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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꽤나 솔직하단 얘기를 주변에서 듣곤 하지만 세간에서 의미하는 솔직하단 얘기는 썩 좋은 의미로 통용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세계에서 약속된 일종의 예의나 절차를 무시하는 무법자란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런 무법자인 나조차도 그런 것들을 아예 깡그리 무시할 수 없는 순간들은 분명 존재하고 그 순간 나는 잠시 얼굴을 가려줄 가면을 황급히 뒤집어쓰고 그들이 원하는데로 기꺼이 따라준다. 그것은 사회생활을 위한 허위와 가식, 거짓인 셈이다. 인간은 과연 그것들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가?
  

<안나 카레니나>의 주인공들 역시 허위와 가식에 파묻혀 허우적댄다. 그들은 허위와 가식 속에서 사회적으로 묵인된 약속을 지키고 행복한 것마냥 살아가지만 그들은 사랑에 눈뜨면서 더 이상 허위와 가식에 따른 삶이 아니라 진정한 자신의 삶을 꿈꾼다.


인간의 통찰과 관점을 바꾸게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마음을 되돌아 볼 수 있게 하는 사랑과 출생과 죽음이란 인간에게 내리는 신비하면서도 불가해한, 그러면서도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이다.


안나와 레빈은 각자 사랑하는 상대를 만나 허위와 가식의 삶에서 극적으로 탈출하지만 삶과 죽음이란 테마 앞에 두 인물의 심리와 상황은 다시 반전된다.


사랑만이 남은 그 자리에 안나는 사교계라는 허위와 가식이 사라진 자리를 채울 것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았고 오직 자신의 불안정한 사회적 지위와 언제 상대가 변심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이런 심리에서 오는 분노와 증오로 가득찬 악의 상태에 처한다. 그녀가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세계는 또 다시 허위와 가식, 거짓과 기만으로 가득찬 악의 세계다. 그런 상황에서 모든 삶의 동력을 잃은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레빈 역시 자신의 이익을 고려하는 일종의 이기주의자이자 신앙이 없는 불순자이지만 그는 소박한 삶과 삶의 태도 특히, 농민들의 삶과 태도를 좋아했기에 그는 행복하게 살아 가는 농민에게서 삶의 실마리를 찾아낸다. 그는 자신을 일깨워줄 기적이란 몽매한 꿈이란 환상에서 벗어나 현실에서, 그리고 자기 안에서 발견한다. 그것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인간의 본성, 그리고 인간의 본성에는 이런 선이 깃들어 있다는 발견이었다.


이 발견 자체만으론 곧 바로 모든 인간을 담뿍 사랑할 순 없는 것이지만 분명 사랑의 가능성을 깨닫고 사랑으로 나아갈 순간을 인식한 것만으로도 그의 무의미한 삶은 곧 의미있는 삶으로 바뀐다. 그는 다시 태어난다.


톨스토이가 천착한 죽음이란 문제에 맞서 인간은 영원할 수 없다는 불안과 인간들 사이에서의 관계도 영원할 순 없다는 이중의 불안을 떠안는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뼈만 앙상히 남은 공룡들처럼 죽어 누워있어야만 할까? 세계의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고 영원할 수 없는 일시적 존재라 할지라도 우리는 우리가 딛고선 땅 위에서 무언가 찾기를 바라고 그 존재만으로도 기뻐할 단순하면서도 위대한 무언가를 바란다.


허위와 가식에서 벗어나 위대한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는 우리 안의 목소리를 들어야만 한다. 우리의 목소리는 무엇이고 우리가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일까?


절대적인 합의가 이뤄질 수 없는 이 난관 앞에서 톨스토이는 사랑을 복음하지만 그것은 관념상의 사랑을 위선적으로 읊조리고 떠벌리는데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눈 질끈 감고 진짜로 실천하는 현실의 사랑이다.


톨스토이의 외침은 좀 더 근본적으로 사랑을 위해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만 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인간은 모두 선이 깃들어 있는 같은 동지라는 믿음,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그 동질성이 퀭한 눈으로 주변을 경계하는 인간을 꿈틀거리게 한다.


겨우 모든 사람이 선을 가지고 있다는 그딴 입증하지 못할 불확실한 동질성으로 뭘 바꾼다는거여? 개풀 뜯어먹는 소리라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난 그런 경험이 있기에 굳게 믿는다. 그건 심리를 통한 확신이다. 정녕 본 적이 없는가? 꼴도 보기 싫은 놈이 나와 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을때 눈 녹듯이 사라지는 편견과 오해를. 면상만 봐도 역겨운 자식의 1q84와 내 1984를 바꿔 읽음으로써 입안에서 사라지는 솜사탕같이 녹아버리는 그에 대한 불신과 증오를.


세사의 풍파에 흔들리며 인간을 믿지 못하고 사랑할 수 없는 인간을 움직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오직 조금의 사랑이고 사랑의 조건으로써의 약간의 용기다. 톨스토이가 내 등을 두드리며 용기를 북돋는다.


나는 대체로 대부분의 인간에게는 선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 다만 인간이 인간을 의심하고 혐오와 증오로 차 있는 이유는 그들이 선이 발현될 조건이 갖춰지지 않았으며 그들 역시 누군가를 먼저 보듬을 약간의 용기와 여유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 마찬가지로 이해와 관심이 가야 그것이 고스란히 되돌아온다. 나는 누군가를 변하게 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지만 나 스스로도 변해야 한다.


변화를 위해 필요한 것은 용기이고, 톨스토이와 레빈을 신뢰하는 순간 신기하게도 마음은 하늘에 두둥실 떠있는 구름처럼 한결 가벼워지며 사랑으로 나아갈 약간의 용기가 생긴다.
  

나는 그토록 험난해보였던 사랑으로 향하는 길 그 길을 닦으며 용기를 가지고 새로 다가올 사랑의 한 해를 기쁘게 맞이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