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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한 삶에 의미의 조명을 덧대기 : <상실의 시대> 감상문 - 독서 마이너 갤러리 (dcinside.com)
옛날에 썻던 감상문의 약간 후속편 느낌으로 썼음.
내가 가장 좋아했던 책이 뭐냐고 물으면 난 1초의 고민도 없이 해리 포터라고 답변할 거임
다만 내 인생에 영향을 미친 책이 뭐냐고 물으면 (문학 중에서는) 아마 상실의 시대와 죄와 벌, 그리고 카프카의 소송을 말할 거 같음
그 중에서도 상실의 시대와 죄와 벌은 좀 특별함.
이 두 주인공인 와타나베와 로쟈는 어렸을 때 내가 동경하던 인물이었으니까.
나는 와타나베 특유의 시니컬함과 로쟈 특유의 자신만의 신념을 "어른스러운" 무언가라고 생각했기 때문임.
물론 정작 어른이 되니까 와타나베의 시니컬함은 그저 그 무엇도 선택하지 못한 비겁함과 나약함으로 보이고, 로쟈의 신념은 그저 몽상과 우울이 창조해낸 광기라고 생각하게 되었지만.
아무튼 저 두 책은 어떻게 보면 나의 성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음.
그리고 2023년이 끝나가는 지금, 이 책을 다시 읽었음.
올해 초에 이 책을 읽었을 때 느낀 점은 미도리와 나가사와 선배 처럼, 삶을 온몸으로 적극적으로 느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거였음.
삶이 무의미하단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자신만의 의미를 찾는 그 과정이, 와타나베의 비겁함보다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으니까.
지금 다시 읽었을 때 느낌은, 놀라울 정도로 아무런 느낌이 안든다는 거임.
불과 6개월 만에 책이 이토록 공감이 안되는 경험을 하다니 인생은 언제나 놀람의 연속임.
낭만을 잃어버린다는 기분이 이런 기분일까.
끝도 없는 우물이니 자신을 기억해달라느니 이런 말들이, 한 때는 심장에 비수처럼 꽂혔던 절망과 고통의 말들이, 이젠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짐.
사실 어쩔 수 없는 게, 광기에 가까운 사랑의 갈구와 욕망의 발산은 20대 초반의 특권일 뿐, 그 이후에도 그러고 살면 그저 한심한 한량에 불과해보이긴 함.
마치 중2병은 중학교 시절에만 가질 수 있는 특권이고, 그 이후에도 가지고 있으면 그저 조롱거리밖에 되지 않듯이, 목숨을 건 뜨거운 사랑과 우울 역시 20대 초반에나 먹히지 그 이후론 그저 추해보일 뿐임.
호밀밭의 파수꾼과 수레바퀴 아래서를 20대 초반에 읽었을 때 놀라울 정도로 노잼이었던 것처럼, 상실의 시대도 이제는 더 이상 내게 무언가를 말해주지 않는 거 같음.
하지만 가끔씩은, 정말 가끔씩은 10대 때 내가 가졌던 그 오만함과 반항심을, 20대 초반에 내가 가졌던 열정과 섬세함을 다시 느끼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앞으로도 죄와 벌을, 상실의 시대를 계속 읽을 거 같음.
비록 더 이상 그 책이 예전만큼의 느낌을 주지 못해도, 아니 그걸 넘어 내게 그 어떤 느낌을 주지 못해도, 난 여전히 이 책과 함께 자랐고, 이 책을 읽을 때마다 내 과거의 파편들을 잠시나마 경험할 수 있으니까.
p.s. 전에 이 책을 읽었을 때 가졌던 질문인 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은 어느 정도 답을 찾은 거 같음. 아마 그게 전에 책을 읽었을 때와 지금 책을 읽었을 때 느낌이 다른 이유 중 하나 아닐까.
평생 몸부림이나 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