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음사, 1960년 판본임.
올재 거는 맞춤법 수정되어 있을 거임.
돈 끼호떼
머리말
여유작작하신 독자여,
오성(悟性)의 소산인 이 책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아름다웁고 고상하고 재치있는 것이라 함을 구태여 맹세할 것 없이 잘 알아주실 줄 믿습니다.
그렇다 해서 나는 자연의 법칙을 등질 수 있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면, 대자연의 모든 것은 제게 닮은 것을 제 몸 안에서 낳고 있는 것이니까요.
이러고보니 메마른 위에 가꾸기조차 잘못한 내 제주인지라, 기름기없고 삐쩍 마르고 바람동이, 그리고 그 누구도 그려본 적이 없는, 말하자면 불편이 자리잡고 있고, 온갖 슬픈 소리가 처소가 되는 그런 감옥에서나 할──갖가지 생각에 가득차 있는 그따위 자식의 내력이 아니면 무엇을 지어낼 수 있으리까.
고요함, 그리고 평화가 깃드는 자리, 들의 아름다움, 하늘의 맑음, 샘물의 졸졸 흐름, 정신의 안정, 이런 것들이라사 메마른 시정(詩情)을 풍요하게 돋우어주고, 세상을 경이와 만족으로 넘치게 하는 작품을 이바지하는 것입니다.
못생기고, 예쁜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는 자식을 가진 아비일지라도, 그가 간직한 사랑에 눈이 흐려져서 제 자식의 흠집을 보지 못하기는커녕 오히려 똑똑하고 잘생간 줄로 여기며, 제 친구들에게는 몸바르고 의젓한 양 이야기하는 법입니다.
헌데 돋 끼호떼의 아비같으면서도 실상 의붓아비뿐인 나는, 시속의 풍습을 따라가고자 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나는 친애로운 독자여, 남들이 하듯이 눈물까지 흘려가면서, 그대가 내 자식 안에서 보시는 결점들을 용서해주고 눈감아 주시라고 청하지도 않습니다.
그대는 그의 아비도 벗도 아닐 뿐더러, 그대의 육체 안에 그대의 영혼과 자유의지를 당당하게 지니시고, 나라님이 세금을 거두어 들이시는 것처럼, 그대의 집안에 대감님으로 계시는 때문이요, 또 흔히들 말하는 대로 「만또 밑에 있으면 왕이라도 잡아 죽인다」는 그 뜻을 아시는 때문입니다.
그대는 어떠한 존경이나 의무에서 면제될 자유가 계십니다. 그러기에 그대가 보시는 대로 이 이야기를 들어서 말씀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나쁘게 말씀하셨대서 중상이나, 잘 말씀했다해서 상받으실 염려라곤 조금도 없으니까요.
내가 그대에게 드리고 싶은 것이란 서언(序言)이나 으례 있는 십사행시(十四行詩)에다가 풍자시(諷刺詩)며 찬사(讚辭)의 너절한 목록을 곁들여서 책머리를 장식하여 놓는 그런 것이 아니라, 그저 있는 그대로 탁 까놓고 하는 이야기뿐인 것입니다.
사실 말이지 그것을 엮는다고 내가 얼마만큼 수고를 들였다고는 하지만, 지금 그대가 읽어가는 이 서언이야말로 그중 까다로운 것이었읍이다.
나는 그것을 쓰려고 몇번이고 붓대를 잡았다가도 무엇을 써야 할지 몰라서 거듭 붓대를 던져버렸읍니다.
헌데 한번은 종이를 앞에 놓고 붓대를 귀에다 꽂고, 팔꿈치는 책상에, 손은 볼에 대고 말할 것을 생각하며 무료히 앉아 있을 무렵, 뜻밖에도 상냥하고 분명한 내 친구 한 사람이 들어왔었읍니다.
그는 내가 몹시도 생각에 잠겨 있음을 보자, 그 까닭을 묻기에, 나는 숨김없이 돈 끼호떼 전(傳)에 붙일 서언을 구상하고 있다는 것과, 그것이 하도 어려우니 훌륭하신 기사(騎士)의 위업을 세상에 알리는 것도 그만둘까보다고 말하였읍니다.
왜냐고요? 내가 골치를 앓고 있던 것쯤 이유야 뻔하지 않습니까. 벌써 몇해를 침묵과 망각 속에 잠자고 있던 끝에, 내가 이런 나이를 한 이맘때에 기록하는 골풀처럼 야위고 창의가 없고 서투른 문장에다, 사상조차 가난하고, 학식과 교리가 아울러 모자라는 전기를 옛부터의 입법자라 불리우는 속한(俗漢)들이 본다면, 무어라 하겠읍니까.
다른 책들을 볼라치면 아무리 엉터리요, 속된 것일지라도 아리스또뗄레스며 쁠라똔, 그리고 통틀어 철학자들의 장귀(章句)를 가득 실어서 독자들이 경탄하고 그 저자들을 다독(多讀), 박학(博學), 미문가(美文家)로 간주하게 되는 터인데, 그런 식의 난외(欄外) 및 권말(卷末)의 주(註)들이 내 책엔 없으니 말입니다. 또 그들이 성서(聖書)를 인용할 제는 어떻습니까.
그 꾸밈새를 보시면 어찌나 묘하던지 한줄에는 풋사랑이 그려져 있는가하면, 또 다른 줄에는 듣고 읽기에 마음이 흐뭇해지는 그리스짠 설교가 있어, 그들이야 말로 모두가 성자 또마스가 아니면 교회의 성학자(聖學者)들임에 틀림 없지요.
내 책엔 전혀 이런 것이 없읍니다.
난외에 써 넣기와 책끝에 주를 붙이기와, 또는 남들처럼 책머리에 어떠 어떠한 저자들을 참고했답시고 아리스또뗄레스로부터 시작하여 쎄노폰떼, 아니 그 하나는 독설가요, 또 하나는 환장이던 쏘일로와 쎄욱시스에 이르기까지 ABC차례로 늘어놓는 것이 없는 까닭입니다.
이뿐아니라 내 책은 권두(卷頭)의 십사행시(十四行詩)가 없읍니다. 적어도 공후백작(公侯伯爵) 어르신네나, 주교(主敎)들이나, 으리으리하신 귀부인, 또는 시인들이 지으신 소네또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기야 나라해서 마음씨좋은 두세 친구에게 그만한 것쯤 부탁 못할 바 아닙니다. 그러기만 하면 그들이 선뜻 해줄 것을 잘 알고 있고, 그리고 우리 서반아에서 가장 이름있는 그들의 것에 견줄 만한 것이 없으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읍니다만······.
결국 나는 「나의 존경하는 벗이여──하고 나는 이어 말했읍니다──부족한 가지가지를 꾸며 줄 그 이를 하늘이 보내주실 때까지 나는 라 만챠의 서고(書庫)에다가 돈 끼호떼님을 파묻어 둘 작정입니다.
그건 모자라고 배운 것이 없는 나로서, 그런 것들을 메워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아서 뿐만 아니라, 내 본시 일을 싫어하고 게으른 성미여서 고인(古人)들을 성가시게 않고도 알 수 있는 일을 일부러 그들을 찾아 다니며 말씀해 줍시사 하기가 싫은 때문입니다.
그대 아까 본 대로 내가 어름어름 얼빠져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는데, 나한테 들으신 그대로 나는 그런 사정이 있었던 것입니다」
말을 듣자 내 친구는 손바닥으로 이마를 탁 치고 껄껄 한 번 웃어 제치더니 말했읍니다.
「노형 그들를 알고난 뒤부터 여태까지, 언제나 그대의 하는 일이면 모두가 생각이 깊고 슬기로운 것인 줄로만 여겨왔더니, 이제야 내가 그릇 판단하였음을 확실히 알겠읍니다. 하늘과 땅 사이가 두드러지듯, 그대도 그것에서 멀리 있음을 내가 보는 까닭입니다.
도대체 그대같이 농익은 재주를 이따위 하치않고 또 바로갑기 쉬운 일들이 망연자실케 하다니,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더구나 이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들을 해치워버린 그대가 아니었던가요?
정녕코 이것은 재간이 없어서 생긴 것이 아니라, 지나친 게으름과 사려판단의 결핍에서 오는 것입니다. 내 말이 참말인지 꼭 알아야만 하시겠다면, 그렇다면 똑똑히 들어보시오. 눈 한 번 깜짝하는 사이에 그대의 난관이라는 것을 모조리 없애주고, 또 그대가 천하를 주름잡는 기사의 빛이요, 본보기인 멋들어진 돈 끼호떼전을 세상에 내놓지 못하도록 기를 꺾어버린 결점을 단번에 고쳐 주겠읍이다」
그의 말을 듣고 나는 대답하였읍니다. 「말해보오. 대체 무슨 수가 있기에 내 공포의 공간을 메워준다는 것이며, 내가 빠져 있는 어둠을 밝혀준다는 것입니까?」
이 말에 그는 대꾸하였읍니다. 「첫째, 허두에 있어야할 소네또며 풍자시며 찬사(讚辭), 그것도, 이름이 쟁쟁하신 굵은 양반들이 지은 것이 없다 해서 손을 못쓰고 있는 것으로 말하면, 손수 그대가 약간 힘을 들이고 나서, 그 다음에는 마음이 내키는 대로 인도의 사제(司祭) 후안이라거나 뜨라삐손다의 황제의 어제(御製)라거나 하는 이름을 붙여서 세례를 주면 될 것 아닙니까. 그들이 이름난 시인들이었다고 모두들 그러니 말입니다.
혹시 그런 이들이 없고, 또 가짜 선비들이나 득업사(得業士)들이 이러쿵 저러쿵 등 뒤에서 그대를 물어뜯고 소곤거리거들랑 그따윌랑 두푼어치로도 여기지 마십시오. 거짓말이라고 탓을 돌릴지라도 이미 써버린 손목을 자를 수야 없을 터이니까요.
그리고 그대가 전기의 난외에다 집어넣을 서적과 저자들의 격언 경귀(警句)만 하더라도 외우고 있는 것이나 손쉽게 알아낼 수 있는 몇마디 명구(名句)와 라띤말이 있으면 그만인 것이니, 이를테면 자유와 구속을 들어 말한때면 Non bene pro toto libertas venditur auro(황금을 다 털어서도 자유는 잘 사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슬쩍 난외에다가 호라씨오나 다른 누구의 말이라고 적어두는 것입니다. 만약 죽음의 위력을 말하고 싶거든,
Pallida mors aequo pulsat pede pauperum tabernas, ragumque turres(창백한 죽음은 같은 발로 가난한 이의 운집이나 임금님의 성탑(城塔)을 찾는다)하고 척허니 대는 것입니다.
그리고 원수에게 대하여 하나님이 명령하신 우정과 사랑을 말하려거든, 당장 성서로 들어가시오. 그것쯤이야 대수롭지 않은 호기심으로 할 수 있고, 또 뭣하면 바로 하나님의
Ego autem dico vobis: diligite inimicos vestros(나는 너희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할 수도 있을 겝니다.
나쁜 생각에 대한 말이 하고 싶거든 복음서(福音書)의 De corde exeunt cogitationes malae(궂은 생각들은 마음으로조차 나오나니라)하면 되지요. 친구의 믿을 수 없음을 말하련다면 끼또가 옛소하고 그의 이행싯귀(二行詩句)를 이바지할 것입니다.
Donec eris felix, multos numerabis amicos;
Tempora si fuerint nubila, solus eris.
(행복할 제면 많은 벗들을 헤리로되, 구름낀 시절이 오면 너 혼자 있으리라)하고.
라띤말이나 이런 따위를 쓰게 되면 그대는 제법 고전학자(古典學者) 행세를 할 것이고, 그리 되면 요즘 세상에 적잖은 명예와 잇속이 있을 것입니다.
책 끝에다가 주(註) 붙여야 할 것으로 말하면, 그것은 이렇게 하시면 틀림 없을 것입니다. 즉 그대의 저서에 어느 거인의 이름을 대어야 하겠으면, 거인 골리앗이라 하고, 그대에겐 아무 것도 아닌상해도 이것만으로 대단한 주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면 〈거인 골리아스 또는 골리앗. 휠리스떼아인. 떼레빈또의 골짝에서 목동 다뷧이 큼직한 팔매돌로 이를 죽이다. 『열왕기(列王記)』에 실려 있음〉 이렇게 적고 그 장(章)을 대면 된다는 말입니다.
다음은 그대가 인문과학이나 우주지(宇宙誌)의 학자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전기에다 따호 강의 이름이 나오게 하시되, 〈따호 강. 서반아국의 한 임금이 이같이 명명(命名)하다. 이러이러한 자리에 그 근원이 있고 리스보아의 유명한 도성(都城)을 씻으며 대양(大洋)으로 빠짐. 사금(砂金)이 난다는 말이 있음. 운운〉하면 바로 훌륭한 주가 될 것입니다.
도둑놈 이야기를 할 테면 내가 휑하니 외고 있는 까꼬의 일대기(一代基)를 그대에게 말해줄 것이고, 갈보들 이야기라면 자아 몬도네도의 사교(司敎)가 계십니다. 그는 알라미아며 라이다며 흘로라를 자료로 보여주실 것이니, 그 방주(傍註)는 그대로 하여금 상당한 신망을 얻게 해줄 것입니다. 독부(毒婦)에 관한 것은 오뷔디오가 메데아를 이바지할 것이고, 요술이나 마법의 계집들이라면, 오메로는 깔립소를, 비르질리오는 씨르쎄를 대어줄 것입니다. 용맹한 장군 이야기면 훌릐오 쎄살이 그의 주기(註記) (譯註 ? 율리우스 체살의 著 『갈리아 戰爭』의 註)로써 자신을 그대에게 이바지할 것이고, 쁠루따르꼬가 알레한델을 천이라도 내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애정문제라면 이태리어 지식의 열닷푼쭝만 가지고 레온 에브레오한테 덤벼들기만 하면, 그가 도매금으로 넘겨줄 것입니다.
그리고 딴 나라들까지 갈 생각이 없으시다면, 바로 그대의 집에 혼세까의 『하느님의 사랑』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거기엔 그대나 뛰어난 천재가 이런 문제에 있어 꼭 알았으면 하는 모든 것이 요약되어 있읍니다. 결국 말하자면, 그대의 전기에 이런 이름들을 주워섬기고, 방금 내가 말한 이야기를 얼버무려 놓기만하면 되는 것입니다. 방주(傍註)나 주석(註釋)을랑 나한테 맡기시오. 나는 맹세코 여백을 가득 채워드리고, 권미에는 종아 수십장을 써버릴 터이니까요.
그럼 인제 다른 책들에 있어도 그대의 책에 없는 참고서의 인용으로 넘어갑시다. 이것도 아주 쉽게 해 치울 수 있읍니다, 라는 것은 그대 말마따나 A부터서 Z까지를 모조리 뽑아 놓은 책 한 권만 얻으면 그대의 책에다가 ABC 차례대로 주욱 늘어놓으실 수 있으니까요.
이리해서 거짓말이 환히 드러나 가지고, 모처럼 그대가 이용하려던 필요가 줄어들었다 해도 큰일은 아닌 것입니다.
그뿐아니라, 단순하기 짝이 없는 누가 있어서 그대의 숫되고 진실된 전기에도 그토록 많은 저서가 씌었는가 하고 믿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따위가 딴 데는 소용이 닿지 않는다 할지라도, 길다란 저자의 목록은 적어도 책의 권위를 위하여 뜻하지 않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대가 그걸 다 참고했는지 안했는지 캐 보았댔자 아무 뾰족한 수가 없으니까, 그럴 사람이 없을 테니 말입니다.
더군다나 내가 아는 대로는 있어야 할 것이 없다고 그대가 말하는 그런 것은 애당초 그대의 책에 있어야할 것도 아닙니다. 왜냐면 그대의 책은 아리스또뗄레스가 꿈에도 생각지 않았고, 성자 바실리오가 말 한마디 없으셨고, 씨쎄로가 언급한 바 없는 기사도(騎士道)의 이야기 책들을 모조라 통박하려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그따위 되지못한 이야기거리들에는 진리의 엄정성이나 점성술(占星術)의 관상(觀象)이 당치않은 것이고, 기하학의 측정 또는 수사학(修辭學)에나 쓰이는 논박(論駁)이 대단한 것도 아니고, 신과 인간을 뒤섞으면서 설교하는 것도 긴치않은 것입니다. 요렇게 뒤섞는 따위는 어느 그리스도적 지성이고 간에 이를 받아 들여서는 안되는 것이니까요.
그대는 써 나가는 것에 다만 모방을 이용하시면 그만인데, 그것이 완전할수록 그만치 쓰는 것은 일품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대의 이 책이 노리는 것은, 세간과 속한(俗漢)들에게 기사도의 이야기책들이 끼치고 있는 영향과 권위를 꺾는 데에만 있느니만큼, 구태여 철학자들의 명귀(名句)나 성서의 교훈, 시인들의 우화(寓話), 수사학(修辭學)의 웅변, 성인들의 기적 등을 구걸하며 다니잘 것이 없읍니다.
그저 예사롭게 뜻있고 깨끗하고 쨈새있는 말을 가지고, 듣기좋고 구수한 글발로 시작하시되, 맘먹은 것이 제대로 이루어지기까지 낱낱이 묘사하고, 그대의 뜻하신 것이 비뚤어 또는 흐려지지 않도록 똑똑히 해주시오. 또 그대가 힘써야 할 것은 그대의 전기를 읽어가면서 우울하던 사람이 웃고, 쾌활한 사람이 더욱더 기뻐지고, 단순한 사람이 싫증을 내지 않는가 하면, 약삭빠른 사람도 그 취향(趣向)에 탄복하고, 점잖은 양반마저 이것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슬기로운 사람이면 이를 칭송치않고는 못배기도록 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허구많은 사람이 싫어하고, 그러면서 또 좋아하는 이 기사담(騎士談)이 잘못 의존하고 있는 그 엉터리를 쳐부수는 데에다 눈독을 들이시오. 여기까지만 도달하면 결코 이만저만한 성공이 아닐 테니까요」
내 친구가 내게 말하는 것을 듣고, 나는 아무 소리없이 침묵할 따름이었읍니다. 그의 차근차근 따지는 품이 어찌나 내 마음에 쏙쏙 들어오던지, 이러니 저러니 입다툼할 게 없이, 모두 옳게 여겨서 그냥 그것을 서언으로 쓰고자 하였읍니다.
상냥한 독자여, 그대는 이 머리말에서 내 친구의 현명함을 발견할 것이고, 꼭 필요한 때에 이러한 충고자를 발견한 나의 행운을 볼 수 있을 터이며, 그대로 말하면 천하에 이름난 라만챠의 돈 끼호떼님의 실기(實記)를 손쉽게 얻어 볼 수 있는 흐뭇함을 맛보실 것이외다.
그 돈 끼호떼에 대하여는 몬띠엘 지방에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가 옛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고장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순결한 연인(戀人)이요, 용감무쌍한 기사라고 평판이 자자한 분이십니다.
그렇다고 나는 그처럼 탁월하고 훌륭하신 기사를 그대에게 알려 드리는 일쯤 무슨 대단한 노릇이라고 떠들 마음은 없읍니다. 허나 유명한 그의 종자(從者) 산쵸 빤싸를 소개해 드리는 것만은 내게 치사하셔도 좋습니다. 이것만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기사담들의 엉터리 책 무더기에서 멋진 종자들만한테 모아 가지고 엮어 드리는 것으로 믿는 까닭입니다.
바라건대 하느님은 이것과 함께 그대에게 안강(安康)을 주시기를. 그리고 그대 부디 나를 잊지 말으시기를. VALE 그럼 안녕.
正 篇
第一 이름높은 활량
돈 끼호떼 델 라 만챠의 됨됨이와 그 하는 일을 들어 말하는 章
활량이라면 으례 창을랑 시렁 위에 얹어두고 낡아빠진 방패에 비루먹은 망아지, 그리고 재빠른 사냥개를 가지기 마련인 그러한 어느 활량이 라만챠──외어두고 싶지 않은 그 이름이지만──의 시골에 살고 있었다는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니었다. 양고기보다는 쇠고기가 더 많은 남비지짐, 저녁이면 거의 항상 잘게 썬 고기요리, 토요일이면 소금절이 돼지고기에 달걀, 금요일은 렌즈콩, 주일이면 비둘기 한 접시를 곁들여서 이렇듯 그는 수입의 사분지 삼을 낭비하고 있었다.
나머지는 두꺼운 나사로 지은 긴 만또, 축제일용(祝祭日用)의 우단 바지에 같은 천으로 만든 방신에 쓰고 여느날들엔 제일 고운 양모직(羊毛織)으로 뽐내고 있었다.
그의 집에는 마흔살이 넘은 안잠자기와 스물아 될까말까하는 조카딸, 그리고 들에도 거리에도 두루치기로 쓰이는 머슴이 하나 있었다.
머슴은 말께 안장을 짊기도 하고 낫을 휘두르기도 하는 것이었다. 우리 활량의 나이는 오십이 가까운데, 정정한 허우대에 몸은 말랐고, 얼굴은 야위었으나 아예 새벽잠이 없고, 사냥을 몹시 즐기는 사람이었다.
〈끼하다〉 또는 〈께사다〉라는 호(號)를 가지고 있음으로 해서 이를 들어 쓰는 필자들 사이에 가지가지 틀리는 점이 있으나, 그럴 듯한 추측으로는 〈끼하나〉라 부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아뭏든 우리 이야기에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보매, 그에 대한 이야기에서 조금이라도 진실에서 벗어남이 없기만 하면 그만일 것이다.
헌데 알아둘 것은 저 위에 말한 활량이 한가한──일년이면 대개 거의가 그러한──때에 기사담(騎士談)을 읽는 데에 골똘하였었다. 읽되 정열을 쏟고 맛을 들여서 사냥 나가는 것쯤은 거의 잊어버리다시피 하고, 집안 살림살이라곤 통 돌아보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의 호기심과 광태는 여간한 것이 아니었다. 읽고 싶은 기사담 책을 사들이기 위해서 몇정보나 되는 전장을 팔아버리고, 그 돈으로 닥치는 대로 그런 책들을 사서 집으로 가지고 오는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어느 책도 유명한 휄리씨아노 데 실바가 엮은 것만큼 잘된 것은 없다고 그는 생각하였다. 문장이 맑고 깨끗하면서 동시에 헝클어진 말솜씨가 구슬처럼 느껴진 때문이었다.
그것은 애인끼리의 속삭임이나 말씨름이 거듭거듭 나타나는 대목에 이르러서 더욱 그러하였으니, 이를테면, 〈이성(理性)아닌 이성이 내 이성을 요 꼴로 만들어서 내 이성이 병들게 하였으니, 그대의 미모를 원망함도 이성이랍니다〉라든지, 또는 〈드높은 하늘은 갸륵하신 그대를 갸륵도 하게 별들로 에워주고, 그대의 위대하심에 상당한 상을 그대에게 상으로 줍니다〉라는 대목이었다.
이런 대목이 나올라치면 이 가엾은 활량의 머리가 도는 것이었고, 밤을 새워가며 그 뜻을 알아들으려고 파고드는 것이었으나, 설사 아리스또뗄레스가 이것만을 위해서 부활한다손 치더라도, 그 이마저 캘 수도 풀을 수도 없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는 돈 벨리아니스가 주고 받은 상처에 대해서만은 선뜻 믿기 어려운 점이 있었으니, 제아무리 한다한 명의(名醫)의 치료를 받았기로니, 상채기와 흠집투성이던 얼굴과 몸뚱이가 멀쩡할 리는 없으리라고 생각한 때문이었다.
허나 그건 그렇다 치고, 끝장을 낼 수 없는 모험을 끝마무리를 안한 채로 끝내어버린 그 작자의 솜씨를 놀라운 것이라 하였다. 그러기에 작자가 마음 먹었던 것처럼 이야기의 끝을 채우려고 몇번이나 붓을 들 생각도 해보았었다. 사실 끊임없이 일어나는 과대망상이 방해만 하지 않았던들 틀림 없이 그것을 했을 것이고, 그랬으면 그걸 해 내고야 말았을 것이다.
그가 제 고장의 주임신부(시구엔싸에서 학위를 받은 선비)를 만나서 가끔 토론하는 것은 영국의 빨메린이나 가울라의 아마디스, 그 둘 중에 누가 더 훌륭한 기사(騎士)이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같은 마을의 이발사 니꼴라스님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네들이 훼보(太陽)의 기사님 근처나 갈 수 있는가. 그저 비슷하달 누가 있다면 갈라오알님이지. 그 아마디스 데 가울라의 아우님 말일세. 왜 그런가하면 그분이야말로 무엇에든 막힐 데가 없으시거든. 곰살궂은 기사도 아니시고, 그 형님처럼 툭하면 찔찔 우는 이도 아니고, 게다가 용맹한 푼수로는 결코 그 형에 뒤지지 않으니 말일세」
요컨대 이 활량은 밤이면 해질녘부터 날이 샐 때까지, 낮이면 동틀 무렵부터 땅거미가 질 때까지, 줄창 그 책을 읽는 일에만 골몰하였다.
이러느라 잠은 적고 독서만 지나쳤던 까닭에 머리가 비비 꼬여들어가고, 급기야 그는 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책에서 읽은 것이면 무엇이거나 즉 환술(幻術), 싸움, 접전, 결투, 부상, 귓속말, 사랑, 고초, 천하에 어처구니없는 일들까지가 모두 공상을 잔뜩 부풀게 하였고, 그로 하여금 공중누각을 세우게 해서, 읽어가는 꿈이야기 엉터리마저 참말 있었던 사실로 믿게 하였으니, 세상에 가장 뚜렷한 역사도 그에겐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말하였다. 씯 루이 디아스가 한다한 기사이긴 하지만, 무시무시하고 어마어마한 거인을 두 사람이나, 그것도 한 칼질로 두 동강을 내어버린 아르디엔떼 에스빠다(타는 칼)의 기사와 견줄 수 없다고.
그가 베르나르도 델 가르삐오를 높이 평가하기는 이 이가 론쎄스발레스에서 귀신 같은 롤단을 무찌를 때, 대지의 아들 안떼오를 두 팔로 껴서 질식케 한 에르꿀레스의 솜씨를 본뜬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가 거인 모르간떼를 무척 좋게 말하는 까닭은, 모두가 거만하고 억세기만한 거인 족속 중에 모르간떼만이 상냥하고 단정하다는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른 누구보다도 그가 으뜸으로 꼽아주는 것은 레이나르도스 데몬딸반이었다.
이 기사가 성을 뛰쳐나와 닥치는 대로 약탈을 감행하는 광경이며, 역사에 실린 대로 순금으로 만들었다는 마오마의 우상을 바다 너머에서 빼앗아왔다는 광경이야말로 일품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배신자 갈랄론을 발길질할 수 있는 일이라면 안잠자기나 조카딸쯤 내어줄 용의가 있었다.
정말이지 그의 판단력은 진작부터 말못할 지경에 이르러서 일찌기 세상에 없었던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그가 일신의 보다 큰 영예와 국가에의 봉사를 위하여 떳떳이, 또 반드시 해야 되겠다고 생각한 것은 기사가 되는 일이었다. 즉 갑옷을 떨쳐입고 말을 타고 모험을 찾으러, 그리고 편력기사들이 수행했다는 것을 읽은 그대로 한번 해볼 양으로 천하를 두루 다니며 여러 가지 인욕(忍辱)을 치르고, 어떠한 위험이나 사지(死地)에든지 몸을 던져서 이를 극복함으로써 후세에 남길 이름과 영예를 얻어보자는 것이었다. 가엾은 그는 제 완력으로 적어도 뜨라삐손다 제국의 옥좌에 벌써 오른 것처럼 생각하였고, 이러한 흐뭇한 생각들이 자아내는 엉뚱한 희열에 들떠서 성급히도 소원성취를 하려들었다. 그리하여 맨처음으로 그가 잡아든 것은 증조부때의 무기를 소제하는 일이었는데, 그것은 동녹과 좀이 쏠고 몇백년 동안을 한구석에 처박아두어서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힘을 다하여 닦아내고 손질하여 보았으나, 그것들에 큰 흠집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낯덮개가 없는 투구일뿐 그저 보통 쇠모자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재주를 부려서 그 대용품을 만들어냈다. 다시 말하면 두꺼운 종이로 얼치기 투구를 만들어서 쇠모자에다가 딱 붙여 놓으니까, 제법 완전한 투구 모양이 되었다. 더구나 그는 투구가 단단한지, 그리고 칼을 받더라도 까딱없을 것인지 시험해보려고 몸소 칼을 뽑아서 두어번 갈겼더니, 그만 단 한 번에 일주일 동안 애써 해놓은 일이 허사가 되고 말았다. 그렇게도 허망하게 너털너털 찢어지는 것을 그냥 나쁘다고만 버려둘 수 없고, 오히려 이런 위험을 방지하기 위하여서 이번에는 수법을 바꾸어가지고 안쪽에다 철사를 가로질러 놓았다. 해놓고보니 그 튼튼함에는 본인도 만족할 만한 것이 되어서, 다시 시험해 볼 것도 없이 낯덮개 달린 투구치고는 썩 훌륭한 것이라고 믿었다.
다음 그는 자기의 말을 살펴 보았다. 헌데 그것 역시 레알(銀錢)을 쪼개어낸 꾸아르또(小錢)보다 더하게 굽이 터져 있고, tantum pellis et ossa fuit(가죽과 뼈뿐이더라)고 한 고넬라의 말보다 더 더러운 것이었음에도, 알레한드로의 부쎄팔로와 엘 씨드의 바비에까인들 이놈에게 당할소냐 하고 그는 생각하였다. 어떤 이름을 이놈에게 지어줄까 하고 궁리하는 동안에 나흘이나 되는 날이 흘렀다.
그 자신의 말마따나 도대체 일등 기수(騎手)가 타시는 천리마(千里馬)의 이름이 알려지지않은 채로 만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그는 편력기사가 타시는 말이 그전에는 어떠했으며, 지금은 어떠한 말이 되었는가를 똑똑히 알려주는 이름을 붙이려고 애썼던 것이다. 제 주인의 지체가 높아졌으니, 그 말도 이름을 갈아야 할 뿐더러, 그 주인의 새로운 품위나 이미 잡아든 새로운 수행에 알맞은 뚜렷하고 헌걸찬 이름을 지어야 마땅한 까닭이었다.
그래서 기억을 더듬고 상상력을 짜내서 허구많은 이름을 지었다간 지우고, 짤랐다간 붙이고, 또 없앴다가는 고쳐 짓고 하다가 마침내 로씨난떼라고 불렀다. 활량의 짐작에 이 이름이야말로 으뜸 가는 낭랑한, 그리고 그전과는 딴판으로 세상에서 제일가는 명마(名馬)를 그럴싸하게 표현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렇듯 꼭 마음에 드는 이름을 말에게 지어주고 나니, 이제는 자기 이름을 짓고 싶은 생각이 나서, 그 생각으로 또 여드레를 보내다가, 드디어 돈 끼호떼로 행세하기로 하였다. 이 이름 때문에──앞에도 말했거니와──이 실전(實傳)의 저자들이 께사다라야 옳다거니, 아니 끼하다라야 된다거니 하며 서로 주장하게 된 것이다. 어쨋든 그의 생각으론 저 용맹스러운 아마디스가 그저 아마디스로만 통하기에는 마음이 차지 않아서, 제 나라 제 고장의 이름을 따가지고 이를 한껏 빛내고자 가울라의 아마디스라 했으므로, 자기 자신도 어엿한 기사로서 제 이름에다가 향국(鄕國)의 이름을 얹어서 라 만챠의 돈 끼호떼라 불렀다.
속셈으로는 이리하는 것이 훨씬 더 제 가문과 향국을 돋보이게 하고, 나아가서는 그에서 아호(雅號)를 취한다는 것이 바로 그를 존경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무기는 닦아 놓았것다, 낯덮개 달린 쇠모자는 다 되었것다, 말 이름, 자기 이름 짓는 일도 끝나고 나니, 남은 것이라곤 다만 사랑을 바칠 여성을 찾는 일뿐이었다. 왜냐하면 편력의 기사치고 사랑하는 이가 없다는 것은 잎사귀와 열매가 없는 나무, 영혼이 없는 육체나 마찬가지인 까닭이다.
그는 스스로 말하였다. 내가 만일 죄의 벌 때문에, 혹은 운이 좋은 때문에 어디서 어떤 굴때장군을 만난다 치면──편력의 기사에게 그런 일은 흔히 있는 법이라──대뜸 그놈을 때려눕히든지 아니면 몸을 두쪽으로 갈라주든지, 또 아니면 꼼짝 못하게 항복을 받아야지. 그래서 그놈을 잡아다 바칠 어른이 계신다면야 얼마나 멋들어진 노릇이겠느냐? 그때 그놈이 대령하여 나의 우아하신 아가씨 앞에 두 무릎을 꿇고 목소리도 낮게 살려주십소사하는 어조로 아뢰되,
「아가씨여, 소인은 말린드라니아 섬의 소유자, 거인 까라꿀리암브로라는 놈이오이다. 두 번도 아닌 단 한 번의 접전에서 기려도 기려도 못다할 기사 돈 끼호떼님께 완전히 패하와, 그 어른의 분부로 이제 당신의 어전에 대령하여 있나이다. 소인 감히 존귀하신 당신의 처분만 바라올 따름이로소이다」
라고 한다면, 그 얼마나 신나는 일이겠느냐? 맘씨 고운 우리 기사가 이런 생각을 하였을 때, 얼마나 좋아하였던가. 그가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지어드릴 그 본인을 발견하였을 때 더욱 그러하였다.
그 본인이 누군고하니──전하는 바에 의하면──활량의 동네에서 멀지않은 데에 사는 보기에도 어여쁜 시골 아가씨로서, 그가 언젠가 사모한 일이 있은 그이였다. 그렇다해서 누가 생각하더라도 이쪽은 그이를 알거나 조금이라도 그런 눈치라도 뵌 적이 없었다. 이름은 알돈싸 론렌쏘였는데, 활량은 자기가 그리워하는 아가씨의 칭호를 그에게 드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였다. 이리하여 자기 이름과 과히 동떨어지지도 않고, 공주나 대갓집 따님과 근사한 이름들을 고르다가, 또보소 태생이었기 때문에 둘씨네아 델 또보소라 이름지었다. 그의 생각에는 앞서 자기와 자기의 소유물에 대하여 모두 그랬던 거와 같이, 이 이름이 음악적이고 멋지고 의미심장한 것이라 여겨젔다.
第二 갸륵한 돈 끼호떼가 처음으로 제 고장을 나서는 章
이런 채비가 되고나니 계획을 실천하는 데에 잠시도 때를 기다릴 수 없었다. 어서 가서 씻어주고 싶은 모욕, 바루어야 할 부정, 다스려야 할 무법, 뜯어고쳐야 할 폐습, 갚아야 할 은의, 이런 따위를 없애줄 자기가 나서지 않는 때문에, 온 세상이 기다리다가 지치나보다 하고 생각할 때, 그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자기의 뜻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또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어느 날 아침 동이 틀 무렵에──그것은 칠월의 한더위였다──갑옷을 차려 입고 로씨난떼에 올라타, 아무렇게나 생긴 투구를 쓰고 방패 끼고 창을 빗겨들고는 슬그머니 뒷문을 빠져서 들로 나왔는데, 아름다운 자기의 계획을 이렇게도 거뜬히 채우기 시작하였다싶어서, 몹시도 기쁘고 좋아 죽을 지경이었다. 허지만 들로 나갔을까 말까 했을 무렵 오싹 무서운 생각에 사로잡혀서 모처럼 시작한 계획을 내어던질 뻔하였으니, 그것은 그가 기사임명식(驥士任命式)을 거치지 않았을 뿐더러, 기사도의 예법에 의하면 이러한 기사로서는 어떠한 기사와도 무기를 겨누지 못하고, 겨누어도 안 되는 것이며, 설사 임명식을 받았다 하더라도 풋내기 기사이고 보면 제 힘으로 얻기까지 그 방패에 휘장(徽章)이 없어야 하고, 흰 갑옷을 입어야 한다는 기억이 떠옥랐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들이 그의 계획을 흔들리게 하였으나, 그의 광기는 어떠한 이유들보다 강하였기 때문에, 이런 경우 숱한 기사들이 이러이러 하였다는 것을 책에서 읽은 고대로, 자기가 맨처음에 만나게 될 어느 기사한테서 대갑식(帶甲式)을 받으려 결심하였다.
흰 갑옷에 대해서는 입고 있는 것을 틈나는 대로 닦고 닦아서 흰담비보다 더 하얗게 만들 작정이었다. 이러고나니 적이 마음이 가라앉아서 가던 길을 다시 가기는 하되, 말 가는 대로 내맡기기로 하였다. 그런 데라야 모험의 보람이 있는 것이라 믿는 까닭이었다. 끄떡끄떡 우리의 찬란한 모험가는 줄창 길을 가면서 혼잣말로 이렇게 중얼 거리는 것이었다.
「후대(後代)에 가서만 보아라. 내가 한 뚜렷한 사적이 실록(實錄)으로 나타날 제, 현인(賢人) 필자는 아침나절 나의 첫 출발을 이렇게 적을 것을 뉘 감히 의심하랴. 즉 〈붉으레한 아뽈로님이 가없이 넓은 대지(大地)의 얼굴에 금빛 아름다운 머리채를 드리우실 즈음, 또한 형형색색 어린 새들은 예쁘장한 목청을 뽑아서 저 새암바리 남편의 포근한 자리를 버리시고, 몸소 라 만챠의 지평선 창문들과 노대머리, 뭇사람에게 보이려 오시는 장미빛 새벽 여신에게 절묘한 노래의 인사를 드릴 즈음, 헌다한 기사 돈 끼호떼 델 라 만챠는 포근한 그 깃이불을 걷어차고 명마(名馬) 로씨난떼에 성큼 올라, 옛부터 알려진 몬띠엘의 평야를 바야흐로 가시니라〉라고」
과연 이 곳을 가던 활량은 또 덧붙여서 말하였다. 「미래의 기념을 위하여 청동에 새기고, 대리석에 새기고, 판에 그려서 마땅한 내 혁혁한 공훈이 빛을 낼 그 시대가 복되구나. 그 세기가 복되구나! 오, 그대 현철하신 환술사(幻術師)여, 그대가 누구이든 진기한 이 역사를 엮으려거든 행여 내 선량한 로씨난떼를 잊지 말라. 어딜 가나, 무엇을 하나 항상 그는 나의 길벗이로세」
그러고는 연거푸 사랑에 고민이나 하듯 말하였다. 「오오, 공주마마 둘씨네아여, 사로잡힌 이 마음의 임이시여, 당신의 고우신 앞에 나타나지 말라시는 분부가 지엄하시니, 이 몸을 저허하고 꺼리심이 너무나 한 고통을 저에게 주나이다. 바라옵건대 임이시여, 당신을 사랑키에 인욕(忍辱)의 몸이 된 쇤네의 이 마음을 통촉하시옵소서」
이런 저런 되지않는 말을 엮어대면서 그는 길을 가는데, 그게 모두 책에서 배운 소리로, 될 수 있는 한 그 말들을 입내내는 것이었다. 그러자니 걸음은 더디고 해만 불끈 솟아 쨍쨍 쬐는 바람에 머리가 몇 개라도 녹여 버리기에 넉넉할 지경이었다.
그날은 거의 하루를 이야기할 만한 사건이 없이 걷기만 했다. 누구든지 만나는 대로 당장 팔뚝심을 겨누어 보려던 것이 그만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사전가(史傳家)들이 말하기는 맨처음 그가 당한 모험이 라삐쎄 관문에서였다고도 하고, 더러는 풍차(風車)였다고도 하지만, 가능한 한 내가 이 일을 조사하고 라만챠의 연대기(年代記)에 적혀 있는 바에 의하면, 활량은 그날 진종일 길을 갔었고, 해질녘에는 그도 말도 지쳐버렸고, 배가 고파서 죽을 뻔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방을 휘휘 둘러보면서 행여나 몸을 쉬고 기갈을 풀을 어느 숨막이나 목동들의 움막이 있지 않나하고 살펴보다가, 여태 가던 길에서 멀지않은 곳에 주막집 한 채를 발견하였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도 처마 밑이 아닌 구원의 왕궁에로 인도하는 별과 같았으니, 그리로 그는 걸음을 재촉하여 해질 무렵에 닿았던 것이다.
올재 거는 맞춤법 수정되어 있을 거임.
돈 끼호떼
머리말
여유작작하신 독자여,
오성(悟性)의 소산인 이 책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아름다웁고 고상하고 재치있는 것이라 함을 구태여 맹세할 것 없이 잘 알아주실 줄 믿습니다.
그렇다 해서 나는 자연의 법칙을 등질 수 있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면, 대자연의 모든 것은 제게 닮은 것을 제 몸 안에서 낳고 있는 것이니까요.
이러고보니 메마른 위에 가꾸기조차 잘못한 내 제주인지라, 기름기없고 삐쩍 마르고 바람동이, 그리고 그 누구도 그려본 적이 없는, 말하자면 불편이 자리잡고 있고, 온갖 슬픈 소리가 처소가 되는 그런 감옥에서나 할──갖가지 생각에 가득차 있는 그따위 자식의 내력이 아니면 무엇을 지어낼 수 있으리까.
고요함, 그리고 평화가 깃드는 자리, 들의 아름다움, 하늘의 맑음, 샘물의 졸졸 흐름, 정신의 안정, 이런 것들이라사 메마른 시정(詩情)을 풍요하게 돋우어주고, 세상을 경이와 만족으로 넘치게 하는 작품을 이바지하는 것입니다.
못생기고, 예쁜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는 자식을 가진 아비일지라도, 그가 간직한 사랑에 눈이 흐려져서 제 자식의 흠집을 보지 못하기는커녕 오히려 똑똑하고 잘생간 줄로 여기며, 제 친구들에게는 몸바르고 의젓한 양 이야기하는 법입니다.
헌데 돋 끼호떼의 아비같으면서도 실상 의붓아비뿐인 나는, 시속의 풍습을 따라가고자 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나는 친애로운 독자여, 남들이 하듯이 눈물까지 흘려가면서, 그대가 내 자식 안에서 보시는 결점들을 용서해주고 눈감아 주시라고 청하지도 않습니다.
그대는 그의 아비도 벗도 아닐 뿐더러, 그대의 육체 안에 그대의 영혼과 자유의지를 당당하게 지니시고, 나라님이 세금을 거두어 들이시는 것처럼, 그대의 집안에 대감님으로 계시는 때문이요, 또 흔히들 말하는 대로 「만또 밑에 있으면 왕이라도 잡아 죽인다」는 그 뜻을 아시는 때문입니다.
그대는 어떠한 존경이나 의무에서 면제될 자유가 계십니다. 그러기에 그대가 보시는 대로 이 이야기를 들어서 말씀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나쁘게 말씀하셨대서 중상이나, 잘 말씀했다해서 상받으실 염려라곤 조금도 없으니까요.
내가 그대에게 드리고 싶은 것이란 서언(序言)이나 으례 있는 십사행시(十四行詩)에다가 풍자시(諷刺詩)며 찬사(讚辭)의 너절한 목록을 곁들여서 책머리를 장식하여 놓는 그런 것이 아니라, 그저 있는 그대로 탁 까놓고 하는 이야기뿐인 것입니다.
사실 말이지 그것을 엮는다고 내가 얼마만큼 수고를 들였다고는 하지만, 지금 그대가 읽어가는 이 서언이야말로 그중 까다로운 것이었읍이다.
나는 그것을 쓰려고 몇번이고 붓대를 잡았다가도 무엇을 써야 할지 몰라서 거듭 붓대를 던져버렸읍니다.
헌데 한번은 종이를 앞에 놓고 붓대를 귀에다 꽂고, 팔꿈치는 책상에, 손은 볼에 대고 말할 것을 생각하며 무료히 앉아 있을 무렵, 뜻밖에도 상냥하고 분명한 내 친구 한 사람이 들어왔었읍니다.
그는 내가 몹시도 생각에 잠겨 있음을 보자, 그 까닭을 묻기에, 나는 숨김없이 돈 끼호떼 전(傳)에 붙일 서언을 구상하고 있다는 것과, 그것이 하도 어려우니 훌륭하신 기사(騎士)의 위업을 세상에 알리는 것도 그만둘까보다고 말하였읍니다.
왜냐고요? 내가 골치를 앓고 있던 것쯤 이유야 뻔하지 않습니까. 벌써 몇해를 침묵과 망각 속에 잠자고 있던 끝에, 내가 이런 나이를 한 이맘때에 기록하는 골풀처럼 야위고 창의가 없고 서투른 문장에다, 사상조차 가난하고, 학식과 교리가 아울러 모자라는 전기를 옛부터의 입법자라 불리우는 속한(俗漢)들이 본다면, 무어라 하겠읍니까.
다른 책들을 볼라치면 아무리 엉터리요, 속된 것일지라도 아리스또뗄레스며 쁠라똔, 그리고 통틀어 철학자들의 장귀(章句)를 가득 실어서 독자들이 경탄하고 그 저자들을 다독(多讀), 박학(博學), 미문가(美文家)로 간주하게 되는 터인데, 그런 식의 난외(欄外) 및 권말(卷末)의 주(註)들이 내 책엔 없으니 말입니다. 또 그들이 성서(聖書)를 인용할 제는 어떻습니까.
그 꾸밈새를 보시면 어찌나 묘하던지 한줄에는 풋사랑이 그려져 있는가하면, 또 다른 줄에는 듣고 읽기에 마음이 흐뭇해지는 그리스짠 설교가 있어, 그들이야 말로 모두가 성자 또마스가 아니면 교회의 성학자(聖學者)들임에 틀림 없지요.
내 책엔 전혀 이런 것이 없읍니다.
난외에 써 넣기와 책끝에 주를 붙이기와, 또는 남들처럼 책머리에 어떠 어떠한 저자들을 참고했답시고 아리스또뗄레스로부터 시작하여 쎄노폰떼, 아니 그 하나는 독설가요, 또 하나는 환장이던 쏘일로와 쎄욱시스에 이르기까지 ABC차례로 늘어놓는 것이 없는 까닭입니다.
이뿐아니라 내 책은 권두(卷頭)의 십사행시(十四行詩)가 없읍니다. 적어도 공후백작(公侯伯爵) 어르신네나, 주교(主敎)들이나, 으리으리하신 귀부인, 또는 시인들이 지으신 소네또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기야 나라해서 마음씨좋은 두세 친구에게 그만한 것쯤 부탁 못할 바 아닙니다. 그러기만 하면 그들이 선뜻 해줄 것을 잘 알고 있고, 그리고 우리 서반아에서 가장 이름있는 그들의 것에 견줄 만한 것이 없으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읍니다만······.
결국 나는 「나의 존경하는 벗이여──하고 나는 이어 말했읍니다──부족한 가지가지를 꾸며 줄 그 이를 하늘이 보내주실 때까지 나는 라 만챠의 서고(書庫)에다가 돈 끼호떼님을 파묻어 둘 작정입니다.
그건 모자라고 배운 것이 없는 나로서, 그런 것들을 메워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아서 뿐만 아니라, 내 본시 일을 싫어하고 게으른 성미여서 고인(古人)들을 성가시게 않고도 알 수 있는 일을 일부러 그들을 찾아 다니며 말씀해 줍시사 하기가 싫은 때문입니다.
그대 아까 본 대로 내가 어름어름 얼빠져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는데, 나한테 들으신 그대로 나는 그런 사정이 있었던 것입니다」
말을 듣자 내 친구는 손바닥으로 이마를 탁 치고 껄껄 한 번 웃어 제치더니 말했읍니다.
「노형 그들를 알고난 뒤부터 여태까지, 언제나 그대의 하는 일이면 모두가 생각이 깊고 슬기로운 것인 줄로만 여겨왔더니, 이제야 내가 그릇 판단하였음을 확실히 알겠읍니다. 하늘과 땅 사이가 두드러지듯, 그대도 그것에서 멀리 있음을 내가 보는 까닭입니다.
도대체 그대같이 농익은 재주를 이따위 하치않고 또 바로갑기 쉬운 일들이 망연자실케 하다니,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더구나 이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들을 해치워버린 그대가 아니었던가요?
정녕코 이것은 재간이 없어서 생긴 것이 아니라, 지나친 게으름과 사려판단의 결핍에서 오는 것입니다. 내 말이 참말인지 꼭 알아야만 하시겠다면, 그렇다면 똑똑히 들어보시오. 눈 한 번 깜짝하는 사이에 그대의 난관이라는 것을 모조리 없애주고, 또 그대가 천하를 주름잡는 기사의 빛이요, 본보기인 멋들어진 돈 끼호떼전을 세상에 내놓지 못하도록 기를 꺾어버린 결점을 단번에 고쳐 주겠읍이다」
그의 말을 듣고 나는 대답하였읍니다. 「말해보오. 대체 무슨 수가 있기에 내 공포의 공간을 메워준다는 것이며, 내가 빠져 있는 어둠을 밝혀준다는 것입니까?」
이 말에 그는 대꾸하였읍니다. 「첫째, 허두에 있어야할 소네또며 풍자시며 찬사(讚辭), 그것도, 이름이 쟁쟁하신 굵은 양반들이 지은 것이 없다 해서 손을 못쓰고 있는 것으로 말하면, 손수 그대가 약간 힘을 들이고 나서, 그 다음에는 마음이 내키는 대로 인도의 사제(司祭) 후안이라거나 뜨라삐손다의 황제의 어제(御製)라거나 하는 이름을 붙여서 세례를 주면 될 것 아닙니까. 그들이 이름난 시인들이었다고 모두들 그러니 말입니다.
혹시 그런 이들이 없고, 또 가짜 선비들이나 득업사(得業士)들이 이러쿵 저러쿵 등 뒤에서 그대를 물어뜯고 소곤거리거들랑 그따윌랑 두푼어치로도 여기지 마십시오. 거짓말이라고 탓을 돌릴지라도 이미 써버린 손목을 자를 수야 없을 터이니까요.
그리고 그대가 전기의 난외에다 집어넣을 서적과 저자들의 격언 경귀(警句)만 하더라도 외우고 있는 것이나 손쉽게 알아낼 수 있는 몇마디 명구(名句)와 라띤말이 있으면 그만인 것이니, 이를테면 자유와 구속을 들어 말한때면 Non bene pro toto libertas venditur auro(황금을 다 털어서도 자유는 잘 사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슬쩍 난외에다가 호라씨오나 다른 누구의 말이라고 적어두는 것입니다. 만약 죽음의 위력을 말하고 싶거든,
Pallida mors aequo pulsat pede pauperum tabernas, ragumque turres(창백한 죽음은 같은 발로 가난한 이의 운집이나 임금님의 성탑(城塔)을 찾는다)하고 척허니 대는 것입니다.
그리고 원수에게 대하여 하나님이 명령하신 우정과 사랑을 말하려거든, 당장 성서로 들어가시오. 그것쯤이야 대수롭지 않은 호기심으로 할 수 있고, 또 뭣하면 바로 하나님의
Ego autem dico vobis: diligite inimicos vestros(나는 너희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할 수도 있을 겝니다.
나쁜 생각에 대한 말이 하고 싶거든 복음서(福音書)의 De corde exeunt cogitationes malae(궂은 생각들은 마음으로조차 나오나니라)하면 되지요. 친구의 믿을 수 없음을 말하련다면 끼또가 옛소하고 그의 이행싯귀(二行詩句)를 이바지할 것입니다.
Donec eris felix, multos numerabis amicos;
Tempora si fuerint nubila, solus eris.
(행복할 제면 많은 벗들을 헤리로되, 구름낀 시절이 오면 너 혼자 있으리라)하고.
라띤말이나 이런 따위를 쓰게 되면 그대는 제법 고전학자(古典學者) 행세를 할 것이고, 그리 되면 요즘 세상에 적잖은 명예와 잇속이 있을 것입니다.
책 끝에다가 주(註) 붙여야 할 것으로 말하면, 그것은 이렇게 하시면 틀림 없을 것입니다. 즉 그대의 저서에 어느 거인의 이름을 대어야 하겠으면, 거인 골리앗이라 하고, 그대에겐 아무 것도 아닌상해도 이것만으로 대단한 주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면 〈거인 골리아스 또는 골리앗. 휠리스떼아인. 떼레빈또의 골짝에서 목동 다뷧이 큼직한 팔매돌로 이를 죽이다. 『열왕기(列王記)』에 실려 있음〉 이렇게 적고 그 장(章)을 대면 된다는 말입니다.
다음은 그대가 인문과학이나 우주지(宇宙誌)의 학자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전기에다 따호 강의 이름이 나오게 하시되, 〈따호 강. 서반아국의 한 임금이 이같이 명명(命名)하다. 이러이러한 자리에 그 근원이 있고 리스보아의 유명한 도성(都城)을 씻으며 대양(大洋)으로 빠짐. 사금(砂金)이 난다는 말이 있음. 운운〉하면 바로 훌륭한 주가 될 것입니다.
도둑놈 이야기를 할 테면 내가 휑하니 외고 있는 까꼬의 일대기(一代基)를 그대에게 말해줄 것이고, 갈보들 이야기라면 자아 몬도네도의 사교(司敎)가 계십니다. 그는 알라미아며 라이다며 흘로라를 자료로 보여주실 것이니, 그 방주(傍註)는 그대로 하여금 상당한 신망을 얻게 해줄 것입니다. 독부(毒婦)에 관한 것은 오뷔디오가 메데아를 이바지할 것이고, 요술이나 마법의 계집들이라면, 오메로는 깔립소를, 비르질리오는 씨르쎄를 대어줄 것입니다. 용맹한 장군 이야기면 훌릐오 쎄살이 그의 주기(註記) (譯註 ? 율리우스 체살의 著 『갈리아 戰爭』의 註)로써 자신을 그대에게 이바지할 것이고, 쁠루따르꼬가 알레한델을 천이라도 내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애정문제라면 이태리어 지식의 열닷푼쭝만 가지고 레온 에브레오한테 덤벼들기만 하면, 그가 도매금으로 넘겨줄 것입니다.
그리고 딴 나라들까지 갈 생각이 없으시다면, 바로 그대의 집에 혼세까의 『하느님의 사랑』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거기엔 그대나 뛰어난 천재가 이런 문제에 있어 꼭 알았으면 하는 모든 것이 요약되어 있읍니다. 결국 말하자면, 그대의 전기에 이런 이름들을 주워섬기고, 방금 내가 말한 이야기를 얼버무려 놓기만하면 되는 것입니다. 방주(傍註)나 주석(註釋)을랑 나한테 맡기시오. 나는 맹세코 여백을 가득 채워드리고, 권미에는 종아 수십장을 써버릴 터이니까요.
그럼 인제 다른 책들에 있어도 그대의 책에 없는 참고서의 인용으로 넘어갑시다. 이것도 아주 쉽게 해 치울 수 있읍니다, 라는 것은 그대 말마따나 A부터서 Z까지를 모조리 뽑아 놓은 책 한 권만 얻으면 그대의 책에다가 ABC 차례대로 주욱 늘어놓으실 수 있으니까요.
이리해서 거짓말이 환히 드러나 가지고, 모처럼 그대가 이용하려던 필요가 줄어들었다 해도 큰일은 아닌 것입니다.
그뿐아니라, 단순하기 짝이 없는 누가 있어서 그대의 숫되고 진실된 전기에도 그토록 많은 저서가 씌었는가 하고 믿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따위가 딴 데는 소용이 닿지 않는다 할지라도, 길다란 저자의 목록은 적어도 책의 권위를 위하여 뜻하지 않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대가 그걸 다 참고했는지 안했는지 캐 보았댔자 아무 뾰족한 수가 없으니까, 그럴 사람이 없을 테니 말입니다.
더군다나 내가 아는 대로는 있어야 할 것이 없다고 그대가 말하는 그런 것은 애당초 그대의 책에 있어야할 것도 아닙니다. 왜냐면 그대의 책은 아리스또뗄레스가 꿈에도 생각지 않았고, 성자 바실리오가 말 한마디 없으셨고, 씨쎄로가 언급한 바 없는 기사도(騎士道)의 이야기 책들을 모조라 통박하려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그따위 되지못한 이야기거리들에는 진리의 엄정성이나 점성술(占星術)의 관상(觀象)이 당치않은 것이고, 기하학의 측정 또는 수사학(修辭學)에나 쓰이는 논박(論駁)이 대단한 것도 아니고, 신과 인간을 뒤섞으면서 설교하는 것도 긴치않은 것입니다. 요렇게 뒤섞는 따위는 어느 그리스도적 지성이고 간에 이를 받아 들여서는 안되는 것이니까요.
그대는 써 나가는 것에 다만 모방을 이용하시면 그만인데, 그것이 완전할수록 그만치 쓰는 것은 일품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대의 이 책이 노리는 것은, 세간과 속한(俗漢)들에게 기사도의 이야기책들이 끼치고 있는 영향과 권위를 꺾는 데에만 있느니만큼, 구태여 철학자들의 명귀(名句)나 성서의 교훈, 시인들의 우화(寓話), 수사학(修辭學)의 웅변, 성인들의 기적 등을 구걸하며 다니잘 것이 없읍니다.
그저 예사롭게 뜻있고 깨끗하고 쨈새있는 말을 가지고, 듣기좋고 구수한 글발로 시작하시되, 맘먹은 것이 제대로 이루어지기까지 낱낱이 묘사하고, 그대의 뜻하신 것이 비뚤어 또는 흐려지지 않도록 똑똑히 해주시오. 또 그대가 힘써야 할 것은 그대의 전기를 읽어가면서 우울하던 사람이 웃고, 쾌활한 사람이 더욱더 기뻐지고, 단순한 사람이 싫증을 내지 않는가 하면, 약삭빠른 사람도 그 취향(趣向)에 탄복하고, 점잖은 양반마저 이것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슬기로운 사람이면 이를 칭송치않고는 못배기도록 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허구많은 사람이 싫어하고, 그러면서 또 좋아하는 이 기사담(騎士談)이 잘못 의존하고 있는 그 엉터리를 쳐부수는 데에다 눈독을 들이시오. 여기까지만 도달하면 결코 이만저만한 성공이 아닐 테니까요」
내 친구가 내게 말하는 것을 듣고, 나는 아무 소리없이 침묵할 따름이었읍니다. 그의 차근차근 따지는 품이 어찌나 내 마음에 쏙쏙 들어오던지, 이러니 저러니 입다툼할 게 없이, 모두 옳게 여겨서 그냥 그것을 서언으로 쓰고자 하였읍니다.
상냥한 독자여, 그대는 이 머리말에서 내 친구의 현명함을 발견할 것이고, 꼭 필요한 때에 이러한 충고자를 발견한 나의 행운을 볼 수 있을 터이며, 그대로 말하면 천하에 이름난 라만챠의 돈 끼호떼님의 실기(實記)를 손쉽게 얻어 볼 수 있는 흐뭇함을 맛보실 것이외다.
그 돈 끼호떼에 대하여는 몬띠엘 지방에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가 옛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고장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순결한 연인(戀人)이요, 용감무쌍한 기사라고 평판이 자자한 분이십니다.
그렇다고 나는 그처럼 탁월하고 훌륭하신 기사를 그대에게 알려 드리는 일쯤 무슨 대단한 노릇이라고 떠들 마음은 없읍니다. 허나 유명한 그의 종자(從者) 산쵸 빤싸를 소개해 드리는 것만은 내게 치사하셔도 좋습니다. 이것만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기사담들의 엉터리 책 무더기에서 멋진 종자들만한테 모아 가지고 엮어 드리는 것으로 믿는 까닭입니다.
바라건대 하느님은 이것과 함께 그대에게 안강(安康)을 주시기를. 그리고 그대 부디 나를 잊지 말으시기를. VALE 그럼 안녕.
正 篇
第一 이름높은 활량
돈 끼호떼 델 라 만챠의 됨됨이와 그 하는 일을 들어 말하는 章
활량이라면 으례 창을랑 시렁 위에 얹어두고 낡아빠진 방패에 비루먹은 망아지, 그리고 재빠른 사냥개를 가지기 마련인 그러한 어느 활량이 라만챠──외어두고 싶지 않은 그 이름이지만──의 시골에 살고 있었다는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니었다. 양고기보다는 쇠고기가 더 많은 남비지짐, 저녁이면 거의 항상 잘게 썬 고기요리, 토요일이면 소금절이 돼지고기에 달걀, 금요일은 렌즈콩, 주일이면 비둘기 한 접시를 곁들여서 이렇듯 그는 수입의 사분지 삼을 낭비하고 있었다.
나머지는 두꺼운 나사로 지은 긴 만또, 축제일용(祝祭日用)의 우단 바지에 같은 천으로 만든 방신에 쓰고 여느날들엔 제일 고운 양모직(羊毛織)으로 뽐내고 있었다.
그의 집에는 마흔살이 넘은 안잠자기와 스물아 될까말까하는 조카딸, 그리고 들에도 거리에도 두루치기로 쓰이는 머슴이 하나 있었다.
머슴은 말께 안장을 짊기도 하고 낫을 휘두르기도 하는 것이었다. 우리 활량의 나이는 오십이 가까운데, 정정한 허우대에 몸은 말랐고, 얼굴은 야위었으나 아예 새벽잠이 없고, 사냥을 몹시 즐기는 사람이었다.
〈끼하다〉 또는 〈께사다〉라는 호(號)를 가지고 있음으로 해서 이를 들어 쓰는 필자들 사이에 가지가지 틀리는 점이 있으나, 그럴 듯한 추측으로는 〈끼하나〉라 부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아뭏든 우리 이야기에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보매, 그에 대한 이야기에서 조금이라도 진실에서 벗어남이 없기만 하면 그만일 것이다.
헌데 알아둘 것은 저 위에 말한 활량이 한가한──일년이면 대개 거의가 그러한──때에 기사담(騎士談)을 읽는 데에 골똘하였었다. 읽되 정열을 쏟고 맛을 들여서 사냥 나가는 것쯤은 거의 잊어버리다시피 하고, 집안 살림살이라곤 통 돌아보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의 호기심과 광태는 여간한 것이 아니었다. 읽고 싶은 기사담 책을 사들이기 위해서 몇정보나 되는 전장을 팔아버리고, 그 돈으로 닥치는 대로 그런 책들을 사서 집으로 가지고 오는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어느 책도 유명한 휄리씨아노 데 실바가 엮은 것만큼 잘된 것은 없다고 그는 생각하였다. 문장이 맑고 깨끗하면서 동시에 헝클어진 말솜씨가 구슬처럼 느껴진 때문이었다.
그것은 애인끼리의 속삭임이나 말씨름이 거듭거듭 나타나는 대목에 이르러서 더욱 그러하였으니, 이를테면, 〈이성(理性)아닌 이성이 내 이성을 요 꼴로 만들어서 내 이성이 병들게 하였으니, 그대의 미모를 원망함도 이성이랍니다〉라든지, 또는 〈드높은 하늘은 갸륵하신 그대를 갸륵도 하게 별들로 에워주고, 그대의 위대하심에 상당한 상을 그대에게 상으로 줍니다〉라는 대목이었다.
이런 대목이 나올라치면 이 가엾은 활량의 머리가 도는 것이었고, 밤을 새워가며 그 뜻을 알아들으려고 파고드는 것이었으나, 설사 아리스또뗄레스가 이것만을 위해서 부활한다손 치더라도, 그 이마저 캘 수도 풀을 수도 없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는 돈 벨리아니스가 주고 받은 상처에 대해서만은 선뜻 믿기 어려운 점이 있었으니, 제아무리 한다한 명의(名醫)의 치료를 받았기로니, 상채기와 흠집투성이던 얼굴과 몸뚱이가 멀쩡할 리는 없으리라고 생각한 때문이었다.
허나 그건 그렇다 치고, 끝장을 낼 수 없는 모험을 끝마무리를 안한 채로 끝내어버린 그 작자의 솜씨를 놀라운 것이라 하였다. 그러기에 작자가 마음 먹었던 것처럼 이야기의 끝을 채우려고 몇번이나 붓을 들 생각도 해보았었다. 사실 끊임없이 일어나는 과대망상이 방해만 하지 않았던들 틀림 없이 그것을 했을 것이고, 그랬으면 그걸 해 내고야 말았을 것이다.
그가 제 고장의 주임신부(시구엔싸에서 학위를 받은 선비)를 만나서 가끔 토론하는 것은 영국의 빨메린이나 가울라의 아마디스, 그 둘 중에 누가 더 훌륭한 기사(騎士)이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같은 마을의 이발사 니꼴라스님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네들이 훼보(太陽)의 기사님 근처나 갈 수 있는가. 그저 비슷하달 누가 있다면 갈라오알님이지. 그 아마디스 데 가울라의 아우님 말일세. 왜 그런가하면 그분이야말로 무엇에든 막힐 데가 없으시거든. 곰살궂은 기사도 아니시고, 그 형님처럼 툭하면 찔찔 우는 이도 아니고, 게다가 용맹한 푼수로는 결코 그 형에 뒤지지 않으니 말일세」
요컨대 이 활량은 밤이면 해질녘부터 날이 샐 때까지, 낮이면 동틀 무렵부터 땅거미가 질 때까지, 줄창 그 책을 읽는 일에만 골몰하였다.
이러느라 잠은 적고 독서만 지나쳤던 까닭에 머리가 비비 꼬여들어가고, 급기야 그는 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책에서 읽은 것이면 무엇이거나 즉 환술(幻術), 싸움, 접전, 결투, 부상, 귓속말, 사랑, 고초, 천하에 어처구니없는 일들까지가 모두 공상을 잔뜩 부풀게 하였고, 그로 하여금 공중누각을 세우게 해서, 읽어가는 꿈이야기 엉터리마저 참말 있었던 사실로 믿게 하였으니, 세상에 가장 뚜렷한 역사도 그에겐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말하였다. 씯 루이 디아스가 한다한 기사이긴 하지만, 무시무시하고 어마어마한 거인을 두 사람이나, 그것도 한 칼질로 두 동강을 내어버린 아르디엔떼 에스빠다(타는 칼)의 기사와 견줄 수 없다고.
그가 베르나르도 델 가르삐오를 높이 평가하기는 이 이가 론쎄스발레스에서 귀신 같은 롤단을 무찌를 때, 대지의 아들 안떼오를 두 팔로 껴서 질식케 한 에르꿀레스의 솜씨를 본뜬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가 거인 모르간떼를 무척 좋게 말하는 까닭은, 모두가 거만하고 억세기만한 거인 족속 중에 모르간떼만이 상냥하고 단정하다는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른 누구보다도 그가 으뜸으로 꼽아주는 것은 레이나르도스 데몬딸반이었다.
이 기사가 성을 뛰쳐나와 닥치는 대로 약탈을 감행하는 광경이며, 역사에 실린 대로 순금으로 만들었다는 마오마의 우상을 바다 너머에서 빼앗아왔다는 광경이야말로 일품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배신자 갈랄론을 발길질할 수 있는 일이라면 안잠자기나 조카딸쯤 내어줄 용의가 있었다.
정말이지 그의 판단력은 진작부터 말못할 지경에 이르러서 일찌기 세상에 없었던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그가 일신의 보다 큰 영예와 국가에의 봉사를 위하여 떳떳이, 또 반드시 해야 되겠다고 생각한 것은 기사가 되는 일이었다. 즉 갑옷을 떨쳐입고 말을 타고 모험을 찾으러, 그리고 편력기사들이 수행했다는 것을 읽은 그대로 한번 해볼 양으로 천하를 두루 다니며 여러 가지 인욕(忍辱)을 치르고, 어떠한 위험이나 사지(死地)에든지 몸을 던져서 이를 극복함으로써 후세에 남길 이름과 영예를 얻어보자는 것이었다. 가엾은 그는 제 완력으로 적어도 뜨라삐손다 제국의 옥좌에 벌써 오른 것처럼 생각하였고, 이러한 흐뭇한 생각들이 자아내는 엉뚱한 희열에 들떠서 성급히도 소원성취를 하려들었다. 그리하여 맨처음으로 그가 잡아든 것은 증조부때의 무기를 소제하는 일이었는데, 그것은 동녹과 좀이 쏠고 몇백년 동안을 한구석에 처박아두어서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힘을 다하여 닦아내고 손질하여 보았으나, 그것들에 큰 흠집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낯덮개가 없는 투구일뿐 그저 보통 쇠모자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재주를 부려서 그 대용품을 만들어냈다. 다시 말하면 두꺼운 종이로 얼치기 투구를 만들어서 쇠모자에다가 딱 붙여 놓으니까, 제법 완전한 투구 모양이 되었다. 더구나 그는 투구가 단단한지, 그리고 칼을 받더라도 까딱없을 것인지 시험해보려고 몸소 칼을 뽑아서 두어번 갈겼더니, 그만 단 한 번에 일주일 동안 애써 해놓은 일이 허사가 되고 말았다. 그렇게도 허망하게 너털너털 찢어지는 것을 그냥 나쁘다고만 버려둘 수 없고, 오히려 이런 위험을 방지하기 위하여서 이번에는 수법을 바꾸어가지고 안쪽에다 철사를 가로질러 놓았다. 해놓고보니 그 튼튼함에는 본인도 만족할 만한 것이 되어서, 다시 시험해 볼 것도 없이 낯덮개 달린 투구치고는 썩 훌륭한 것이라고 믿었다.
다음 그는 자기의 말을 살펴 보았다. 헌데 그것 역시 레알(銀錢)을 쪼개어낸 꾸아르또(小錢)보다 더하게 굽이 터져 있고, tantum pellis et ossa fuit(가죽과 뼈뿐이더라)고 한 고넬라의 말보다 더 더러운 것이었음에도, 알레한드로의 부쎄팔로와 엘 씨드의 바비에까인들 이놈에게 당할소냐 하고 그는 생각하였다. 어떤 이름을 이놈에게 지어줄까 하고 궁리하는 동안에 나흘이나 되는 날이 흘렀다.
그 자신의 말마따나 도대체 일등 기수(騎手)가 타시는 천리마(千里馬)의 이름이 알려지지않은 채로 만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그는 편력기사가 타시는 말이 그전에는 어떠했으며, 지금은 어떠한 말이 되었는가를 똑똑히 알려주는 이름을 붙이려고 애썼던 것이다. 제 주인의 지체가 높아졌으니, 그 말도 이름을 갈아야 할 뿐더러, 그 주인의 새로운 품위나 이미 잡아든 새로운 수행에 알맞은 뚜렷하고 헌걸찬 이름을 지어야 마땅한 까닭이었다.
그래서 기억을 더듬고 상상력을 짜내서 허구많은 이름을 지었다간 지우고, 짤랐다간 붙이고, 또 없앴다가는 고쳐 짓고 하다가 마침내 로씨난떼라고 불렀다. 활량의 짐작에 이 이름이야말로 으뜸 가는 낭랑한, 그리고 그전과는 딴판으로 세상에서 제일가는 명마(名馬)를 그럴싸하게 표현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렇듯 꼭 마음에 드는 이름을 말에게 지어주고 나니, 이제는 자기 이름을 짓고 싶은 생각이 나서, 그 생각으로 또 여드레를 보내다가, 드디어 돈 끼호떼로 행세하기로 하였다. 이 이름 때문에──앞에도 말했거니와──이 실전(實傳)의 저자들이 께사다라야 옳다거니, 아니 끼하다라야 된다거니 하며 서로 주장하게 된 것이다. 어쨋든 그의 생각으론 저 용맹스러운 아마디스가 그저 아마디스로만 통하기에는 마음이 차지 않아서, 제 나라 제 고장의 이름을 따가지고 이를 한껏 빛내고자 가울라의 아마디스라 했으므로, 자기 자신도 어엿한 기사로서 제 이름에다가 향국(鄕國)의 이름을 얹어서 라 만챠의 돈 끼호떼라 불렀다.
속셈으로는 이리하는 것이 훨씬 더 제 가문과 향국을 돋보이게 하고, 나아가서는 그에서 아호(雅號)를 취한다는 것이 바로 그를 존경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무기는 닦아 놓았것다, 낯덮개 달린 쇠모자는 다 되었것다, 말 이름, 자기 이름 짓는 일도 끝나고 나니, 남은 것이라곤 다만 사랑을 바칠 여성을 찾는 일뿐이었다. 왜냐하면 편력의 기사치고 사랑하는 이가 없다는 것은 잎사귀와 열매가 없는 나무, 영혼이 없는 육체나 마찬가지인 까닭이다.
그는 스스로 말하였다. 내가 만일 죄의 벌 때문에, 혹은 운이 좋은 때문에 어디서 어떤 굴때장군을 만난다 치면──편력의 기사에게 그런 일은 흔히 있는 법이라──대뜸 그놈을 때려눕히든지 아니면 몸을 두쪽으로 갈라주든지, 또 아니면 꼼짝 못하게 항복을 받아야지. 그래서 그놈을 잡아다 바칠 어른이 계신다면야 얼마나 멋들어진 노릇이겠느냐? 그때 그놈이 대령하여 나의 우아하신 아가씨 앞에 두 무릎을 꿇고 목소리도 낮게 살려주십소사하는 어조로 아뢰되,
「아가씨여, 소인은 말린드라니아 섬의 소유자, 거인 까라꿀리암브로라는 놈이오이다. 두 번도 아닌 단 한 번의 접전에서 기려도 기려도 못다할 기사 돈 끼호떼님께 완전히 패하와, 그 어른의 분부로 이제 당신의 어전에 대령하여 있나이다. 소인 감히 존귀하신 당신의 처분만 바라올 따름이로소이다」
라고 한다면, 그 얼마나 신나는 일이겠느냐? 맘씨 고운 우리 기사가 이런 생각을 하였을 때, 얼마나 좋아하였던가. 그가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지어드릴 그 본인을 발견하였을 때 더욱 그러하였다.
그 본인이 누군고하니──전하는 바에 의하면──활량의 동네에서 멀지않은 데에 사는 보기에도 어여쁜 시골 아가씨로서, 그가 언젠가 사모한 일이 있은 그이였다. 그렇다해서 누가 생각하더라도 이쪽은 그이를 알거나 조금이라도 그런 눈치라도 뵌 적이 없었다. 이름은 알돈싸 론렌쏘였는데, 활량은 자기가 그리워하는 아가씨의 칭호를 그에게 드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였다. 이리하여 자기 이름과 과히 동떨어지지도 않고, 공주나 대갓집 따님과 근사한 이름들을 고르다가, 또보소 태생이었기 때문에 둘씨네아 델 또보소라 이름지었다. 그의 생각에는 앞서 자기와 자기의 소유물에 대하여 모두 그랬던 거와 같이, 이 이름이 음악적이고 멋지고 의미심장한 것이라 여겨젔다.
第二 갸륵한 돈 끼호떼가 처음으로 제 고장을 나서는 章
이런 채비가 되고나니 계획을 실천하는 데에 잠시도 때를 기다릴 수 없었다. 어서 가서 씻어주고 싶은 모욕, 바루어야 할 부정, 다스려야 할 무법, 뜯어고쳐야 할 폐습, 갚아야 할 은의, 이런 따위를 없애줄 자기가 나서지 않는 때문에, 온 세상이 기다리다가 지치나보다 하고 생각할 때, 그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자기의 뜻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또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어느 날 아침 동이 틀 무렵에──그것은 칠월의 한더위였다──갑옷을 차려 입고 로씨난떼에 올라타, 아무렇게나 생긴 투구를 쓰고 방패 끼고 창을 빗겨들고는 슬그머니 뒷문을 빠져서 들로 나왔는데, 아름다운 자기의 계획을 이렇게도 거뜬히 채우기 시작하였다싶어서, 몹시도 기쁘고 좋아 죽을 지경이었다. 허지만 들로 나갔을까 말까 했을 무렵 오싹 무서운 생각에 사로잡혀서 모처럼 시작한 계획을 내어던질 뻔하였으니, 그것은 그가 기사임명식(驥士任命式)을 거치지 않았을 뿐더러, 기사도의 예법에 의하면 이러한 기사로서는 어떠한 기사와도 무기를 겨누지 못하고, 겨누어도 안 되는 것이며, 설사 임명식을 받았다 하더라도 풋내기 기사이고 보면 제 힘으로 얻기까지 그 방패에 휘장(徽章)이 없어야 하고, 흰 갑옷을 입어야 한다는 기억이 떠옥랐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들이 그의 계획을 흔들리게 하였으나, 그의 광기는 어떠한 이유들보다 강하였기 때문에, 이런 경우 숱한 기사들이 이러이러 하였다는 것을 책에서 읽은 고대로, 자기가 맨처음에 만나게 될 어느 기사한테서 대갑식(帶甲式)을 받으려 결심하였다.
흰 갑옷에 대해서는 입고 있는 것을 틈나는 대로 닦고 닦아서 흰담비보다 더 하얗게 만들 작정이었다. 이러고나니 적이 마음이 가라앉아서 가던 길을 다시 가기는 하되, 말 가는 대로 내맡기기로 하였다. 그런 데라야 모험의 보람이 있는 것이라 믿는 까닭이었다. 끄떡끄떡 우리의 찬란한 모험가는 줄창 길을 가면서 혼잣말로 이렇게 중얼 거리는 것이었다.
「후대(後代)에 가서만 보아라. 내가 한 뚜렷한 사적이 실록(實錄)으로 나타날 제, 현인(賢人) 필자는 아침나절 나의 첫 출발을 이렇게 적을 것을 뉘 감히 의심하랴. 즉 〈붉으레한 아뽈로님이 가없이 넓은 대지(大地)의 얼굴에 금빛 아름다운 머리채를 드리우실 즈음, 또한 형형색색 어린 새들은 예쁘장한 목청을 뽑아서 저 새암바리 남편의 포근한 자리를 버리시고, 몸소 라 만챠의 지평선 창문들과 노대머리, 뭇사람에게 보이려 오시는 장미빛 새벽 여신에게 절묘한 노래의 인사를 드릴 즈음, 헌다한 기사 돈 끼호떼 델 라 만챠는 포근한 그 깃이불을 걷어차고 명마(名馬) 로씨난떼에 성큼 올라, 옛부터 알려진 몬띠엘의 평야를 바야흐로 가시니라〉라고」
과연 이 곳을 가던 활량은 또 덧붙여서 말하였다. 「미래의 기념을 위하여 청동에 새기고, 대리석에 새기고, 판에 그려서 마땅한 내 혁혁한 공훈이 빛을 낼 그 시대가 복되구나. 그 세기가 복되구나! 오, 그대 현철하신 환술사(幻術師)여, 그대가 누구이든 진기한 이 역사를 엮으려거든 행여 내 선량한 로씨난떼를 잊지 말라. 어딜 가나, 무엇을 하나 항상 그는 나의 길벗이로세」
그러고는 연거푸 사랑에 고민이나 하듯 말하였다. 「오오, 공주마마 둘씨네아여, 사로잡힌 이 마음의 임이시여, 당신의 고우신 앞에 나타나지 말라시는 분부가 지엄하시니, 이 몸을 저허하고 꺼리심이 너무나 한 고통을 저에게 주나이다. 바라옵건대 임이시여, 당신을 사랑키에 인욕(忍辱)의 몸이 된 쇤네의 이 마음을 통촉하시옵소서」
이런 저런 되지않는 말을 엮어대면서 그는 길을 가는데, 그게 모두 책에서 배운 소리로, 될 수 있는 한 그 말들을 입내내는 것이었다. 그러자니 걸음은 더디고 해만 불끈 솟아 쨍쨍 쬐는 바람에 머리가 몇 개라도 녹여 버리기에 넉넉할 지경이었다.
그날은 거의 하루를 이야기할 만한 사건이 없이 걷기만 했다. 누구든지 만나는 대로 당장 팔뚝심을 겨누어 보려던 것이 그만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사전가(史傳家)들이 말하기는 맨처음 그가 당한 모험이 라삐쎄 관문에서였다고도 하고, 더러는 풍차(風車)였다고도 하지만, 가능한 한 내가 이 일을 조사하고 라만챠의 연대기(年代記)에 적혀 있는 바에 의하면, 활량은 그날 진종일 길을 갔었고, 해질녘에는 그도 말도 지쳐버렸고, 배가 고파서 죽을 뻔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방을 휘휘 둘러보면서 행여나 몸을 쉬고 기갈을 풀을 어느 숨막이나 목동들의 움막이 있지 않나하고 살펴보다가, 여태 가던 길에서 멀지않은 곳에 주막집 한 채를 발견하였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도 처마 밑이 아닌 구원의 왕궁에로 인도하는 별과 같았으니, 그리로 그는 걸음을 재촉하여 해질 무렵에 닿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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