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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워낙 유명하니 이력만 간단히 소개하면


괴테메달 수상자, 플럭서스라는 행위예술 모임의 초창기 멤버, 비디오아트 창시자 선구자 등


1932년~2006년. 매우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 났음. 보통 부유한 정도가 아니였음.


당시 한국에 2대 있다는 캐딜락 차에 운전기사가 있었고, 피아노도 있었음. 그 옛날 유치원을 다녔을 정도 임.


도쿄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후에 독일로 건너가서 활동. 유럽에서의 활동으로 견문이 엄청나게 넓어 짐.


책에서만 보던 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한 예술작품들을 실제로 보니 한없이 작아 보이기 시작했다 함.


회고하길 위대한 예술가들의 흐름 속에 본인이 설 자리가 아직 남았다는 확신이 들어 예술적 활동을 본격적으로 개시했다 함.


당시 아시아 보다 비교적 인권이라는 개념을 중요시 여겼던 서양의 사회를 재빨리 파악.


실제 사람 크기로 만든 로봇을 거대한 트럭 뒷면에 밧줄로 묶어 질질 끌고 돌아 다니다가 마지막엔 그 로봇을 차로 들이 박고 박살내버림.


다음 날 뉴스에 대서특필 됨. 동양에서 온 문화 테러리스트라는 제목으로.


이 첫번 째 기념비적인 행위예술을 필두로 점점 전략적이고 치밀한 활동을 전개해 나감.


피아노 연주를 한다며 사람들을 모으고 공연장에서 도끼와 망치로 고급 피아노를 깨버림. 연주를 꼭 악기 본연의 용도로만 해야 하냐는


사물의 기존체제에 대한 일종의 저항 내지 사고전환 논리였음.


실제로 그는 작곡한 곡이 있을 정도로 음악에도 조예가 깊음.


그리고 공연을 관람하는 매우 점잖아 보이는 사람의 넥타이를 가위로 잘라버린다던지 붓 대신 머리카락에 먹물을 묻혀 글을 적는다는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기행을 이어나감.


도올 김용옥이 한국의 위대한 예술가를 만나기 위해 직접 백남준이 활동하는 유럽으로 찾아감.


예술과 사회문화에 대한 대담을 펼치는데 막힘없이 술술 풀어냄. 그 지식 수준이 가히 놀라울 정도였다 함.


얼마나 대단한지 마지막에 도올이 한 질문은 나는 아카데믹한 교육을 오랫동안 받아서 어느 정도 수준까지 도달했지만


백남준씨는 도대체 어떻게 이런 지식들을 습득 했냐고 물어 봄.


그가 말하길 세계에서 지식이 가장 많이 축적된 언어가 영어 일본어 독일어라고 함. 그래서 그 3개국의 언어로 된 신문을 매일 다 읽어 본다고 함.


실제로 그의 와이프가 말하길 아침마다 화장실에서 2시간씩 일간지 주간지 월간지 신문을 정독한다고 함.


영미문학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는 조지오웰을 비꼬는 방송을 제작함.


1984년에 전 세계 위성으로 생중계한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함.


당신이 1984에서 말한 인류에 위협이 될만한 그런 감시체계는 아직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는 뉘앙스로 비꼬으며 화려한 연출을 만들어 냄.


유럽 가장 유명한 곳에서 백남준 전시회를 하는데 서양이 징기스칸에게 정복당한 트라우마를 다시금 일깨워 주겠다며 20세기 징기스칸을 자처하는 작품을 전시.


1996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반신불수가 됨. 다행히 그의 명석한 두뇌는 그대로였음. 작품활동과 전시회를 끊임없이 이어나갈 수 있었음.


1998년 뇌졸중이 온 그는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했음. 98년 한국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이 클린턴을 만나러 미국에 왔는데 한국인 중 유명한 백남준을 초대함.


그 자리에는 김대중과 이희호 클린턴 부부 그리고 수많은 기자들과 백악관 청와대 참모들이 모인 자리였음.


백남준은 초대 받자 말자 멜빵 옷을 특수 제작함. 그리고 당일 날 입고와서는 팬티를 입지도 않은채 클린턴과 악수하는 척하며 바지를 내려버림.


클린턴의 문란한 사생활 역린을 건드린 행위예술이었음. 그리고 그가 말하길 바지가 내려갔네. 어? 팬티를 입지 않았네라고 말했다 함.


참고로 백남준이 전자고속도로라는 단어를 현대의 인터넷 개념으로 처음으로 창안하고


수십년 전부터 말하고 다녔는데 클린턴이 허락이나 양해도 없이 본인이 만든 것처럼 대선공약으로 써버린 것에 대한 복수라고도 추측함.


당연히 클린턴의 얼굴은 창백해짐. 오랜 정치풍파를 겪은 김대중 조차 처음 겪는 일에 난색을 표함.


다음 날 미국 언론에 또 다시 대서특필 됨. 백남준이 속한 플럭서스 회원들은 역시 백남준이라며 성공?의 축하 인사를 전했다 함.


참고로 플럭서스는 라틴어로 흐름 변화라는 뜻.


그의 유명한 어록 몇가지를 소개하면, 누군가 예술이 뭐냐고 물으니


그는 양념이라고 말함. 이 밋밋한 세계에 예술이 대신 파괴되고 생성되지 않으면 인간 스스로가 세계를 파멸시킬 것이라고 함.


외국 활동만 한 백남준에게 기자가 왜 한국에서 활동하지 않냐고 하니, 경제에 수출이 중요한 것처럼 본인은 문화를 수출하는 문화상인이라고 표함.


또 유명한 어록 중에 예술은 고등사기이다. 고등사기를 치려면 남보다 빠른 정보가 필요하다는 말을 남김.


그래서 간혹 어이없는 예술작품을 보면 사람들은 백남준 어록을 인용함.


죽기 직전 한 인터뷰에서 선생님 이제 연세도 있으신데 뭘 하고 싶으신가요라고 물어보자


매우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젊은 여자랑 연애나 한 번 해보고 싶다며 그 다운 독특한 발언을 함.


백남준이 한국에서 전시활동을 할 때 처음으로 도와준 사람이 문화부장관이자 평론가인 이어령이었음.


이어령은 백남준 관련 재단 이사장을 지낼 정도로 백남준을 알리려고 하고 그를 높게 평가함.


조영남도 백남준을 인터뷰 한 적이 있었는데, 그의 신발이 매우 인상적었다고 함. 사진 찍어 놓지 못한 걸 아쉽다고 함.


조영남이 감히 그를 평가하길,


동서양의 핵심 사상과 가치 그리고 문화 종교를 그처럼 짧고 명확하게 설명하는 이를 본 적이 없다고 할 정도로 지식수준을 높게 칭송함.


실제로 백남준의 인터뷰 영상을 보면 투박한? 외모에 매우 어수선한 말투라 관심 없는 사람에겐 뭐 저런?이라고 비춰질 수 있음. (얼핏 조영남과도 말투가 비슷함.)


부인은 일본인인데, 비틀즈 멤버 존 레논의 부인 오노 요코와도 절친한 사이. 백남준의 장례식에 참석한 요코가 나의 정신적인 부처였다는 장례식 연설을 함.


오노 요코와 결혼을 하고 싶어서 구애했었지만, 존 레논과의 결혼을 함. 요코 덕에 존 레논과 찍은 사진도 있음.


백남준 예술활동에 중요한 가치 중 하나는 열등감 임. 상대의 열등감과 트라우마를 이용한 작품으로 당사자들을 무안하게 몸둘바 모르게 하는 활동을 즐겨 함.


일화 위주로 적어서 그렇지, 그의 비디오 아트 작품들을 보면 형이상학 형이하학이 버무려진 그 자체 임. 난해하며 희한한 연출이 극에 달함.


현재도 20세기 예술사의 흐름을 나열하는 책에는 반드시 백남준의 소개가 있음. 오히려 한국보다 외국에서의 인지도가 더 높은 케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