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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사이시 조의 음악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지브리를 모르고, 미야자키 하야오를 몰라도, 이웃집 토토로, 붉은 돼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몰라도, 그의 음악은 모두가 알고 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테마곡을 들려주면 “나 이 노래 알아!” 라며 환한 표정을 짓는다. 우리의 귀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자극하고 감동을 주는 그의 음악만큼, 히사이시 조 라는 이름도 점점 더 유명해지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이전에 이미 두 권의 에세이집을 낸 작가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일본의 뇌과학자이자 곤충학자, 해부학자이며, 100만부 베스트 셀러 작가이기도 한 요로 다케시를 만나 대담을 나눴다. <나는 매일 감동을 만나고 싶다>에 이어, <히사이시 조의 음악일기>를 통해 음악과 뇌의 관계에 대해 흥미가 있음을 전한 뒤 3년 만이다.
<그래서 우리는 음악을 듣는다>는 그 대담을 글로 옮겨적은 대담집이다. 두 사람은 선생과 제자처럼, 가끔은 프로들처럼, 가끔은 지혜로운 현자처럼, 또 꼰대처럼, 온갖 주제를 가지고 가벼운 비평과 사변, 의견과 이야기를 내던지며 서로의 말을 주고 받는다. 이미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니만큼 각자의 분야 외적으로도 잔뼈가 굵다.
음악가와 뇌과학자의 만남답게, 음악과 뇌를 주제로 대담의 물꼬를 튼다. 음악을 들을 때 우리의 뇌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청각의 신경 세포는 어떻게 배열되어 있는가? 절대 음감은 청각이 아닌 감각 언어 영역에 가깝다. 감각은 신경 뿐 아니라 환경에도 영향을 받는가? 그렇다면 이 음악과 저 음악을 뇌도 다르게 들을까? 음악을 작곡하는 방식도 다를까? 히사이시 조와 요로 다케시는 음악과 예술, 창작의 비밀을 앞으로도 절대 알 수 없을 것 같다는 무언의 태도를 견지하면서도, 서로의 경험과 지식을 나누며 드러나지 않는 그 무언가를 풍부한 문장들로 엮어 드러낸다. 예컨대 좋은 음악이 무엇이냐는 히사이시 조의 물음에, 요로 씨는 듣기 편한 음악, 오래 들을 수 있는 음악이라고 답한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요동치는 음들과 현란한 구성에도 불구하고, 귀를 자극하는 느낌 없이 뇌가 편안하게 활성화되는 느낌을 받는다. 현대의 팝 음악이 지향하는 귀를 강하게 자극하는 듯한 느낌이 없다. 감성적 천재의 대명사인 모차르트가 음을 가지고 수학적 미를 만들어낸 음악가였다는 히사이시 조의 설명은 그의 에세이들 만큼이나 이번에도 명쾌하다. 모차르트가 가진 독창성이란, 감정의 요동과 수학적 아름다움 사이에서 새로운 공감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요로 씨의 말 또한 내 무릎을 탁 치게 한다.
요로 씨는 인간의 말이 사실을 풍부하게 만들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감각을 전달하는 신경 세포들의 물리적 거리와 배열 방식부터 시작해, 경험과 언어, 환경과 문화, 역사까지 이어지는 대담은 흥미롭게 확장되기도, 축소되어 섬세해지기도 한다. 사실을 풍부하게 만드는 대담의 흐름 그 기저에 깔린 키워드는 논리와 감정이다. 음악가는 논리와 감정 사이에서 항상 줄타기를 벌이며 작곡을 하고, 뇌과학자는 논리와 감정이 무엇인지를 연구한다. 이 두 가지 키워드는 도시는 의식의 산물이므로 머리에 해당하고, 시골은 몸에 해당한다는 요로 씨의 비유로 이어진다.
순록을 잡는 부족과 고래를 잡는 부족의 차이를 아는가? 순록을 잡아 고기를 얻는 부족은 음악적 리듬감이 부족한 반면, 고래를 잡는 부족은 그 리듬감이 탁월하다. 순록은 혼자서도 잡아 고기를 얻을 수 있는 반면, 고래는 부족 전체가 나서서 잡아야한다. 고래를 잡는 부족의 리듬감이 탁월한 이유는, 집단의 움직임을 동기화시킬 수 있는 음악적 리듬감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시골은 과거의 공동체로써 집단의 움직임이 중요했다. 모두가 합심해서 살아가야하니까. 그러나 인간의 의식은 도시를 만들어냈고, 집단의 움직임은 사라졌다. 그리고 흔히들 말하는 요즘 것들의 문제가 나타난다. 요로 씨는 그 원인으로 몸의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서로 간의 감각적인 공명, 그것의 부재를 지적하며, 논리와 감정이라는 키워드를 벗어나 공명이라는 제3의 지향점을 제시한다. 집단적 리듬의 공명을 통해 고래를 잡았던 원시 부족과 달리, 우리는 감각이 마비된 채 살아가고 있다. 시골은 그 감각을 살릴 수 있는 장소이다. 이제와 구태여 시골에 살 수는 없으니 시골을 휴양지처럼 만들어 달에 한 두번씩 휴양을 보내자는 요로 씨의 말은 언뜻 그럴싸하게 들리기는 한다. 어찌됫건 알고리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감각의 공명일지 모르겠다.
이 책은 어찌 보면 사실들을 한없이 가볍게 늘어놓는 책이다. 그러나 동시에 사실을 한없이 풍성하게 만드는 책이다. 그 풍성함 속에서 공명에 이르기 위함이 이 대화의 목적일 것이다. 내 마음과 생각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히사이시 조의 음악만큼이나, 이 책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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