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교수가 20대의 어린 여대생들 그루밍 해서 성욕 채운다는 배경 그리고 그런 일종의 착취속에서도 한 학생으로부터는 거리두기를 못했다는게 기본 골격인데, 내용 전개를 보면 60년대 성혁명과 당시에 날뛰던 학생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역사의 복수(?)를 맞는 그들의 이야기가 덧붙여져 있다. 아버지(스승)에게 길을 묻는 아들까지도.
이 소설 리뷰들 찾아보니 노년이나 욕망, 성에 초점을 맞추던데 내가 보기엔 20세기 미국 반문화에 대한 부고장 같다. 마지막에 밀레니엄 축하하는 쿠바의 나이트 클럽씬에서 콘수엘라가 충격 받는거, 케페시가 결국에 자기한테 거리두기에 충실하라고 한 조지가 생의 마지막에 보여주는 엘랑비탈(?)에 감화되어 결국 콘수엘라의 곁을 지키기로 하는 결말을 보고 있으면 좀 확신이 든다. 나이들어 세월의 역풍을 두드려맞고 케페시에게 돌아와서 묻는 이전의 제자들도 그렇고.
찬란했던 반문화가 빛바랜 그늘을 드러내고 죽어갈때 여기서 말하는 죽어가는 짐승(들)이란 20세기말에 자신들의 패배를 마주한채로 "그래, 불가피하게도, 불쾌한 결말에 이르렀다는 표시들이 늘어나는데도, 그럼에도 그 밖에 서 있는거야. 그런 객관성이란 지독하게 잔인한 거지"(p. 50)라고 말하는 한때의 좌파를 지칭하는게 아닌가 싶다. 불쾌한 결말에 이르렀다는 표시들이야 89년의 베를린 장벽 이후로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에 이르기까지 지겹도록 마주했을테고.
20세기의 가을이라는 테마를 레온 드 빈터는 허기의 형상으로, 로스는 성의 형상으로 표현한 것 같다 (둘다 몸에서 출발하는건 좀 더 길게 생각해볼 거리 같기도 하네).
끝으로, 결말은 좀 의미심장하다. 월리스가 쓴 체험기 제목을 빌려오자면 거의 떠나온 상태에서 케페시가 떠나거든. 월리스의 글에서도 그랬듯이 그 떠남이 어디로 가는건지는 명확하지 않은채로.
쥐뿔도 모르는 나같은 놈도 로스의 소설을 읽으면 미국 사회의 역사가 그려지는데 양키들은 오죽할까 싶다. 걔들한텐 임팩트가 더 강하겠지.
이상. 내가 읽은 필립 로스의 죽어가는 짐승이다.
이 소설 리뷰들 찾아보니 노년이나 욕망, 성에 초점을 맞추던데 내가 보기엔 20세기 미국 반문화에 대한 부고장 같다. 마지막에 밀레니엄 축하하는 쿠바의 나이트 클럽씬에서 콘수엘라가 충격 받는거, 케페시가 결국에 자기한테 거리두기에 충실하라고 한 조지가 생의 마지막에 보여주는 엘랑비탈(?)에 감화되어 결국 콘수엘라의 곁을 지키기로 하는 결말을 보고 있으면 좀 확신이 든다. 나이들어 세월의 역풍을 두드려맞고 케페시에게 돌아와서 묻는 이전의 제자들도 그렇고.
찬란했던 반문화가 빛바랜 그늘을 드러내고 죽어갈때 여기서 말하는 죽어가는 짐승(들)이란 20세기말에 자신들의 패배를 마주한채로 "그래, 불가피하게도, 불쾌한 결말에 이르렀다는 표시들이 늘어나는데도, 그럼에도 그 밖에 서 있는거야. 그런 객관성이란 지독하게 잔인한 거지"(p. 50)라고 말하는 한때의 좌파를 지칭하는게 아닌가 싶다. 불쾌한 결말에 이르렀다는 표시들이야 89년의 베를린 장벽 이후로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에 이르기까지 지겹도록 마주했을테고.
20세기의 가을이라는 테마를 레온 드 빈터는 허기의 형상으로, 로스는 성의 형상으로 표현한 것 같다 (둘다 몸에서 출발하는건 좀 더 길게 생각해볼 거리 같기도 하네).
끝으로, 결말은 좀 의미심장하다. 월리스가 쓴 체험기 제목을 빌려오자면 거의 떠나온 상태에서 케페시가 떠나거든. 월리스의 글에서도 그랬듯이 그 떠남이 어디로 가는건지는 명확하지 않은채로.
쥐뿔도 모르는 나같은 놈도 로스의 소설을 읽으면 미국 사회의 역사가 그려지는데 양키들은 오죽할까 싶다. 걔들한텐 임팩트가 더 강하겠지.
이상. 내가 읽은 필립 로스의 죽어가는 짐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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