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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만옥, 『조선후기 성호학파의 자연학』, 혜안, 2023 정리
이 책은 성호학파의 자연학, 그중에서도 서학과 관련한 자연학에 관한 책이다.
2장은 성호학파 자연학의 사상적 구조에 관한 내용으로 구성된다. 성호학파의 종장 이익은 주자학적 천일합일 구조와 격물치지론에 대한 변화와 도덕적 의미의 이 관념을 탈피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은 이익의 박학 경향으로 이어졌다. 이는 최종적으로 정약용이 도리와 물리를 분리하여 사고하는 것에 영향을 미친다.
또한 이익은 자연천과 주재천 도덕천을 분리하여 사고하는 특징을 보여줬는데, 이 역시 정약용에게 계승된다. 그리고 이러한 천 개념 분리는 자연에 관한 객관적 탐구로 이어졌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또한 성호학파는 자득(自得) 논리를 기반으로 주자의 경전 해석에만 몰두하지 않았고, 이는 이병휴나 이익의 학문관을 통해 드러난다. 그리고 명물도수학에도 관심을 가진 이용휴 등을 통해, 성호학파 자연학 전개의 사상적 배경을 설명한다.
2장은 성호학파의 서학 수용과 비판 논리에 관한 내용이다. 이익은 후출유공의 관점으로 서학의 실용성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서교에 대해서는 이단이라며 비판적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칠극』의 논리를 유교의 극기복례에 비유하는 등 마냥 비판적이지는 않았다.
특히 서양 역법에서 이익은 중천설과 도수지설, 지구설에 큰 흥미를 나타냈다. 이익은 이와 같은 서양 역법을 통해 세차의 문제 등 기존 역법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익의 영향을 받은 성호학파 후학들 역시 서교는 비판하더라도 서양의 과학기술과 서양 선교사에 대해서는 긍정적 평을 하고 선별적으로 서학을 수용하였으며, 신후담이나 안정복과 같은 서학 비판론자도 서학서에 대한 폭넓은 독서를 통해 서학 비판 논리를 정립하였다.
또한 이삼환처럼 서교의 전파를 부정적으로 생각한 성호학파 인물들마저도 서교에 대한 무조건적인 탄압은 반대했다. 이삼환은 유교의 도가 다시 살아나면 서교는 저절로 없어질 것이라 주장했으며, 안정복의 제자인 황덕일과 뢍덕길 역시 무차별적인 벽사론의 남발을 부정적으로 보고 내수와 자치를 선행하는 것을 선결 조건으로 했다.
4장은 이익과 이병휴의 서양 역법 논의와 이에 대한 견해를 다루고 있다. 5장은 서양 자연지식에 대한 윤동규와 안정복의 논의에 관한 내용이다. 안정복은 1746년 성호학파에 입문 후 여러 서학서에 과ㄴ심을 보였다. 그중에는 『태서수법』이나 『동문산지』 등의 서학서가 있었고, 윤동규에게 조선에 유입되지 않은 『공제격치』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안정복과 윤동규는 신법산서와 일전표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주고받았으며, 이후에는 조석에 관심이 있엇던 안정복이 본인의 조석설을 바탕으로 윤동규에게 조석에 대한 의견을 묻기도 했으먀, 윤동규는 이를 서양 학설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6장은 천문에 대한 성호학파의 의견을 다룬다. 이익은 『천문략』에서의 구중천설과 일월식론을 긍정하여 기존 성리학적 우주론과 결합한 자신만의 학설을 만들어 냈다. 지구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여주이씨 소장의 여러 방성도를 통해 알 수 있는데, 특히 수간미곤론에 주목하고 있다.
7장은 지리에 대한 관념과 水利 관념 지구설 등에 대해 다룬다. 특히 주목할 만한 인물은 안정복으로, 안정복은 역사에 있어서 지리 역시 중요함을 강조하며, 산줄기와 물줄기 등을 상세하게 그려내는 것을 중요시했고, 앞서 설명한 것처럼 조석설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결국 이는 이후의 조석설 관련 논의와 동해무조석설에 영향을 끼친다. 水利 에 대해서 주목할 인물은 안정복과 정약용이다. 이익과 그 이전의 유형원은 『반계수록』에서 수리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이에 안정복 역시 서양식 수리서인 『태서수법』에 대한 고평가를 『임관정요』에 남기기도 했으며, 이는 정약용의 『목민심서』에 인용되었다. 그리고 8장에서 주목할 점은 댜표적인 고서파 인물로 평가되는 이기경이 『물보』를 편찬하여 박학과 명물도수학의 중요성을 강조한 사실을 밝혀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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