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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에 쓴 글인데 여기 한 번 올려봅니다.)


사실 「오만과 편견」을 읽기 한참 전에 제인 오스틴에 대한 글들을 어느 정도 읽었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이 지금은 흔한 구성의 연애 소설이라는 말을 많이 보았다. 그래서 큰 관심이 가지 않았다. 그러던 내가 「오만과 편견」을 읽기로 한 것은 알라딘에서 우연히 한정판 표지를 가진 판본을 보고 욕심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작품을 골랐다기보다는, 말 그대로 견물생심이었다. 가족 여행에 「오만과 편견」을 들고 간 것도, 그냥 이 소설이 가볍게 읽기 좋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연애 소설을 읽으면서 심오한 사색에 잠길 것 같지는 않았다. 이상이 내가 「오만과 편견」을 알기 전에 품은 오만이자, 동시에 「오만과 편견」에 대해 품은 편견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엘리자베스와 다아시 씨 사이에서 그랬듯이, 읽으면서 점차 해소되어갔다. 책을 덮을 때는 아쉬운 마음마저 들었다. 아주 명랑하면서도 배울 점이 많은 소설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연애 소설 제목에 '오만'과 '편견'이 들어가는 것 자체가 비범하다. 두 단어 모두 심리 중에서도 부정적인 것들을 지칭한다. 이런 단어들을 제목으로 갖는 소설이 밝고 달콤한 소설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이 소설도 오만과 편견이 주된 소재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철저하게 밝고 달콤하다. 작가 스스로가 공언할 정도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다아시 씨의 반전 때문에? 상류층에게 한방 먹이는 풍자적인 통쾌함 때문에?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오만과 편견'이 인간관계 사이에 작용하는 원초적인 심리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즉 우리는 오만도 편견도 언어적으로는 꺼리지만, 정작 인간관계에서 둘을 들여다보면 둘은 너무도 당연한 것들이라 긍정적인 내용이든 부정적인 내용이든 부드럽게 녹아들게 돼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소설의 초반부에 나오는 문장이자 내가 이 소설에서 가장 감명 깊게 읽은 문장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오만이란 실제로 아주 일반적이라는 것, 인간 본성은 오만에 기울어지기 쉽다는 것. 실재건 상상이건 자신이 지닌 이런저런 자질에 대해 자만심을 품고 있지 않은 사람은 우리들 가운데 거의 없다는 것이 확실해. 허영과 오만은 종종 동의어로 쓰이긴 하지만 그 뜻이 달라. 허영심이 강하지 않더라도 오만할 수 있지. 오만은 우리 스스로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와 더 관련이 있고, 허영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것과 더 관계되거든." 이 문장은 인간에게 보편적인 특성으로서 오만을 제시하며, 오만을 허영과 분명하게 구분한다. 오만은 현재의 자신에 대한 자기애 섞인 찬양이다. 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에 따라 전전긍긍하는 허영과는 분명히 다르다. 어떻게 보이든 간에 자신이 가진 현재의 모습, 현재의 생각을 사랑하며 고수하는 것이 오만이다. 이 모습은 긍정적으로 비칠 수 있지만, 제인 오스틴은 여기에 한 문장을 더해 자긍심과 오만 역시 구분한다. "오만은… 진정으로 뛰어난 지성의 소유자라면 늘 그것을 잘 통제하기 마련이고, 그건 오만이라기보다 자긍심이라고 해야 하겠지요." 오만은 자기에게 치우친 감정이다. 꼭 자기 자신의 편을 들지만은 않고 매사마다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오만을 잘 통제하는 사람이기에 그의 심리에 오만보다는 자긍심이라는 경의 섞인 이름을 붙여줄 만하다. 그러지 못하면, 우리가 아는 부정적인 느낌의 오만이라는 이름을 지울 수 없다.


오만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오만에 빠지면 모든 판단의 기준을 아무런 의심 없이 자기 자신에게 둔다. 타인에 대한 평가 역시 그렇게 이루어진다. 진정한 의미에서 '어떤 사람을 안다'라고 말하려면, 내가 목격한 그 사람의 행동을 나열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그 사람의 행동 뒤에 숨겨진 그 사람의 생각은 물론이고 성격, 환경, 심지어 그 사람의 '오만'까지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오만에 빠진 사람에게는 그 이상으로 파고들 용의가 없다. 모든 것은 자신의 기준대로 평가되며, 평가 대상은 가시적인 기억들 뿐이다. 평가는 불완전하게 이루어지고, 그 결과 오만은 부분적이면서도 자신의 잣대대로만 평가됐기에 오히려 튼튼한 생각을 낳는다. 이 생각을 두 글자로 '편견'이라 한다. 즉 오만은 편견을 낳는다. 편견의 폐해는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사람과 사람을 떼어놓는 강력한 힘들 중의 하나가 편견이다.


철학적인 얘기가 길어졌는데, 지금까지의 말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오만과 편견」이든 어떤 소설이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고 사람들이 이상적인 판단만 한다는 전제가 없다면, 관계 사이에 오만이 끼어들어 편견의 장벽을 만든다. 즉 모든 인간관계는 편견을 깨는 싸움이자, 오만을 통제하는 방법을 배워나가는 과정이다. 「오만과 편견」은 인간관계의 이 본질을 예리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엘리자베스와 다아시 씨가 가까워지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오만과 편견이 극복 가능한 것임을 보여준다. 이것이 내가 생각한 「오만과 편견」의 의의이다.


소설의 초반에 다아시 씨가 보이는 태도는 실제로 오만하다. 빙리 씨와 대비되어 그런 것도 있겠지만, 다아시 씨는 귀족적이다 못해 칙칙한 분위기를 풍긴다. 베넷 가의 사람들과 자기 자신을 체통 면에서 구분하는 태도는 확실히 오만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다. 계급의 개념이 많이 옅어진 현대 사회에서 다아시 씨가 초반에 보이는 태도에서 장점을 찾으라면 '기계적인 솔직함' 밖에 없을 것이다. 엘리자베스가 다아시 씨를 적대하는 것은 다아시 씨의 행적이나 생각으로 볼 때 충분히 합리적으로 보인다.


엘리자베스는 다아시 씨와는 정반대이다. 계층적으로도 그렇지만, 엘리자베스는 시대를 초월할 정도로 개성적인 주인공이다. 엘리자베스가 사는 곳과 사는 시대가 독자의 세상과는 전혀 다르지만, 엘리자베스가 상류 사회에 대해 던지는 비판은 독자에게도 신랄하다. 동시에 그런 환경에 타협하고 만 샬럿에게 던지는 냉소 역시 가혹할지언정 뼈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대의 관점에서는 엘리자베스에 공감을 하게 돼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역시 이 문제를 피해 가지는 못했다. 그녀의 팔은 안으로 굽었다. 제인에 대한 자신의 바람이 있던 만큼, 또 가족을 사랑하는 만큼, 그녀의 판단은 객관적이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다아시 씨와의 첫 만남에서 받은 고급지고 불쾌한 인상은 편견을 강하게 심었다. 그 결과 예리한 독설가는 위컴에게 의심 없이 휘둘리는 갈대가 됐다.


이렇게만 보면 둘이 이어질 기미는 전혀 없어 보인다. 누가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둘은 어쨌든 오만과 편견을 이기지 못하고 서로에게 큰 실책을 저질렀다. 인간관계에서 오만과 편견의 필연성과 폐해가 드러난 것이다. 남은 것은 이 문제들이 어떻게 해결되느냐를 제시해서 인간관계에 대한 희망을 주는 작업이다. 그리고 제인 오스틴은 그것마저 해냈다. 몇몇 전개는 우연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연히 발생한 연결보다 그 연결을 대하는 인물들의 자세에 주목한다면 답이 나온다.


둘은 시간이 지나서 마침내 서로가 갖고 있던 오만을 자각했다. 물론 알고 싶어서 안 것은 아닐 테지만, 아무튼 알게 된 것에 대해 그들은 나름대로의 판단을 했다. 즉 실책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들은 실책에 마냥 체념하지는 않았다. 오만은 수정하기가 정말 어렵다. 하지만 그들은 실책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놓쳐버린 것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새로 안 정보들을 계기로 편견의 벽은 허물고 오만은 진심으로 반성했다.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체념하지 않았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다가올지도 모를 기회를 위해 과감히 몸을 던졌다. 후반부의 다아시 씨가 초반부의 다아시 씨와 딴판인 것도, 후반부의 엘리자베스가 초반부의 엘리자베스보다 더 성숙해 보이는 것도 이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거리를 극복하기 어렵다고 전망하면서도, 서로가 원하는 관계에 이를 희박한 가능성을 위해 태도를 고쳤다. 결국 새로운 태도 앞에 닥쳐온 우연은 축복이 됐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인간관계에도 유효한 말이다. 내면의 오만을 다스릴 의사도 없이 가만히 있으면 원하는 관계를 얻을 수 없다. 심지어 오만에 도취돼있으면 영영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원하는 관계를 이루기 위해 굳은 오만을 녹이고 편견을 깨부수면, 거리는 점점 가까워지게 돼있다. 이것이 내가 「오만과 편견」을 읽고 얻은 교훈이다.


어찌 보면 인간사에서 당연한 전제들임에도, 평소에는 자각하지 못하다가 이런 명작을 읽고 나면 갑자기 생각이 피어오른다. 당연한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 독서의 희열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이 책을 계기로 내가 제인 오스틴에 대해 품었던 오만과 편견이 깨졌으니, 이제 제인 오스틴의 다른 작품들을 읽으면서 거리를 좁힐 일만 남았다. 다음에 읽을 작품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읽게 될 그날을 고대하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해준 제인 오스틴에게 언제나 더없이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지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