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

한때 도저히 화를 주체할 수 없던 시기가 있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날 찌를 듯이 급하게 질주해오는 면도날이요, 칼날이였다. 온 몸이 생채기로 뒤덮인 나는 나의 평온을 해치려는 모든 상황들에 화를 냈다. 나의 분노는 타인에게까지 번졌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고 발작하는 음흉한 스메르쟈코프처럼 한바탕 지랄발작을 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아 왜 빨리빨리 안하고 지랄
아 왜 빨리빨리 안갖다놓고 지랄
아 왜 틀린 자료를 주고 지랄
아 왜 X도 아닌게 명령하고 지랄
아 왜 귀찮게 지랄


이 후레자식들이 단체로 지랄병에 걸렸나 물론 사회상규상 쌍욕은 아니지만 남들이 충분히 기분나쁘게 할만한 말들을 시원하게 토했다. 나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누군가에게 싸늘한 비수가 되어 날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회식 중에 들었는데 이런 호감업적들 덕분에 나는 같이 일하기 싫은 동료 순위권 랭킹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 순위는 여태까지 내가 살아온 역사 중 수치화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수치화했을 때 가장 높은 등수였지만 아쉽게도 TOP급 천상계 인사들은 몇십년간 타칭 트러블메이커로 그 자리를 굳게 지켜오시던 분들로 그들을 이기지 못한게 유감스러워 눈물이 흐를 지경이였다.


하지만 단기간에 급등한 순위에 자부심이 있었고 나는 끈기라면 누구한테도 지지 않으리라 자신했기 때문에 이 페이스를 유지하면 독보적인 NO1이 될 수 있을터였다. 나는 고3때 1등에 미쳤었고 공부로 1등을 못하면 학교라도 1등으로 가야한다며 꼬박 7시에 등교했지만 그 누구도 기록을 재주지 않았기에 정확한 레코드가 없는게 천추의 한이였다. 드디어 오랜 꿈인 넘버원의 자리에 오를 수 있겠구나 하며 흐뭇했다.


아니? 그럴리가 없지 않은가. 상식적으로 남들이 나를 싫어한다는데 기분 좋을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나는 문학작품을 읽으며 나와 다를 바 없는 남의 비극에 눈물콧물을 질질 짠 경험이 있는 지극히 정상적인 공감능력을 갖춘 사람이였고 앞으로도 그러리라 믿는다.


물론 타인의 평가에 좌지우지되는 삶도 곤란하지만 이대로도 곤란했다.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했다. 시원하게 화를 내고도 속이 시원하긴 커녕 마음이 더 무거워졌고, 화를 내면 낼수록 망가지는 건 나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

틱낫한의 <사랑이란 무엇인가?>는 100페이지 안팎의 아주 짧은 책이지만 인생을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정수를 담고 있는 책으로 인생을 뒤바꿀 마법의 주문들로 가득 차 있다. 사랑의 방법은 너무나 간단하다. 너무 쉬워서 따라하지 않는 것이 독이라면 독이다.


우리는 매 순간 숨을 들이쉬고 내쉬지만, 호흡의 순간을 누가 일일이 헤아리는가. 아무리 할 일 없는 사람이라도 이런 짓은 안한다. 하지만 우리는 할 일 없는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 반드시! 마법은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을 인지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숨을 들이쉬며 저 산소 빨아들이는 중이에요 숨을 내쉬며 저 이산화탄소 내뿜는 중이에요 이 간단한 주문으로부터 마법은 시작된다.


우리가 이 행동을 반복하면서 도달해야 하는 상태는 과거에서 오는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벗어나 온전히 숨 쉬고 있는 지금 내 모습을 인지하는 것이다. 즉, 과거와 미래에서 자유롭게 현재를 만끽하는 것이다.


이 상태를 깨어있는 상태라 하는데 깨어있는 상태에 도달하면 비로소 현재 고요히 숨쉬는 나를 넘어 내 옆에 서 있는 타인의 거친 숨소리가 귀에 들어온다. 이 상태가 됐다고? 축하한다 드디어 당신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상태에 진입한 것이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상대를 깊이 들여다 보아 이해하고 진정으로 함께하는 상태이다. 상대가 아파하면 손을 내밀고 만약 내가 아프면 남에게도 도움을 요청할 용기를 낸다.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 우리로 존재한다. 이제 나는 혼자 세계를 떠받드는게 아니라 함께 세계를 떠받드는 것이다.


이해에서 시작해 상대를 사랑하는 자애로움으로, 상대를 이해하는 자비의 마음으로, 상대와 함께하며 기쁨을 얻고, 하나이면서도 서로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상태로 나아간다.


뭐가 이렇게 간단하냐고? 인생이란 본디 쉽게 생각하면 쉽다. 근데 간단한거 치곤 쉽게 되는가? 걱정이 태산같은 사람에게 해리포터 마냥 마음에 평안을 가져다주는 마법이에요 자, 같이 따라해보세요 엑스펠리아르무스! 하고 옆을 돌아보면 코 앞에서 방귀를 먹인 것도 아닌데 잔뜩 찡그리고 있는 상대방을 보게 될 것이다. 나 자신 역시 속일 순 없다.


근본적으로 수행을 시작하기 전에 자기 자신부터 돌보는게 우선이다. 자기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남도 사랑할 수 없다. 자기 자신을 돌보는 방법은 무엇일까? 우리에겐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들이 많다. 예전에 영숙이를 사랑했지만 정작 영숙이는 내가 재수없어 하던 영호와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됐다는 빌어먹을 사실에 한을 품을 수도 있고 영숙이와 맺어지지 못한 여파로 장래 발생할 고독사를 생각하며 미라화된 내 시체를 걱정하며 공포로 뒤덮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고통과 행복은 나뉜게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다. 저게 있으면 이게 있고 고통이 있으면 행복이 있다. 뭔 개풀 뜯어먹는 소리냐고?


우리는 모든 것을 나누어 생각한다. 이원적인 사고방식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의 우열을 가리게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이롭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향하게 함으로써 인간에게 욕망을 발생시킨다. 욕망은 고통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다. 고통에서 자유로우려면 모든 것이 정해진게 아니라는 사실, 언제든지 변화할 수 있고 모든 상황이 일어날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고통을 맛보고 마주함으로써 행복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고 고통이 없으면 행복이 무엇인지, 행복이 없으면 고통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즉 서로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행복과 고통은 상호연관된 하나다. 더 나아가 존재와 비존재, 세계의 모든 것들은 하나다. 모든 것이 하나란 사실을 깨달아야 이분론적에서 비롯되는 집착에서 자유롭게 해방될 수 있으며 평온을 누릴 수 있다.




**

나는 가르침을 얻은 뒤로 미래의 걱정과 불안에서 벗어나 현재로 돌아와 근본적인 원리를, 좋은 상황과 개같은 상황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상황을 있는 그대로 현재의 상황에서 이해하려고 시작했다. 거짓말 같게도 난 점점 바뀌기 시작했다.


음 그래그래 저 샹놈이 지 잇속만 차리는 건 발생할 수 있는 사실이지 개같은 자식
음 그래그래 저 새끼가 제때 나한테 자료를 주지 않는 건 내 예상가능한 범주 안의 일이였어
음 그래그래 저 사람이 제때 일을 마치지 못할 수도 있지
음 그래그래 저 분이 물건의 납기를 마치지 못할 수도 있지 그것에 굳이 얽매일 필요가 없어


모든 분노의 씨앗은 외부의 상황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이였다. 사고를 바꾸자 사고는 줄어들었다. 모든 것은 완벽하고 내가 원하는 좋은 상황이 되어야 된다는 강박적인 생각에서 벗어난 순간 나는 집착이 주는 괴로움이란 감옥에서 몰래 자물쇠를 여는 만능키를 얻은 죄수마냥 자유로워졌고 휘파람과 함께 손차양을 하며 마중 온 사람이 없는지 두리번거리는 여유를 찾았다.


이제 난 돌아이에서 돌부처가 되었다. 어느 샌가 X같은 직장동료 TOP3이자 싸움닭에서 남의 말을 가장 잘 경청해주면서 사건사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동료가 되었다. 오히려 지금은 누가 과거의 나같은 짓을 하면 말리는 경지에 도달했는데,이 단순한 사실 하나를 깨달은 걸 치곤 어떻게 이런 평온에 이를 수 있는 것인지 놀랍지 않은가! (단점이라면 나를 상대로 자신들의 고민을 너무 많이 얘기해 괴롭긴 하지만 이 자체도 사랑을 위한 수양이라 생각하며 버티고 있다.)


오늘도 종합비타민과 각종 보충제로 겨우겨우 말짱하게 유지하는 나를 무너뜨리기 위한 외부의 무례하고 불손한 상황들을 마주하면, 예전의 나처럼 고슴도치마냥 갑자기 가시를 잔뜩 세우고 몸을 웅크린 채 내 가시에 독을 묻히고 상대를 찌를 궁리를 하며 상처를 주려고 시시때때로 기회를 엿보기보단 다른 방법을 택한다.


아침에 매끈하게 면도했던 턱에 손을 갖다 대고 좌우로 비비며 어느 샌가 올라온 수염의 까끌까끌한 촉감을 느끼면서 평온에 이르는 마법의 주문을 외워본다.


“흠.. 그럴 수도 있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