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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반역과 다르다. 반역은 전통과 절망, 환멸에 그 뿌리를 둔다. 혁명은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적 기획으로 뒷받침되는 희망을 제기한다. 반역은 구체적인 개인을 희생양삼아 대표자를 바꾼다. 혁명은 사회적, 정치적 질서를 의식적으로 바꾸고자 한다. 반란의 군중은 폭발적이고, 혁명의 군중은 의식적이다. 요컨대 혁명은 의식적으로 급진적 변화를 추구하는 반역이다.

이 책의 서술 방식은 연대순도 아니고, 그렇다고 주요 사상가들을 일별하지도 않으며, 주요 혁명들 몇가지를 각각 다루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혁명은 역사의 기관차'라는 마르크스의 오랜 메타포, 자유와 해방에 대한 철학적 논의들, 개념 상징 기억 등 큰 주제 아래 느슨하게 묶여있는 짧은 단락들을 일관된 흐름 아래 짜맞춘 것에 가깝다. 혁명적 기관차라는 이미지 아래 마르크스 사상 내의 긴장, 판초 비야, 트로츠키의 장갑 열차가 한데 엮이고, 자유와 해방이라는 주제 아래 두 자유관(한 편에는 고전적 자유주의가, 다른 한 편에는 루소에서 시작하여 자코뱅과 흑인 운동, 마르크스와 폴라니로 이어지는 계보가 있다)의 대립, 아이티 혁명, 아렌트, 라파르그가 엮인다.

그러니까 이 책은 물론 혁명에 대한 하나의 명확한 상이나 일관된 흐름을 도출하지 않을 뿐더러 혁명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나열하려는 책도 아니다. 저자는 이 책이 이미지, 기억, 희망의 다양한 뒤얽힘이 절합된 하나의 "넝마주이"라고 말한다(단어 선택에서부터 보이듯이 벤야민적이다). 그래서 이 책은, 아마도 사상사라는 이유에서 더욱 그러한데, 역사책과 철학 에세이 사이의 어딘가에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아마도 저자가 역사학자임에도 불구하고 미카엘 뢰비에게 수학한 적 있다는 독특한 경력도 이에 한몫했지 않았을까.

책을 덮고 나면 그래서 뭐? 라고 하는 의문이 들지 모르겠다. 말했듯 명확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도 아니고, 아니면 어떤 사건이나 시대를 있는 그대로 서술하고자 하는 책도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역사적 계보에 무심한 현대의 좌파적 사회, 정치 운동들에게, 그들이 당면한,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현재적인 문제들에 대해 명확한 답을 주지는 않으면서도, 다만 그들이 스스로를 재발명하기 위한 과거의 경험들을 탐구하고자 한다. 저자는 다시 벤야민의 말을 빌린다. 혁명은 역사의 연속체를 폭파함으로서 과거를 구조한다. 혁명은 그 자체 안에 조상들의 경험을 담고 있다. 이런 역사적 경험들을 샅샅이 탐구하지 않고서는 성공을 거두지 못하리라.

혹은 이 꽤나 큰 포부에 공감하지 않더라도, 읽는 재미만으로도 충분히 읽어볼만한 책이다. 각 단락의 호흡은 짧지만 그렇다고 서술은 너무 압축적이거나 반대로 너무 얕지도 않으며, 읽어나가는 매 순간이 즐거운 경험이었다. 저자가 엮어내는 역사들의 넝마주이는 그만큼 그 자체로 흥미진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