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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꼴에 지식인이랍시고 머리 속에 든 건 있어서 있어야 하는 올바른 상태가 무엇인지는 알지만,

그래봤자 일개 개인 주제에 뭘 바꿀 수도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냉소로 도피한다.



이게 아주 오랜만에 다시 읽은 "이문열"의 초기작 <필론의 돼지>를 읽고 든 감상이다.

(별개로 어릴 적에 잀었을 때는 <들소>가 그렇게나 재밌게 읽어서 기억에 남았었는데,

지금 읽어보니 루소의 원시공산사회의 찬양을 가지고 쓴 어설픈 습작 수준에 불과하다고 느껴져서

재독의 필요성에 대해 절감했다)


그리고 이어서 생전 처음 듣는 "베르코르"라는 프랑스 작가의 <바다의 침묵>이라는 단편집을 읽었다.

2차 세계대전 중 무력한 지식인이 마주하게 된 야만적이고 불의로 가득 찬 세상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즉 동일한 질문을 가지고 쓴 글에서 최소한 냉소하며 도피하지는 않아야 한다는 작가의 책임감을 읽었다.

간만에 추천하는 소설이다.


표제작도 좋지만,

<베르됭 인쇄소>의 결말은 100페이지도 안되는 소설을 가지고 10권 짜리 한국의 자랑 <태백산맥>을 아득하게 뛰어넘어 버렸다고 생각한다.


열린책 세문전집으로 나온 것이 수록작이 더 많지만, 난 범우사 껄로 읽었는데

밀리에도 있고, 책가격도 3,500원 밖에 안하고,

누가 번역했는지 모르지만 번역도 아주 좋았다.


냉소는 쿨해 보이고 그래서 멋져 보일지는 몰라도 결국 독이다.

"이문열"도 냉소로 도피하는 자를 냉소하기 위해 냉소로 도피하는 것으로 소설의 결말을 쓴 것일지라도

결국 그 독은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독이 되어 퍼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냉소를 냉소해봤자 그것 역시 냉소일 뿐이란 소리다. 


그리고 그래서 그렇게 세상은 날이 갈수록 냉소로 뒤덮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