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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땡볕 아래에서 어릴적의 저자는 가문의 족보를 외운다. 그 계보, 피의 연결고리는 소말리아에서 살아가는데 필수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이 땅에 이슬람이 전래되기 전, 아주 오래전부터 씨족과 부족 사회를 이루어 살았기 때문이다.


저자의 여동생인 하웨야는 아주 영민해서 금새 족보를 외우고 자리를 떠나지만 저자, 아얀 히르시 마간은 그렇지 못하다. 다행인점은 그녀가 그녀의 오빠보다는 똑똑하다는 사실이다. 그녀의 오빠는 족보를 외우는데 시간이 들어 항상 마지막까지 남고는 했다.


아얀 히르시 마간이 어릴때의 소말리아는 공산국가였다. 독재자 시아드 바레는 소말리아에서 부족주의, 남녀차별, 광신, 가난을 몰아내겠다고 선언했다. 국가의 거의 모든 부분은 국유화 되었고 생필품과 식량은 배급을 통해 나눠주었다. 초기에는 그러한 개혁이 잘 작동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한계는 명확했다.


시아드 바레는 부족주의를 없애겠다고 엄포를 놓았으면서 자신의 측근들은 모두 같은 씨족과 부족내에서 뽑았고, 자신의 부족을 우대했다. 자연히 반대 세력이 결집했다. 그리고 아얀 히르시 마간의 아버지는 그 반대 세력의 중진이었다.


결국 나라는 쪼개지기 직전까지 몰린다. 저자는 수많은 나라를 거친다. 케냐, 사우디아라비아, 에티오피아… 케냐와 에티오피아에서 저자의 어머니는 기독교인들을 깔보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같은 수니파 무슬림임에도 불구하고 사우디인들에게 인종차별을 당했다.


그러나 케냐의 학교에서 아주 보수적인, 수업을 하면서도 니캅을 고수하는 여교사에 감화된 저자는 여교사와 마찬가지로 니캅을 쓰고 차도르를 입는다. 보이는 것은 눈밖에 없는 모습을 하고도 저자는 아주 강력한 자부심과 신의 자비심을 느낀다. 이미 보수적인 무슬리마였던 저자의 어머니는 그런 모습에 감동한다.


하지만 저자는 계속해서 의문을 느낀다. 저 사악한 서방 불신자들의 도시에는 고층 빌딩이, 전통 건축이, 병원과 학교가 있는데 어째서 무슬림들의 땅인 그녀의 고향에서는 그런것이 없는걸까? 어째서 사람들은 같은 예언자와 신을 믿으면서도 계속해서 싸울까? 15소년 표류기나 하다못해 스티븐 호킹의 과학 서적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남녀평등 같은 개념들이 하디스(무하마드의 언행록)에는 없을까?


그런 의문은 그녀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사촌과의 강요된 결혼에서 도망쳐 독일과 네덜란드를 전전해서도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는동안 많은 사건이 일어났다. 9.11 테러가 일어났고 네덜란드의 일부 무슬림 공동체는 뉴스를 보며 환호했다. 동성애자 교사들이 괴롭힘을 당하는 영상들이 인터넷에 퍼졌고 소말리아와 이라크 공동체들 사이에 여성 할례가 만연해있다는 게 드러났다. 이슬람을 비판적으로 다룬 영화를 찍은 아얀 히르시의 친구, 테오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게 살해당한다.


이후 난민 신청을 할때의 거짓 증언 등을 이유로 그녀는 네덜란드 국적을 박탈당했으며 의원직도 상실했다. 그녀는 미국에 가서 니얼 퍼거슨과 결혼했으며 이슬람에 대해 비판적인 연구와 강연을 이어나갔다.


비교적 짧게 간추렸지만 그녀의 삶이란 그야말로 파란만장한것이었다. 그녀가 소말리아를 빠져나오기 직전에 소말리아는 이미 분열 양상을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가족이 케냐에 있을때 소말리아는 내전에 돌입했고 아얀 히르시의 아버지는 그 내전에서 승리하기 위해 반정부 조직을 이끌었다. 그녀는 다시 소말리아에 방문해 친척들을 구출하는데, 그 과정에서 그녀의 친족들은 기관총과 소총, 수류탄과 박격포로 무장하는등 기본적인 치안은 커녕 정상적인 나라꼴 자체가 붕괴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녀가 중시한 것은 당장 죽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아얀 히르시는 그 사람들이 '어째서' 죽어야만 하는지에 촛점을 두었다. 아니, 죽음뿐만 아니라 모든 불행의 원인을 찾으려 했다. 어째서 소말리아의 여아들은 클리스토스를 통채로 도려내는 잔인한 수술을 받아야만 하는가? 여자는 손과 발을 제외한 모든 부분을 가려야 하지만 남자는 무릎까지만 가려도 정숙하다고 인정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 이맘(이슬람의 예배 집전자)의 이슬람 강의에서 그녀는 남자가 여자의 몸을 보고 성적인 흥분을 한다면 여자 역시 남자의 몸을 보고 성적인 흥분을 할 수 있지 않냐고 물어보았다. 물론 돌아온 것은 커다란 비웃음뿐이었다.


성스러운 쿠란과 무함마드의 언행록인 하디스에서 답을 찾지 못한 그녀는 네덜란드에서 마침내 배교를 선언한다. 이슬람에 대해 가진 의문은 적대감으로 바뀌었고, 무슬림 사회가 문명화되기 위해서는 배교하여 기독교를 믿거나 무신론자가 되는 수밖에 없다는 극단적인 믿음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룰라 제브릴이 지적했듯, 그녀는 모든 이슬람 세계를 경험한것이 아니다. 도리어 그녀가 겪은 이슬람 공동체는 매우 협소했다. 그녀가 무슬림을 접하고 이슬람에 대해 배운 나라는 소말리아, 케냐, 에티오피아, 사우디아라비아정도다. 소말리아는 정령신앙과 융합된 왜곡된 이슬람을 믿는 나라였으며, 케냐에서는 기독교와 이슬람 양쪽 다 광신화 되었다. 에티오피아는 지독히도 가난했고(저자는 그 끔찍했던 케냐보다 가난하다고 평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불과 몇년전까지도 와하비즘의 땅이었다.


예컨데 아얀 히르시는 동성결혼을 도입하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보스니아, 페미니스트들이 열성적으로 시위하는 튀니지와 알제리, (특히 서부의 이즈미르를 포함해) 세속화된 튀르키예, 국왕의 권력에 의해 유지되는 면이 강하지만 명목상으로 최소한의 여성에 대한 보호장치를 마련한 요르단 같은 나라들을 방문한적이 없다. 자유연애가 일상화되고 여성들이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다녀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 아제르바이잔에 가본적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무슬리마들이 오프숄더를 입고 무장정파를 지지하는 레바논에 발을 디뎌보지도 않았으리라.


물론 개인의 인생역정이란 그것이 누구의 것이건 소중한 자료며, 그녀는 정교한 논리로 날카롭게 이슬람의 악폐습을 비판하기도 한다. 이후의 책에서 그녀는 무슬림들이 배교하지 않고 세속화되기만 하여도 문명화될 수 있다며 어조를 누그러뜨렸고, 나는 그것이 긍정적인 결과를 위해 작용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