 확인(교회관점에서는 교회에 대한 상납)을 요구하는 것이다.
확인은 전혀 확실성이 없기 때문에 계속해서 반복확인이 되어야하고 이것이 이 교회 비즈니스의 핵심이 된다.
그리고 금전을 통해 확실성을 부여받은 신도는 (일시적으로) 자기확신을 부여받게 되고 이는 자신의 경제적 활동을 완전히 정당화한다.
이런 과정은 조금 소름이 돋는다.
뭔가 니체적이네.. 읽어보고 싶군
요약)공포마케팅 개꿀
괜히 베버가 사회학자 GOAT가 아니긴 함 현대 사회에 대한 음울한 시선은 뒤르켐과 함께 쌍벽을 이룬다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