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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인으로부터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라는 중단편집을 추천받아 뒤늦게 읽게 되었다.


그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봤던 건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와 <감정의 물성>이었다.


전자는 특히 기술의 발달로 비정상과 정상의 경계가 흐려지고 갈등이 심화되는 현대 사회를 우리가 어떤 자세로 대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 크게 공감할 수 있었다. 또한 우리가 지향하는 세계가 꼭 유토피아가 아니더라도 개개인의 삶을 돌아보며 가치를 느낄 수 있다는 메세지가 참 인상깊었던 것 같다.


반면에 <관내분실>과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는 개인적으로 꽤 실망스러웠다...


특히 <관내분실>은 주인공의 감정에 몰입이 되지 않았다. 주인공은 엄마에게 어릴때부터 정서적인 학대를 받으며 자랐고 결국 어린 나이에 의절했으며 부고소식에도 감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았을 뿐더러 3년이라는 시간동안 찾아가지도 않았다.


그런 주인공이 임신을 하고 엄마를 찾아가게 되는 것부터가 이 소설의 메시지의 핵심이라고 느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아이라는 족쇄 때문에 엄마의 삶은 사라졌고 '진짜' 삶을 잃어버렸으며 죽기 전에도 세계와 분리된 삶을 이어갔다"라는 작가의 노골적인 메시지가 제시된다. 어느새 주인공은 십수년의 감정의 골을 넘어서 '엄마를 찾아야 한다'라는 작가에 의한 아주 강력하고 인위적인 목표가 각인되고 "엄마를 이해해요"라는 대사와 함께 이야기가 끝이 난다.


김초엽 작가는 여성의 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문제를 센스있게 지적하고 싶은 것처럼 보였다. 경력단절문제에 자체에 대해서는 나도 동의하는 바가 있으나 이 소설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 소설은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진행되면서도 주인공인 '지민'의 시선에 초점을 맞추어 전개된다.

즉, 독자는 지민의 시선으로 사건을 마주하고 지민의 감정에 공감하게 되는데, 나는 자꾸 작가의 관점이 내 감상에 개입하여 방해하는 느낌이었다.


주인공이 아빠를 만난 후

"스무 살의 엄마, 세계 한가운데에 있었을 엄마, 이야기의 화자이자 주인공이었을 엄마, ~~" 등의 표현이 우수수 쏟아지는데 나는 도저히 공감할 수가 없었다. 엄마와의 정서적 교류로부터 배제된 채 흐른 시간이 무색할 만큼 주인공은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엄마의 삶에 대한 연민과 공감으로 점철되었으며 심리적으로 불안정했던 주인공이 어떻게 타인(엄마)에 대한 완벽한 공감을 이끌어내었던 것도 어색했다. 마치 노골적인 인형극을 보는 기분이었다...


또한, 이 소설 속에 전제된 물음인 '출산은 엄마라는 여성을 지우는 일인가?'라는 물음에 나는 그렇다고 대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해서 결혼하고 임신하고 아이를 가지고 사랑하고 기르는 것은 숭고하고 위대한 행위이며, 모든 선택은 그 주체가 하는 것이다. 그 누구도 개인의 의지에 강요할 수 없으며 '엄마'라는 책임을 등에 업고 삶을 이어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독서에 대한 식견이 높지 않다. 그냥 재미로만 읽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