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카타르 월드컵을 볼 때가 엊그제가 같았는데, 어느새 2023년과 작별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난 달과 비교했을 때 독서량은 거의 비슷하지만, 작품은 통틀어 두 개 정도 밖에 안되다 보니 덜 읽은 것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하여튼 올해 마지막 달을 나와 함께한 책들을 소개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1.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Buddenbrooks)

“무한정 향유하고 이용하면서 절제를 잃고 끊임없이 갈증을 호소하는 가운데 무언가 방탕한 요소가 나타났다. 그리고 탐욕 속에서 무언가 냉소적인 절망감과 아울러 열락과 몰락에의 의지 같은 것이 피어올랐다. 최후의 감미로움까지 빨아들임으로써 기진맥진하고 구역질과 넌더리가 나게 되었다.”

-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中 -

20세기 초 독일 문학을 대표하는 거장 토마스 만 (Thomas Mann)이 1901년에 발표한 장편소설이자 그의 대표작 중 하나라 꼽히기도 하는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을 읽어봤다. 이전에는 토마스 만을 재미없다는 소문 때문에 꺼렸다가 그가 집필한 중단편 소설인 트리스탄, 토니오 크뢰거,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을 읽고 나서는 단숨에 만은 내 최애작가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만의 장편소설에도 입문해 보기로 결정했는데, 그가 썼던 장편소설 중 본 작품이 가장 쉽다는 평을 받기도 했고, 중고서점에서도 가장 많이 매물이 풀려 있었던 작품이기도 했다. 그래서 별 망설임없이 알라딘 중고매장에서 분권된 두 책을 냉큼 집어서 읽어봤다.

이 책은 북독일 상업 도시들의 연맹인 한자동맹의 중심도시인 뤼베크 멩 가에 우뚝 서있는 한 저택에서 왁자지껄 벌어지고 있는 파티를 보여주며 시작된다. 로스토크에서 재단사로 시작하여 장사꾼으로서 뛰어난 수완을 발휘해 영국과 네덜란드에도 납품하는 이름난 곡물상으로 발돋움한 요한 부덴브로크가 이 웅장한 저택에 입주한 것을 축하하고자 열렸던 연회였다. 그는 안토아네트라는 후처와 그녀 사이에서 낳은 차남으로 장 부덴브로크를 두고 있었는데, 전처 사이에서 낳은 장남 고트홀트가 제멋대로 외간 여자와 결혼해서 독립하고는 지속적으로 유산을 요구하는 꼴이 영 못마땅하긴 했지만 경건하고 신실한 둘째 아들을 두고 있다는데 만족하였다. 그리고 장 부덴브로크는 뤼베크의 또다른 명문가 크뢰거 가 출신의 규수 엘리자베트를 아내로 두고 있었고 슬하에는 믿음직한 장남인 토마스, 깜찍하고 아리따운 장녀 안토니, 병약하지만 유머감각이 뛰어난 차남 크리스찬, 선물같이 찾아온 늦둥이인 차녀 클라라가 있었다. 하지만 행복만이 가득할 것 같았던 부덴브로크 가에도 비보가 찾아드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건강히 지내던 안토아네트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에 충격을 받은 요한 부덴브로크도 얼마 안 가 세상을 뜨게 된다. 회사를 물려받은 장은 아버지의 유지를 잇기 동분서주하지만 아버지와 달리 장사가 천직이 아니었던 모양인지 회사의 경영은 매번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다. 그나마 장남인 토마스가 착실히 회사일을 배우고 있다는게 장에게 위안이 되어 주었지만 철들 기미가 보이지 않던 안토니와 탈선을 하는 크리스찬은 그의 속을 썩였다. 그러던 와중 장과 거래를 텄던 벤딕스 그륀리히라는 함부르크의 상인이 우연히 그의 집에 방문했다가 그의 딸인 안토니의 아리따움에 반하여 구애를 한다. 장은 회사 사정이 안 좋았던 찰나에 꽤나 건실해 보이는 사업가가 딸에게 청혼을 하는 것에 반색했지만, 안토니는 그륀리히에게 경멸을 느끼고는 매번 청혼을 뿌리쳤다. 그의 지속되는 구혼에 지친 안토니는 아버지의 허락을 얻어 트라베뮌데라는 뤼베크 근교 해안도시에 요양을 떠난다. 그곳에서 슈바르츠코프라는 도선사의 집에서 지내며 꿈같은 시간을 보내는 동안 안토니는 여름방학을 맞아 잠시 집에 돌아온 도선사의 아들인 모르텐을 만나는데, 그를 보고서는 그녀는 난생 처음으로 진실된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토마스 만은 독일 남부의 도시 뮌헨에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줄곧 그곳에서 지내왔고, 말년에는 미국과 스위스 등지에서 생활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그가 어린시절을 지냈던 곳이자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빚어준 곳은 독일 북부의 상업도시이자 그의 고향이었던 뤼베크였다. 그곳에서 만은 시민적인 삶을 추구하며 엄격히 자식을 훈육한 상인이었던 아버지의 보살핌을 받았고, 경직된 프로이센식 교육을 받았었다. 동시에 그는 독일계 브라질인이었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자유분방한 사고방식을 지니며 예술을 향유하기도 했다. 본 작품은 작가 본인이 북독일에서 자라면서 겪었던 엄격한 시민적인 삶과 자유분방한 예술가적인 삶 사이에서 갈등하면서 고뇌했던 개인적인 체험을 북독일의 한 상인 가문의 일대기로 풀어낸 대작이다. 작중에서 주인공들이 속한 가문인 부딘브로크가는 근면함과 성실함을 바탕으로 가장 빛나는 명성을 자랑하는 상인 가문이 되었지만 세대를 지날 때마다 종교, 사랑, 급변하는 정세, 예술, 철학의 영향을 받으며 건실했던 밑바탕에 균열이 생겨 점치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작품의 기법과 관련해서도 꽤난 흥미로운 점이 있는데, 가문에 속한 구성원 들의 행적을 다루는 초중반만 하더라도 본 작품은 모범적인 사실주의 문학의 구성을 갖추고 있다. 이때문에 관념적이고 형이상항적인 면모를 지닌 토마스 만의 중단편을 먼저 읽고 온 저로서는 제법 이질감이 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부덴브로크가가 몰락의 절정을 달려가는 후반부에 이르면 만 특유의 관념적인 묘사들이 부각된다. 최후반부에 다다르면 감각적이고 탐미적인 관념 묘사가 절정을 이뤄서 감정이 폭발이라도 하듯이 맹렬하게 표현된다. 나는 이 대목에서 감탄하고, 이내 흡족한 감정을 안은 채 책장을 덮었다. 마지막으로 사족을 더 달자면 이책이 1,2권 도합 분량이 1000쪽을 넘다보니 가볍게 추천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재미없다는 편견을 가진 만의 작품과는 달리 본 작품은 생각보다 보편적인 재미를 갖추고 있기도 하다. 계속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한 가족을 소재로 하는 연속극을 쭉 시청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또 최후반부에서 선보이는 클라이맥스는 다른 작품에서 쉬이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강렬한 심상을 선사해주기에 독문학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 정도는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2.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Die Angst des Tormanns beim Elfmeter)

“공격수나 공으로부터 시선을 돌려 골키퍼만 바라보는 일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죠. (…) 골키퍼가 공도 없이, 그러나 공을 기다리면서 이리저리 뛰는 모습을 본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지요.”

-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中 -

1942년 출생한 오스트리아의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페터 한트케(Peter Handke)이 1970년에 출간한 중편소설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을 읽어봤다. 지금이야 한트케는 여든 살이 훌쩍 넘은 원로 작가이지만, 젊은 시절 그는 주류 문학과는 단단히 척을 지고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작품을 써왔던 작가였다. 그가 젊었을 때만 하더라도 독일 문학을 이끌어오던 주류는 이른바 ‘47그룹’으로 불리는 사실주의 문학가들 모임이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1947년에 결성된 이 모임은 온 유럽을 전쟁의 참상으로 몰아넣은 나치 치하 조국의 만행을 참회라도 하듯이 과거 독일의 과오를 고백하는 사회 비판적인 작품들을 주로 집필했으며, 대표적인 작가로는 하인리히 뵐(Heinrich Böll)과 귄터 그라스(Günter Grass)가 있었다. 하지만 사실 전달에만 천착한 문학운동을 고깝게 보던 한트케는 이들을 향해 ‘서술 불능자’라는 준열한 비판을 가하고는 정반대의 저작들을 내놓았던 작가였다. 그는 문학이란 언어로 만들어진 것이지 그 언어로 서술된 사물들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견해를 가졌는데, 이를 증명하듯이 그의 작품은 언어가 가진 함의성을 비트는 문장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문학적 성과를 인정받아 201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지만, 문학적 성취와 별개로 친세르비아적이었던 슬로베니아인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서 유고 전쟁에서 참혹한 인종청소를 저지른 전 세르비아의 대통령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를 지지하는 언행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한 문제적 작가이고도 하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꽤 특이한데, 언젠가 독갤을 뒤져보다가 무료로 책을 나눠주겠다는 사람이 있길래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본 작품을 달라는 부탁을 했다. 근데 정말로 이 책을 공짜로 보내준 덕분에, 이번 기회에 읽어볼 수 있었다.

이 책은 왕년엔 잘나갔던 골키퍼였지만 지금은 공사장에서 조립공으로 일하는 요제프 블로흐가 여느 때와 같이 출근하다 현장감독의 자신을 힐끗 올려다보는 시선으로 해고되었음을 알아차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버린 블로흐는 빈 시내의 전통시장, 카페, 극장, 호텔을 전전하며 시간을 때우지만, 잠깐씩 마주치는 행인, 상점 판매원, 순경은 그를 냉랭한 태도로 대할 뿐이었다. 또 실직 이후 그는 급격한 심경의 변화를 겪게 되어 여태까지 일상적으로 접해왔던 사물들을 보고서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인상이 든다며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도움을 구하고자 옛 친구와 전처에게도 전화를 걸어보지만 바쁘다면서 연락을 받지않거나 무신경한 태도를 보이기 일쑤였다. 그렇게 아무 의미없이 거리를 배회하던 중 블로흐는 매번 극장에 갈때마다 보는 매표소 여직원과 마주친다. 무슨 바람인지 그는 여직원을 줄곧 따라다녔고, 여직원도 자기를 계속 따라오는 그를 집안에 들여보내고는 둘이서 같이 하룻밤을 보냈다. 그 다음날 블로흐는 주위 풍경마저도 제대로 가늠하기 힘들 정도의 혼란에 시달리며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여직원은 그에게 자신을 게르다라고 소개하며 같이 아침식사를 먹는다. 그녀는 블로흐와 식사 중 대화를 나누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얘기하길 꺼리지만 그에 대해서는 시시콜콜 많은 것을 물어보면서 많은 것을 알려고 있는데, 이는 그의 신경을 건드린다. 여직원은 식사를 마친 뒤 블로흐에게 오늘 일하러 가지 않느냐고 묻자, 순식간에 분노에 휩싸인 그는 그녀에게 달려들어 있는 힘껏 목을 조르기 시작한다.

본 작품은 인물과 인물간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벌어지는 사건을 중심으로 한 서사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주인공인 요제프 블로흐의 행적과 심상을 따라간다. 작중 블로흐는 실직 이후 심리적인 충격을 받고서는 주위의 모든 사물들이 그를 향해 모종의 암시를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마주치는 사물들과 인물들은 지극히 우연으로 인해 마주쳤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내내 자신에게 어떤 의도를 내비치고 있다고는 생각하고 불안감에 빠진다. 이때문에 그는 극중 말을 트게 되는 여러 사람들과는 제대로된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상식적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기행을 여럿 저지른다. 그가 겪는 불안감은 작품 말미에 이르러서는 한때 그의 직업이었던 골키퍼가 겪는 고충에 빗대어 진다. 축구 경기가 벌어지고 있을 때 관중들의 이목은 공과 공을 갖고 골대를 향해 달려나가고 있는 공격수에게 쏠리기 마련이다. 관중들의 시야 밖에서 골대를 지키는 골키퍼는 어디로 날아들지 모르는 공을 막기 위해 수비수들에게 소리치며 위치를 조율하고, 자신도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만약에라도 관중이 공과 공격수에서 잠시 눈을 떼고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동분서주하는 골키퍼를 쳐다보게되면 관중에게 그 모습은 황당하기 짝이 없고 우스꽝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이는 사회에서 소외되어 불인감에 시달리며 기행을 벌이고 있는 블로흐의 상황과 일맥상통한다.

마지막으로 본 작품을 읽으면서 들었던 인상을 얘기해 보자면, 여러모로 한트케에게 있어서 대선배가 되는 유대 문학가 프란츠 카프카가 연상되었다. 실제로도 한트케가 카프카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고 그를 존경하기도 하는 만큼, 작품을 살펴보면 이해가 가지 않은 행동을 일삼는 등장인물,  매우 간결하고 건조한 문체, 희망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어둑한 분위기 등 카프카의 소설과 비슷한 점이 제법 있었다. 하지만 카프카를 매우 좋아하는 나로서도 본 작품은 읽기 쉽지 않았다. 카프카의 작품의 경우에는 기괴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띄고 있어서 제법 장르적인 재미는 있었지만, 한트케가 쓴 이 책은 날 것 같은 감성을 지닌데다가 작품이 지닌 색채가 너무 무미건조하고, 끊임없이 일련의 사건들이 이어지다 보니 숨 고를 타이밍을 종잡기 힘들어서 적은 분량에도 읽기가 좀 어려웠다. 이런 이유로 개인적으로는 적극적으로 이 책을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한트케를 2019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지명한 후 스웨덴 한림원에서 남긴 선정 이유에서도 나와 있듯이, 그는 독창적인 언어로 현대인이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느낄 소외감을 예리하고 섬세하게 묘파해내는 탁월한 작가이다. 생소한 분위기만 걷어낸다면 충분히 깊이를 느낄 수 있는 명작인 만큼, 흥미가 생긴다면 한 번 정도는 도전해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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