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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을 만났을 때를 기억하는가? 세상 모든 것이 달라진 듯하고 공기마저도 달콤한 느낌을, 혹은 이뤄질지 알 수도 없는 그 사람과의 미래를 상상하며 잠기는 달콤한 몽상을, 혹은 그 사람의 마음을 다른 누군가에게 뺏길까 느끼는 초조함을, 혹은 그 사람에게 너무 부족한 자신이 부끄러워서 그 사람을 놓아주겠다고 거짓된 체념을 한 것을 기억하는가? 이 모든 마음이 이 소설 안에 들어있다. 「첫사랑」을 읽는 자체가 내게는 정말 달콤한 경험이었다. 동시에 「첫사랑」은 한 소년의 세계관이 어떻게 성숙해가는지를 보여주는 성장 소설의 면모도 갖고 있다. 나는 이 면에 집중해서 처음이란 무엇이며 무르익는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어린 블라디미르는 지나이다의 용모에 첫눈에 반한다. 지나이다의 집안은 기품 없는 집안이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지나이다를 만난 순간 그의 마음에는 번개가 친다. 블라디미르는 자신이 지나이다의 기사가 되는 것을 상상하며 그녀에 대해 거의 숭배의 감정을 갖는다. 지나이다가 명령하자 바로 담벼락에서 뛰어내릴 정도이다. 이런 모습이 우습다고 여길 지 모르겠지만, 첫사랑의 요청이라면 어설프게나마 무엇이든지 하려는 마음 자체는 그 시절이나 지금 시절이나 형태만 달리하여 계속 전해져오는 것 같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블라디미르만이 지나이다에게 그런 감정을 갖는 것이 아니다. 블라디미르의 연적들은 다 큰 어른들이다. 그들은 블라디미르에게 없는 것들이 있다. 말렙스키 백작에게는 간교함이 있고, 루신에게는 안목이 있고, 마이다노프에게는 문학적 성취가 있다. 벨롭조로프는 지나이다의 손에 입맞춤할 권리를 백 루블에 사려고 든다. 이런 이들에 비하면 블라디미르가 내세울 수 있는 것은 강렬한 열정과 순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이것이 처음 사랑에 빠진 사람만이 발산할 수 있는 매력이 아닐까. 그래서 지나이다는 블라디미르의 모습에 감화되고는 한다.
둘의 사랑은 순탄치 않았다. 사실 지나이다가 모으던 사랑 자체가 처음부터 순수한 의미의 사랑과는 거리가 멀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정확히는 사랑의 노예들을 모으고 있었다. 나는 지나이다의 마음을 사기 위해서 가진 것을 내놓고 우스꽝스러운 짓도 서슴지 않는 어른들을 보면서 기괴함을 느꼈다. 루신 또한 "여기 공기는 당신에게 해로워요."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처음 하는 사랑이라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별하지 못하는 블라디미르에게 이 조언은 우이독경에 불과했다. 하기야 그 진상을 객관적으로 보는 루신마저도 지나이다 곁에 있는데!
블라디미르는 지나이다의 행적에 일희일비한다. 지나이다가 자신을 볼 때는 설레서 어쩔 줄 모르고,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티를 낼 때는 질투에 어쩔 줄 모른다. 결국 지나이다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무력을 쓰겠다는 흑심까지 서투르게 품게 된다. 그러나 그 흑심을 실행하려고 나와서 그가 본 것은, 그와 마찬가지로 사랑의 바보가 된 그의 아버지였다. 늘 근엄한 태도를 보여 블라디미르가 그렇게도 존경하던 아버지가 사랑에 홀려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은 것을 본 것이다. 그리고 지나이다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을 밤낮으로 둘러싸고 있는 무리가 아니라 블라디미르의 아버지였다. 이때를 기점으로 블라디미르의 사랑은 괴로움으로 변한다. 그것은 자신이 알고 있던 세계가 기초부터 무너지는 혼돈 때문이었다.
결국 블라디미르의 가족이 떠나면서 이 스캔들은 일단락된다. 하지만 블라디미르는 이후에 아버지가 지나이다를 때리는 충격적인 광경을 본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것은 그 붉어진 상처에 입을 맞추는 지나이다였다. 그때부터 블라디미르는 사랑의 기괴한 모습을 직시하게 된다. "이것이 사랑인 것이군, 이것이 열정이야! 어떻게 분개하지 않을 수 있어, 무엇이 되든 어떻게 때리는 것을 참을 수 있지? 가장 사랑하는 손이 그런 것이라도... 사랑하면 그럴 수도 있는 거겠지... 그렇지만 나는... 내가 상상한 바로는..." 처음 사랑에 빠진 블라디미르는 자신이 사랑하는 모습을 현실이 아니라 몽상에서 찾았다. 지나이다의 기사가 되기도 하고 시동이 되기도 하면서 무한한 아름다움을 뿜는 초월적인 존재의 지나이다를 사랑한 것이었다. 그런 지나이다가 아버지의 채찍을 맞고 현실로 내려온다. 그녀는 블라디미르를 비롯한 남자들을 지배하던 존재에서 아버지에게 지배받는 존재로 전락한다. 그러나 지나이다는 블라디미르의 아버지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 전락마저 사랑한다. 사랑은 사람을 이성으로부터 멀리 떨어뜨리지만, 사랑에 빠진 사람은 자신이 떠내려가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이다. 이것이 블라디미르가 깨달은 사랑의 본질이었다.
아버지와 지나이다의 부고가 밝혀지며 소설은 끝난다. 블라디미르는 이 첫사랑을 후회하지 않는다. 이것은 성인식이었다. 그는 자신의 청춘을 이렇게 회고한다. "아마도 너의 아름다움의 비밀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가능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가능성에 있을 것이다. 바로 네가 다른 곳에다 쓸 생각도 못한 그 힘을 바람결에 자유롭게 놓아 보내는 것에 너의 비밀이 숨어 있지." 분명 그는 사랑에 빠진 어른들을 따라 바보짓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는 그의 마음은 순수했다. 그는 어린 자신이 가진 한계를 알고 있으면서도 사랑을 얻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 순수한 열의가 현실을 만나 좌절하기까지 얼마 걸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가 자신과 지나이다에 대해 품었던 생각보다 더 달콤한 생각에 빠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것이 성장하는 청춘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달콤한 서투름이다. 그래서 철이 든 블라디미르는 모든 진상을 또렷이 기억하면서도 여전히 첫사랑의 감흥을 그리워한다. "아, 감동받은 영혼의 상냥한 마음과 부드러운 소리, 선량함과 평안, 그 첫사랑의 감동이 주는 황홀한 기쁨이여! 너는 어디에 있는가, 어디에?"
나는 블라디미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첫사랑뿐만 아니라 나의 모든 처음이 생각났다. 처음 학교에 발을 들여놓던 순간, 입대해서 생활관에 처음 들어가던 순간, 처음으로 누군가를 만나던 순간... 그때마다 나는 번번이 어떤 이상을 가졌던 것 같다. 이상적인 학생, 이상적인 군인, 이상적인 사람을 목표로 삼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이상들은 늘 터무니없는 것들이었다. 그것을 미리감치 알아챈 선배들과 선임들은 루신이 블라디미르에게 그랬듯이 나에게 타이르고는 했다. 결국 나는 그것들에 적응했다. 적응했다는 말은 곧 처음의 이상을 포기하고 현실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런 생활과 만남이 끝나고 나중에 모든 과정을 돌이켜보면, 몸과 마음은 말엽에 가장 편했더라도 나의 이상을 이룰 수 있다고 믿고 상상 속에서 끝없이 이상을 실현하는 연습을 하던 처음 그 시절이 가장 행복했던 것 같다.
그래서 아버지가 블라디미르에게 한 이 말이 기억에 남는다. "무엇이 인간에게 자유를 주는지 알고 있니? 그것은 의지, 자신의 의지란다. 그것은 자유보다 더 좋은 권력을 준단다. 무언가를 원하는 능력을 가져라. 그렇게 되면 자유를 얻고 다른 사람들도 이끌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은 꼭 마음의 청춘을 유지하라는 말처럼 보인다. 사는 것에 익숙해질수록 우리의 소원은 줄어든다. 현실에 치여보니 이루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스스로 체념해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첫사랑처럼 계속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다면, 이루지 못한다는 원숙한 생각보다 일단은 이뤄보겠다는 패기가 더 앞서서, 결국 정말로 모든 일을 이룰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나는 블라디미르의 첫사랑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첫사랑은 우리가 보편적으로 느끼는, 비현실적이지만 달콤한 감각이다. 무르익은 사람은 현실을 볼 줄 알아서 현명하지만 상상의 달콤함을 맛보지 못한다. 그래서 현실을 보는 안목이 중요하면서도 그 안목 없이 해보는 처음이 그리도 소중한 것이다. 처음 품은 그 동경을 끝까지 갖고 있다면 어쩌면 우리는 영영 첫사랑 같은 달콤한 사랑을 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현실이 결코 이를 두고 보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는 첫사랑을 위해, 모든 처음을 위해, 영원한 이상을 위해 기도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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