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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슈ㅁㅣ트는 <대지의 노모스>에서 유럽 문명 속 법의 발달 과정이 땅, 바다, 공중을 경계 짓는 데에 있었다고 논한 바 있다. 무언가를 취득한다는 것은 결국 취득한 것과 취득하지 않는 것을 구분하는 경계선의 생성과도 같으며 취득에 대한 법은 이러한 경계를, 법의 적용 범위를 전제한다. 그렇게 취득한 영역이 서로 다를 수 있었던 땅과는 달리 바다에서는 이를 구분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으며 본격적으로 바다의 노모스가 가능해진 것은 인위적으로 바다를 갈라놓을 수 있는, 바다를 장악하는 국가의 수호자 덕분이었다. 해상 제국이 바다에 굴곡을 만든 것은 육지의 해상화가 아닌 해상의 육지화에 가까웠다. 바다에 적용된 것은 대지의 노모스다. 이는 자연스럽게 공중의 노모스로 연장되었다. 그러나 그 다음은?
속도. 정주해 있는 것이 어느 목적지까지 도달할 수 있는 속도. 모든 것이 빨라진 시대에는 이야기가 전혀 달라진다. 모든 육상의, 해상의 , 공중의 지역이 순식간에 '공격' 가능한 영역이 된다. 너무나 빠른 속도로 진격하는 군대는 육지를 평탄한 해상으로 만들어놓으며, "싸우지 않고 굴복시키는 것이 최상의 것"이라는 손자의 말마따나 그 위협이 적용 가능한 모든 지역을 자신의 노모스의 적용 범위로 만든다. 공중전은 영토에서 부상해 영공을 다투는 싸움으로 한정적인 속도에 매여 있었지만, 현대는 다르다. 핵의 존재는 그 위치가 어디이든 지구에 있다면 결코 피할 수 없는 타격을 반드시 입힐 수 있다는 전제로 인해 경과 시간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이는 사실상 광속-사실상 최속의 속도-의 속도를 가진 것이나 다름 없다. 속도의 노모스는 세상은 단일한 점으로 만든다.
<속도와>에서 인용하는 쿠바 미사일 사태는 그 단일한 점을 드러내는 극단적인 예시이자, 사람이 설 곳 없이 뾰족한 점에서는 두 국가의 대표조차 기계적인 체계의 속도에서 그저 예/아니오라는 단순한 대답만을 내릴 수 있다는 증거이다. 만일 결정이 키에르케고르 식의 결정이라면 이 결정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만일 결정이 일반적인 의미의, 기나긴 고민과 여러 사람과의 논의,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고려해 내리는 판단이라면 그것은 더 이상 이 시대에 유효하지 않다. 세상의 속도는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점차 더 빨라지는 속도의 박자는 더욱 더 판단이 설 곳을 좁혀나간다.
시간 자원을 사용한다는 생각은 그런 점에서 위험천만한 근본을 품고 있다. 공간과는 달리, 엄밀한 의미에서 시간은 그 단위에 따라 얼마든지 세밀하게 쪼개질 수 있다. 하루는 시간이 되고, 시간은 분이 되고, 분은 초가 되며 우리가 달라져야 하는 시간의 기준이 점차 더 날카로워진다. 주의력 결핍증에 걸린 듯한 현대인의 표상은 점점 더 빨라지는 체계의 속도 속에서 박자를 맞추고자 이 일에 집중했다가 저 일에 집중했다가 다시 돌아오며 그 외의 모든 것을 망각해아만 하는 메트로놈에 가깝다. 그 기괴한 실존성은 속도 뿐 아니라 가속도와 함께 하는데, 이 숨가쁘게 변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반드시' 잡아야 할 특별한 것은 같은 속도로 빠르게 다가와 순식간에 사라지기 때문이다. 모두는 얼핏 보기에는 비슷해 보이는 것 속에서 포착한 특별한 것을 붙잡기 위해 언제든 빠르게 가속해야만 한다.
전장이 일상으로 확대되었다는 이야기는 이 점에서 타당한데, 우리의 삶은 그 한 순간을 위해 무의미하게 고갈되는 참호전과 같은 지루한 기다림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러나 그 특별한 것은 대체 뭘까?) 또한 그 한 순간에 순식간에 고갈되기도 한다. 기계에 빨려 들어가 죽는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가 있듯, 금융 기계에 빨려 들어가 죽는 사람의 이야기도 있다. 자동적인 매도 매크로가 일시적으로 오류를 일으키거나 예상 못한 동작을 하며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피해를 입히는 순간, 그는 얼핏 보이는 것과는 달리 여전히 초속으로 돌아가는 위험한 기계 옆에서 일하는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심판의 순간, 그를 도와줄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P. S. 사실 <속도와 정치>의 속도라는 표현은 남용되는 감이 있다. 무언가가 지금 이 순간 갖는 속도와, 언제라도 그 속도에 도달할 수 있는 잠재력, 곧 가속도는 서로 다르다. 비릴리오는 두 개념을 굳이 구분하지 않고 섞어 쓰는데, 빠른 가속도에서는 빠른 속도가 자연스럽게 나오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ㅊㅊ
언제나온책이야요?
77년이라 사실 꽤나 오래된 책인데도 어째 현대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서 신기한 부분
들뢰즈가 비릴리오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이유가 있었네
주제가 뭔가요? - dc App
감상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