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애로 삼고 있는 시인.

독갤에서 드문드문 언급은 되는 것 같은데,

최근에 언급이 없어서 기습숭배겸 글 싸지릅니다.

이 밑부터는 편한대로 그냥 씁니다.


애초에 '시란 무엇인가'를 떠올려보면

자신이 품고있는 관념 또는 감성을 가장 적확하고도 낭비가 없는 언어로

표현함으로써 독자에게 그 이미지, 또는 인상을 전달하는 예술이라 생각함.

(시를 정의하기보다는 내가 생각하는 '시'라는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서술임.)


이러한 개인적인 견해에 가장 멋들어지게 들어맞는게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라는 시인이고,

<끝과 시작>은 모든 책 중에 탑3로 꼽고있음. (나머지 2권은 의표세, 에피쿠로스의 쾌락임)


그럼 본격적으로 쉼보르스카 영업을 해볼까함.


이 시인은 1923년생임.

청년기에 2차 세계대전을 직접적으로 목격하고, 수 많은 지인들이 전쟁의 참상에 사라짐.

그로 인해서 철학적인 기반은 허무주의/실존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음.


그녀의 시를 설명하는 언어들은

간결하면서도 절제된 표현. 정곡을 찌르는 명징한 언어.

풍부한 상징과 은유. 적절한 우화와 패러독스.

그리고 '시단(詩壇)의 모짜르트'라고 불림.

(문학과 지성사 <끝과 시작>의 작가 소개란 펌)



먼저 가장 좋아하는 시 2편을 소개함



'두번은 없다'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란 없는 법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번도 없다

두번의 똑같은 밤은 없고,

두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어제, 누군가 내 곁에서

네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렸을 때,

내게 마치 열린 창문으로

한 송이 장미꽃이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함께 있을 때,

난 벽을 향해 얼굴을 돌려버렸다

장미? 장미가 어떤 모양이었지?

꽃이었던가, 돌이었던가?


힘겨운 나날들,

무엇 때문에 너는 쓸데없는 불안으로 두려워하는가

너는 존재한다 - 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 - 그러므로 아름답다


미소 짓고, 어깨동무하며

우리 함께 일치점을 찾아보자

비록 우리가 두 개의 투명한 물방울처럼

서로 다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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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어려운 점, 그럼에도 흥미진진한 부분이 전반부에 있다면,

그 인생에서 굴곡을 만들면서도 삶의 희망과 지탱할 부분을 만들어주는

내용이 후반부에 담겨있다고 생각함.

설레이는 사랑부터 어느 순간을 지나 여러 갈등을 겪으면서 온전해지는 사랑같이.

연인간이든, 친구간이든, 가족간이든, 결국에는 저런 태도로 임하면서

사랑 그 자체가 인생의 가장 큰 의미이자 종착지가 아닐까 싶음.

그래서 이 시가 유독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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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파는 시장'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흔해빠진 기적: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발생하는

무수한 보편적인기적들.


평범한 기적:

고요한 밤, 보이지 않는 개들이

멍멍 짖어대는 소리.


많은 기적들 중 하나:

공기처럼 가볍고 조그만 구름 하나가

저 무겁고 거대한 달을 가릴 수 있다는 사실.


하나의 기적 속에 포함된 몇 가지 기적들:

수면 위에 아롱아롱 비친 오리나무가

왼쪽, 오른쪽을 반대로 움직이는 것.

화관에서 뿌리까지 거꾸로 자라는 것.

아무리 물이 얕아도

절대로 바닥까지 닿을 수는 없다는 것.


종종 일어나는 기적:

맹렬한 기세로 몰아치는 폭풍 한가운데서,

비교적 부드럽게, 적당히 부는 한줄기 산들바람.


첫 손가락에 꼽히는 탁월한 기적:

'소'는 언제까지나 '소'일 수 밖에 없다는 깨달음.


두번째, 그러나 앞의 것과 견주어 결코 뒤지지 않는 기적:

다름 아닌 바로 이 복숭아 씨앗에서

다름 아닌 바로 이 과수원이 만들어졌다는 사실.


망토와 비단 모자를 걸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기적:

날개를 파닥이는 새하얀 비둘기 떼.


기적이라고, 그렇게 부를 수 밖에 없는 기적:

오늘 태양이 오전 3시 하고도 14분에 떴고,

오후 8시 1분에 저물 거라는 사실.


이상하게 여겨야 마땅한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기적:

손에서 뻗어 나온 손가락은 왜 여섯 개보다 적은지,

그렇다면 어째서 네 개보다 많은지를 의아하게 여기지 않는 것.


그저 주위를 빙 둘러보는 기적:

어디에나 어김없이 존재하는 이 세상.


모든 것에는 여분이 있듯이 특별히 준비된 추가분의 기적:

미처 생각지 못했던 어떤 일이

실은 얼마든지 예측 가능한 것이었다는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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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습관적으로 받아들이던 부분들이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감상을 가지냐에 있어서

충분히 새롭게 볼 여지가 많게끔 느껴지는 시였음.

사실 탄생부터 죽음까지 우리의 삶이라는게 별 것 없어보여도,

그 주관적 경험을 하고 있는 우리가 삶 자체를 특별하게 느낄 수 있는 순간은 많다고 생각함.

그러한 삶의 순간순간들을 기적으로 볼 수도 있다는 이 시각이 너무도 좋았다.

우리의 사소한 일상이 누군가에겐 기적이다, 이런 식의 흔한 감성팔이라기보다는

우리가 다르게 봄으로써 일상에 대한 인상을 다르게 가져간다는 인식을 충분히 할 수 있지 않나,

그럼으로써 삶이 더 풍요롭고 충만해질 수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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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대표작 한편 더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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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가능성'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영화를 더 좋아한다.고양이를 더 좋아한다.

바르타 강가의 떡갈나무를 더 좋아한다.

도스토옙스키보다 디킨스를 더 좋아한다.

인간을 좋아하는 자신보다 인간다움 그 자체를 사랑하는 나 자신을 더 좋아한다.

실이 꿰어진 바늘을 갖는 것을 더 좋아한다.

초록색을 더 좋아한다.

모든 잘못은 이성이나 논리에 있다고단언하지 않는 편을 더 좋아한다.

예외적인 것들을 더 좋아한다.

집을 일찍 나서는 것을 더 좋아한다.

의사들과 병이 아닌 다른 일에 관해서 이야기 나누는 것을 더 좋아한다.

줄무늬의 오래된 도안을 더 좋아한다.

시를 안 쓰고 웃음거리가 되는 것보다시를 써서 웃음거리가 되는 되는 편을 더 좋아한다.

명확하지 않은 기념일에 집착하는 것보다 하루하루를 기념일처럼 소중히 챙기는 것을 더 좋아한다.

나에게 아무것도 섣불리 약속하지 않는도덕군자들을 더 좋아한다.

지나치게 쉽게 믿는 것보다 영리한 선량함을 더 좋아한다.


민중들의 영토를 더 좋아한다.정복하는 나라보다 정복당한 나라를 더 좋아한다.

만일에 대비하여 뭔가를 비축해놓는 것을 더 좋아한다.

정리된 지옥보다 혼돈의 지옥을 더 좋아한다.

신문의 제 1면보다 그림 형제의 동화를 더 좋아한다.

잎이 없는 꽃보다 꽃이 없는 잎을 더 좋아한다.

품종이 우수한 개보다 길들이지 않은 똥개를 더 좋아한다.

내 눈이 짙은 색이므로 밝은 색 눈동자를 더 좋아한다. 

책상 서랍들을 더 좋아한다. 

여기에 열거하지 않은 많은 것들을 마찬가지로 여기에 열거하지 않은 다른 많은 것들보다 더 좋아한다. 

숫자의 대열에 합류하지 않은 자유로운 제로(0)를 더 좋아한다. 

기나긴 별들의 시간보다 하루살이 풀벌레의 시간을 더 좋아한다. 

불운을 떨치기 위해 나무를 두드리는 것을 더 좋아한다. 

얼마나 남았는지, 언제인지 물어보지 않는 것을 더 좋아한다.

존재, 그 자체가 당위성을 지니고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에 주목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우리 쉼보르스카 누나(?) 많이들 읽어봤으면 좋겠다.


<끝과 시작> 은 대부분의 시가 수록되었고,

<충분하다> 는 그 외의 시가 수록되어있다.

이 두 권에 수록되지 않는 시들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 두 권이면 그녀의 시를 음미하는데 충분하지 않을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