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원주민을 야만인이라 생각한 당대의 유럽 지식인들과 달리, 그들의 식인풍습조차 단순한 야만이 아니라 나름의 이유를 갖고 생겨난 풍속이라고 주장한 몽테뉴
야만적인 것도 원시적인 것도 아니며 유럽과 다른 관습일 뿐
그런데 몽테뉴는 그런 상대주의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관습을 유지하자는 보수주의를 펼치는데, 이는 어느 것이 옳아서라기보다는 몽테뉴 스스로가 유럽의 관습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
터무니없어 보이는 관습과 관행도 이해하지 못해서일뿐 나름의 이성에 따라 생겨난 것이라는 주장
앞서 보았듯이 몽테뉴는 인류 여러 종족이 가진 관습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각자가 살고 있는 사회의 관습을 유지해야한다는 보수적 주장을 펼침
한편 몽테뉴는 새로움이라면 무엇이든 혐오하며 자기 생각이 옳다는 극단적인 말을 던지면서 우리를 당황시키는데
이는 새로움 자체에 대한 혐오라기보다는 새로움에 의해 체제가 동요할 때 발생하는 질서의 와해에 대한 혐오.
식인풍습도 다양성으로 받아들일 정도로 상대주의적 면모를 지녔던 몽테뉴가 어떻게 동시에 보수적인 인물로 남아있을 수 있었을까?
바로 몽테뉴가 활동하던 16세기 말 프랑스는 가톨릭과 개신교가 나뉘어 수십년간 내전을 벌이면서 서로 학살하며 쑥대밭이 되었기 때문.
이때 몽테뉴는 가톨릭과 개신교의 갈등을 중재하는 역할을 맡았는데(그는 법관과 시장을 지낸 고위 정치인이었음), 그리스 로마 고전을 섭렵한 교양인이자 온건파 가톨릭 신자로서 어느 한쪽 편을 들기보다 잔혹한 전쟁 자체를 혐오했음.
즉 몽테뉴는 인간이 고정적인 본질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지역과 시대마다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고 주장했다는 점에서 헤라클레이토스를, 고정관념과 편견을 버리고 무엇이 진리라고 섣불리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점에서 피론을 계승한 회의주의자 혹은 상대주의자임.
그러나 동시에 바로 같은 이유로, 즉 인간은 늘 특정한 지역과 시대에서 살아가며 무엇이 진리인지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는 점에서 주어진 관습의 존중과 섣부른 변화에 대한 경계를 강조한 보수주의자임.
본문출처
이선희. (2019). 몽테뉴의 「습관에 관하여」에 나타난 관찰과 성찰의 방법론. 코기토,(87), 201-232
이선희. (2018). 몽테뉴의 〈식인종에 관하여〉와 신세계를 중심으로 본 타자에 대한 성찰. 외국문학연구,(69), 187-218.
그외 참고문헌
이재훈. (2016). 즐거움과 긍정의 철학자 몽테뉴. 철학연구, 115, 137-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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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계몽주의자 고트. 괜히 파스칼이 빨아재낀게 아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