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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나는 사람의 의식이 컴퓨터에 가까운 형태로 해석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아마 이런 종류의 도식은 다니얼 데닛의 이론에 영향 받은 게 컸을 터인데, <의식의 수수께끼를 풀다>를 시작해서 여러 책에서 사고가 어떻게 튜링 기계-컴퓨터적으로 진행되는지 설명하는 걸 읽으면서 상당히 그럴싸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지금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다르지 않으며, <뇌의식의 탄생>에서도 의식 차원에서 이뤄지는 고등 사고는 확실히 컴퓨터의 그것과 유사하지 않을까-혹은, 그렇게 되도록 컴퓨터를 설계하지 않았을까-하고 어느 정도 동의한다. 다만 문제는 늘 그 아래에 있는, 어떤 의미로는 좀 더 정신적이고 어떤 의미로는 좀 더 물질적이기도 한 측면에서의 이야기다. (논리적 차원은 사실 이 두 가지와는 별개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정신적으로, 우리는 뭔가를 느낀다. 생각보다는 생각한다는 느낌이 더 중요하다. 생각의 결과 자체는 꼭 현재의 발전한 인공지능이 아니더라도 논리적 체계 기반의 수많은 것들이 창출해낼 수 있다. 물질적으로, 이것은 어떤 물리적인 상호작용에 의해 생겨난다. 아무리 정신이 물질에 수반된다고 단언하는 게 독단적이래도, 정신이 물질적 상호작용과 완전히 무관하게 존재한다는 주장은 현대 학문에서는 전자보다도 더 과격한 주장이지 않을까 싶다. 컴퓨터의 연산은 이 두 가지가 이미 어떻게든 만족된다는 가정 하에서 돌아가는 것으로, 사람 역시 이 둘을 전제로 둔 다음에는 컴퓨터처럼 사고한다고 할 수 있을 테다. (물론 정확히 그렇진 않은데, <뇌의식의>에서는 단순한 수리 연산에서 사람이 기존의 결과를 저장해 연산 과정에서 사용할 수 없다는 실험으로 이를 분명히 한다)
그런데 이 두 가지가 사실 여전히 너무나 애매하고 불분명하다는 것이 인지과학의 문제점이다. 어떻게 우리가 무엇을 느낀다는 인식을 갖고, 뇌나 신경이 어떤 방식으로 이런 인지를 이끌어내는지에 대해 열띤 연구가 진행 중이며 나아간 것도 많지만, 아직은 많이 얕다. 인지과학과 유사하지만 좀 덜 실험 중심적인 심리철학에서 이 문제를 다루는 것 역시 아직 그리 신통치는 않은 듯하다. (물론, 인지과학에서 그 다루는 접근법이나 실험을 설계함에 있어 이를 참고하며 여러 가지로 주고받으며, 또한 심리철학 역시 어떤 주장이 실험으로서 어떻게 반박되거나 그 한계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며 연구를 하는듯하다) 특히, 이 느낌을 받는 주체인 의식이 대체 어떤 식으로 형성되며 어떤 메커니즘을 갖고 있는지는 여러 가지로 미지수다.
<뇌의식의>는 원서 기준으로 2014년 현재까지 어떤 발견들이 있었으며, 이를 정리하는 하나의 정립된 모델을 제시한다. 먼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우리가 뭔가를 인지한다는 의식의 아래, 말하자면 무의식에서 얼마나 많은 정보들이 수집 뿐 아니라 사용되고 있으며, 사용 시 요구되는 판단의 난이도나 제한시간에 따라 그 정보가 어떻게 처리되는지를 규명하는 실험들을 통해 의식 아래의 뭔가 생각 이상으로 체계 잡힌 무의식을 선보인다. 다음으로, 그러나 이런 무의식이 기존의 무의식에 대한 고정관념과는 또 다르게 얼마나 무능한지를 보이며 무의식의 수많은 정보들을 하나로 종합해 '사고'하는 의식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의식은 무의식에서 제시되는 수많은 선택지 중 단 하나만을 선택해 표상하고, 나머지 선택지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무시한다. (아마 AI의 퍼셉트론이 이런 것을 근사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겠지만, 이는 미시적인 신경 세포에서의 이야기보다는 보다 더 거시적인 차원에서의 이야기에 가깝다)
그렇다면 이 의식이 어떻게 나오느냐, 에 대한 이론이 바로 "광역 신경세포 작업 공간 이론"으로, 단순하게 요약하자면 신경망 각각의 부분에서 무의식적 작용으로 나오는 정보들이 서로 다른 부분으로 이동하며 이를 서로 사용하고, 보완하며 영향을 주고 받는 과정에서 일종의 자기인식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는 <괴델, 에셔, 바1흐>에서 주장하는 재귀적인 의식과는 조금 다른데, 자기 자신을 메타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가능성 자체가 자신 바깥의 무언가를 포함하는 고리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물론, "고리"라고 표현했듯이 <괴델>의 이야기가 완전히 엇나간 것은 아니다) 실제로 동물 및 뇌에 손상을 입은 사람들에 대한 실험에서 이러한 정보의 상호교환은 자의식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개인주의의 역설과도 유사한 점이 있는데, 뚜렷한 주체성은 기실 그런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군중에 대한 민감한 반응에서밖에 나올 수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러한 의식의 증거는 어쨌든 뇌파와 MRI 측정을 통해서 주로 관측되며, 무엇을 실제로 느끼거나 알 수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과 이를 병행하며 의식이 느낀 것과 무의식이 아는 것, 그리고 그것이 물질적으로 표출되는 것 사이에 뚜렷한 연관 관계가 있다는 것을 조금씩 밝힐 수 있다. 특히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측정한 데이터가 그저 임의적인 관계를 보이고 있는 게 아니라 딱 이런 상황에서만 그렇다는 것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인데, 나야 인지과학자가 아니라 그 실험이 얼마나 엄밀한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책에서 보여주는 비교군과 여러 전제들을 토대로 보면 상당히 의미 있어 보인다. (P3 뇌파나 다른 뇌파 사이의 수치 분석을 솔직히 줄글로 어떻게 얘기할 수 있을까?)
이 밖의 여러 구체적인 사례 및 실험이 이 기묘한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에서의 상호작용을 보여주고 있는데, 어떤 것들은 상당히 신기했지만 (서브리미널 효과가 단순히 4라는 숫자를 미리 보여줘 대비시키는 것 뿐 아니라 2+2 같은 아주 단순한 수식에서도 기능해 무의식이 기초적인 연산을 할 수 있다는 것) 어떤 것들은 좀 변죽을 울리는 것 같기도 했다. 아마 좀 더 종합적이고 엄밀한 학문을 위한 기초겠거니 싶다. 또한, <뇌의식의>에서 주장하는 이론이 앞으로도 유의미하게 남는다면 이는 현재의 AI 연구에서도 뭔가 의미심장한 전제가 아닐까.
P. S. 단요의 SF 소설 <개의 설계사>는 인공지능에 있어서 이런 모듈 간의 상호작용을 활용하는데 서사 자체와는 달리 그 방식이 뭐랄까, 확실히 테드 창도 그렇고 요즘 SF는 컴퓨터 전공자들이 잘하지 않나 싶다.
P. S. S. 바2흐는 또 왜 금지어냐
잘 읽었습니다
바2흐 vs 셰익스피어 갈드컵 매일 여는 분 있어서 금지어 해둠
서브리미널 어쩌구는 정확히는 점화효과(Priming, 한국의 모 점화효과 연구자는 예비효과로 부르는 걸 선호)에 대한 연구인 것 같은데, 그쪽은 고릿적 행동주의 시절부터 서브리미널 식역하 자극 말고도 온갖 해괴망측한 연구가 많았다보니 대니얼 카너먼이 작심 비판하기도 함.
복제성 논란 추가 정보: 복제 위기 행동 프라이밍 결과의 재현 가능성과 해석은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8] 2012년 연구는 연령 프라이밍을 포함한 결과를 재현하지 못했으며+ 이를 재현하지 못했다는 추가 보고와 사회적 거리두기와 같은 다른 결과도 보고되었습니다. [53][54] 프라이밍은 종종 제품의 감각 브랜딩의 성공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간주되며 교차 모드 대응 및 감각 전이와 같은 아이디어와 연결됩니다. 알려진 효과는 예를 들어 음료의 로고가 노란색으로 더 포화될 때 소비자가 갑자기 레모네이드를 더 달콤하게 인식하는 것입니다.[55] 이 결과는 아직 독립적인 연구에 의해 재현되지 않았습니다.
의미론적, 연상적, 형태 프라이밍은 잘 확립되어 있지만,[56] 일부 장기적인 프라이밍 효과는 추가 연구에서 재현되지 않아 그 효과나 존재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57] 노벨상 수상자이자 심리학자인 Daniel Kahneman은 프라이밍이 "심리학 연구의 무결성에 대한 의심의 포스터 아이"가 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커뮤니티에 보내는 공개 서한에서 프라이밍 연구원에게 발견의 견고성을 확인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58] 2022년에 Kahneman은 행동 프라이밍 연구를 "사실상 죽었다"고 묘사했습니다. [59] 다른 비평가들은 프라이밍 연구가 주요 출판 편향,[9] 실험자 효과+로 고통받고 있으며 해당 분야에 대한 비판이 건설적으로 다루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60]
https://en.wikipedia.org/wiki/Priming_(psycholo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